유영삼(소유디자인그룹 대표)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 건축의 주도권은 이탈리아 로마를 벗어나 프랑스 파리로 넘어간다. “바로크”란 말의 본 뜻은 “이상하다” 즉 이상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비정형적이고 기괴하다는 뜻이다. 비정형적이고 틀에서 벗어남을 추구한 바로크 예술은 르네상스 예술과는 달리 더 쉽게 빠르게, 널리 퍼져 나갔으며 여러가지지방적 특색을 띠게 되었다. 이어 오스트리아와 남부독일에 소개되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거쳐 남아메리카와 필리핀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베르사이유 궁전,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프랑스의 자랑인 이 궁전에 대해 필자는 건축적, 역사적 의미에서 구체적으로 다뤄볼까 한다.역사는 1600 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루이 13세 때 이 궁전 자리는 다름 아닌 사냥막사였다. 루이 14 세는 이것을 훌륭한 궁전으로 변경시켜서 통치의 중심부로 삼기로 결심했다. 역사적,사회적 위치에서 본다면, 이때야 비로소 세속적인 건물이 종교적인 건물과 대등한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국가라는 개념과 조직이 마침내 교회와 더불어 서양문명의 양대 세력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신 중심의 세계관이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국가라는 형태로서 나타나는 절대주의는 이런 발전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며 루이 14세 때 그 절정을 이루
게 되었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직접적인 모델이 된 것은 보-르-비콩트(Vaux-le-Viconte) 대저택이었다. 이 저택은 그 당시 프랑스의 가장 부자였던 푸케(Fouquet)의 것이었다.
자기와 경쟁이 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 루이 14 세는 질투심을 참지 못해 정치적 계략으로 푸케를 하루 아침에 몰락시켰고, 그 결과 푸케는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푸케가 고용했던 똑같은 건축가들을 고용한 루이 14 세는 그 저택의 주제를 더욱 발전시켰다. 그로 말미암아 어마어마하게 큰 스타일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켰는데, 그것은 공원을 면한 U 자 모양의 커다란 중앙블록을 U자의 끝부분에서 직각방향의 양쪽으로 길게 연장시키는 것으로, 이중 왼쪽 부분은 왕자들을 위해서, 오른쪽 부분은 여러 장관들의 집무실로 지어졌다.거대한 전체 구조는 프랑스의 왕과 왕실의 가족들, 대신들과 그들의 가족들 모두의 거주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베르사이유 궁전은 건축뿐만 아니라 조경에서도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베르사이유는 고속도로에 의해 파리와 연결되어 있다. 베르사이유의 도입부에 힘과 위엄을 부여하는 아름다운 만곡의 구조물은, 믿기 힘들지만, 왕실의 마굿간이었다.이 마굿간으로 인해 고속도로가 돋보이게 됨으로써 따라서 궁전으로의 접근도 강조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고속도로가 건축적 표현과 합쳐지는 것이며 이 궁전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다. 무한한 것을 정복하고자 하는 바로크의 의지는 정원에서 잘 나타나는데 긴 잔디밭을 지나면 시선은 십자가 모양의 1마일에 걸친 거대한 운하로 이어진다. 한국 경주의 안압지처럼, 루이 15세는 곤돌라를 비롯하여 호화스러운 배를 여기에 띄었다고 전해진다.
루이 14 세가 남긴 유명한 말인 “짐이 곧 국가이다(The State am I).”는 왕의 절대 권력과 중앙집중된 권위를 상징하는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그의 뜻을 찾아 볼 수 있다. 태양광선을 상징하는 방사선은 ‘태양왕’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데, 루이 14 세는 그렇게 불리기를 좋아했다고 전해진다.이 모든 내외 배치의 가장 중심이 된 곳은 과연 어디였을까? 다빈치 코드의 영화 속 어느 한 장면처럼, 그 중심은 다름 아닌 왕의 침대였다.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솟아오름과 동시에 태양왕이 침실에서 나타나는 것은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정교한 의식이었다. 한 치의 벗어남도 없는 긴 직선의 단순성은지고한 용기와 자신감을 상징한 것이었다.
방사형의 길들은 궁전을 향해 수렴하고 있고, 그중 가운데 길은 궁전과 파리를 연결한다. 이 길들은 알현실 및 의전실로 겸용되는 왕의 침실에서 교차한다. 따라서 왕의 침대에서 전체 배치의 절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직선의 접근선들은 파리에서 시작해서 왕의 침실에서 끝나며, 출발선은 왕의 침실에서 시작해서 넓은 정원을 거쳐 무한대로 사라져버린다.베르사이유 궁전은 자연을 정복하고자하는 바로크의 의지를 나타내며, 또한 왕의 절대주의가 교황의 종교적 권위를 대신하게 됨을 상징한다.
여기서부터 서양의 세속화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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