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김정순씨(72)의 매일은 너무 불안하다. 한인사회가 별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캘리포니아 주 예산 뉴스 한줄 한줄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는 주정부에서 받는 웰페어 월 850달러로 근근이 살아간다. 보통 시민권자 노인들이 받는 웰페어는 SSI인데 그가 받는 것은 캐피(CAPI)다. 96년부터 영주권자는 SSI 아닌 캐피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5월말 주지사가 발표한 새 예산안에는 캐피가 포함되지 않았다. 혜택을 줄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프로그램 자체를 폐지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는 “막막하다”란 말로도 표현되지 않는 두려움에 아예 말문을 닫았다.
SSI를 받는 송정희씨(80)는 그에 비하면 불평을 삼가야 하겠지만 역시 불안하고 두렵다. 새해 첫달을 넘기면서 37달러가 깎여 월 870달러가 되었던 웰페어가 7월부터는 850달러로 깎인다는 통보를 받은 지가 불과 얼마 전인데 주지사의 새 예산안은 9월부터 또 20달러를 깎는 것으로 되어있다.
지난해 다리를 다친 이후 가사보조원서비스(IHSS)를 받아오던 이경자씨(86)도 이제 서비스 중단을 각오해야 한다. 혼자서는 거동이 완전 불가능한 4급이상 중증 장애인이 아니면 수혜대상에서 제외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병원가기, 장보기, 식사, 청소 등 기본일상이 그에겐 커다란 벽처럼 다가오고 있다.
불안하고 두려운 건 노인들만이 아니다. 30대 초반의 해나 엄마아빠도 수시로 병원을 가야하는 아이를 생각하면 두렵고 무섭다. 주지사의 제안대로 저소득층 어린이 의료보험 헬시 패밀리가 전면 폐지될 것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아직은 “설마…”하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애쓰고 있다.
42세 S씨는 유학생으로 도미한지 1년만인 92년 교통사고로 3개월 동안 혼수상태로 지내다 깨어났다. 그 후 복용약 부작용 등으로 간질발작까지 일으킨 그는 직장을 얻었지만 일하다 20회 이상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가는 곤욕을 치르며 정상취업이 불가능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영주권신청에 들어간 그는 2007년부터 메디칼 수혜자격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주지사 예산안은 그가 해당되는 ‘5년미만 영주권자 메디칼 혜택’은 ‘응급 시에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한달 분 간질약값만도 500달러가 넘는데…“그냥 죽으라는 이야기일까요?” 혼잣말 같은 반문에 고통이 담겨있다.
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그러나 이들이 털어놓는 불안과 두려움은 현실이다.
한두명이 아니다. 캐피에 의존하는 한인들은 지난해 1천여명을 넘어섰고 SSI에는 캘리포니아 130만 노인의 생계가 달려있으며 가사보조원의 도움을 받는 44만6천명 중 한인은 약3,000명으로 집계되었다. S씨와 같은 메디칼 수혜자 한인통계는 없으나 헬시 패밀리 혜택을 받고있는 93만명중 한인 어린이는 2만여명으로 추산된다. 대부분 영어도, 미국제도에도 익숙치 못한 이들을 돕고 있는 민족학교가 집계한 숫자다.
주지사의 예산안은 주의회의 승인을 받아야만 확정된다. 시간은 급하다. 주회계감사관은 6월15일까지 균형예산안을 마련하라고 독촉한다.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7월1일 전에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7월말부터 캘리포니아는 지불불능상태에 빠지게 된다. 지난 주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지사는 주의회에서 이례적 스피치를 행했다. “캘리포니아 심판의 날이 왔다. 우리의 지갑은 비었다…나도 하소연하는 주민들의 눈에서 고통을 보고, 그들의 음성에서 두려움을 듣는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 가혹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의원들에게 대폭삭감의 예산안을 조속히 처리하라는 압박용 연설이었다.
이제 삭감은 캘리포니아 주민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칼날이다. 주지사의 말대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무엇을 얼마나 삭감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할 수 있다. 9일 발표한 주상원 민주당 예산안은 이 삭감 우선순위 선택이 주지사의 예산안과 좀 다르다. 주지사가 폐지하려는 헬시 패밀리와 캘그랜트 등을 살리고 가사보조원 등 웰페어 삭감의 폭을 줄여 사회안전망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주지사가 손댈 수 없는 지출항목으로 남겨둔 비축금 45억달러에서 그 비용을 충당하려는 민주당은 이렇게 말했다. “비축금이란 ‘비오는 날’을 위한 것인데 지금 캘리포니아엔 천둥번개가 치고있다”
주 예산적자는 사람들이 듣기조차 지겨워 고개를 돌리는 이슈다. 그러나 그 대폭 삭감의 칼날이 어디를 겨냥하고 있는 가를 깨닫는 순간, 누구도 무관심할 수만은 없다. 사회가 보호해주어야 할 약자인 가난한 노인과 어린이, 장애자다. 특수집단처럼 로비스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표를 모아줄 유권자 그룹도 못된다. 그러나 거기엔 우리의 부모, 형제, 자녀, 친구, 이웃…수천, 수만명이 포함돼 두려워 하며 숨죽이고 있다.
아무도 대변해 줄 사람이 없는 이들을 위해 한인커뮤니티도 관심을 갖고 나서주었으면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다. 한인단체장이라면 민족학교가 펼치고 있는 ‘한인단체장 지지서명 캠페인’에 동참해 줄 수 있다. 각 개인들은 자신의 선거구 주의원들에게 복지삭감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전화를 걸어줄 수 있다. 내게는 그저 좀 번거로운 한 순간이, 어느 한 사람의 생계를 보장해 주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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