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란다가 남보랏빛 생명의 등불을 환하게 밝히던 5월 하순의 어느날. 대한민국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향마을 바위에서 투신자살했다. 법조인 출신으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에 목숨 걸어야 했을 그가 그 일을 포기하고 굴곡 많은 생애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동시에 그를 향했던 검찰의 비리혐의 수사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역시 정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대한사람인가. 무더위와 장대비를 뚫고 약 500만의 국민들이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단군 이래, 아니 인류역사 이래 최대 장례식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TV방송들이 연일 고인의 추도 특집을 방영하고, 진보는 물론 보수 신문들도 재빨리 추모 열기에 가세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글이 봇물을 이뤘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노래하며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감옥에서 복역하다 27세의 꽃다운 나이로 옥사한 시인 윤동주의 장례식을 지금 치른다 해도 이 정도일까 싶었다. 노예해방 전쟁을 통해 역사의 방향을 바꾸었지만 피격 사망해 월트 휘트먼으로 하여금 ‘오, 선장이여! 나의 선장이여! 우리의 두려운 항해는 끝났다…하지만 오, 심장! 심장! 심장이여!… 갑판 위에는 나의 선장이 누워있다, 쓰러져 싸늘하게 죽어있다’라는 송덕시를 쓰게 한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도 부러워할 만한 추모열기였다.
비극 앞에서 절로 착해지는 국민성을 탓할 수는 없지만, 너무나 감정적인 겨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마당에 나갈 수도 없는 날들을 보내다 최후의 선택을 한 그의 죽음에는 애도를 표한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탁월한 경제개발 업적이 그의 독재를 정당화할 수 없듯이, 노 전 대통령이 가슴 아프게 갔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미화해서는 곤란하다. 대통령 재임 중 잘 한 일도, 잘못한 일도 있을 것이다. 그의 공과는 세월이 흐른 뒤 역사가 냉정하게 판단할 것이다(그것은 이명박 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그가 선택한 극단적 문제해결 방식과 동정 여론이다. 신종 플루보다 더 무서운 ‘자살 바이러스’의 창궐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 바이러스는 오랜 세월 국민들의 잠재의식 속에 잠복해 있다가 기회를 만날 때마다 영혼을 좀먹고 가정을 파괴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절절히 느끼게 만들 것이다.
국가의 명운을 짊어졌던 사람으로서 그는, 보통 사람은 물론 정몽헌, 최진실, 안재환 등 유명인들까지 줄줄이 제물로 삼은 ‘자살의 굿판’을 통탄하며 본을 보여야 할 위치에 있었다.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개인의 행복 뿐 아니라 국민들을 위해 살아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유명인의 자살이 일반인들이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그리던 내일’임을 잊게 하고 동조의식, 전염효과, 자살 합리화를 불러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한국에서는 유명인이 자살하면 ‘베르테르 효과’ 때문에 월 평균 137명이 더 자살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2009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2007년 기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3위로 평균의 1.6배였다. 이민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아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인들을 상대로 자살은 영웅적 행위도 낭만적 해결책도 아님을 계몽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e)을 따라 창조되었으며, 인간을 죽이는 일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믿는 교회를 비롯한 한인 종교기관, 상담단체들이 적극 나서 자살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야 한다.
절망의 늪에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노란 모자, 노란 풍선의 바다를 불러 온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던 순간에도, 한반도 땅에서는 노란 민들레가 목숨 다해 콘크리트 틈새를 뚫고 나오고, 입에 풀칠할 일이 막막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피눈물 흘리며 고통의 날들을 이겨내고 있었음을 가르쳐 주어야만 한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에스겔 16:6).
김장섭 종교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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