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아 소토마요 연방대법관 지명자는 마지막까지 거론된 4명의 최종후보 중 오바마 대통령에게 가장 낯선 얼굴이었다. 물론 히스패닉 여성이라는 아이덴티티와 연방지법 및 항소법원 판사로 지명된 후 통과한 2번의 상원 청문회 경험도 주요한 가산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 요인은 1시간에 걸친 대통령과의 인터뷰였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소토마요의 경험과 지성과 성장배경은 오바마가 수차례 공언해온 대법관 선정 기준에 딱 들어맞았다. ‘보통사람들의 희망과 생존노력을 알고 이해하는, 공감능력(empathy)을 가진 법관’을 발견한 것이다.
단순한 동정이나 연민과는 다른,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인 ‘empathy’는 사실 오바마 정치철학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방은 물론 적대국과의 외교에서도, 일반 시민에 대한 정부의 행정방향도, 일반 시민이 서로를 대할 때도 그 중심자세로 오바마는 공감능력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정작 지난주 소토마요를 대법관으로 지명하는 오바마의 기자회견에선 ‘공감’이란 단어가 사라져 버렸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한다. 어느새 공화당 보수진영에서 ‘empathy’가 인준반대를 위한 공격의 표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논쟁은 2001년 소토마요가 버클리에서 행한 스피치의 한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4,000개 단어 8페이지에 걸친 긴 스피치 중 32개 단어로 이루어진 짤막한 한마디다 - “나는 풍부한 경험을 가진 현명한 라틴계 여성이 그런 삶을 살지 않은 백인 남성보다 더 나은 판결을 자주 내리기를 희망한다”
당시 43세로 타계한 마리오 올모스 판사를 추모하는 모임에서의 이 연설은 “난 내가 내리는 판결이 사람들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매일 스스로 일깨우고 있다. 나의 추정과 나의 시각에 대해 끊임없이, 완벽하게 검증해야할 의무가 내게는 있다”면서 판사의 의무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명상하는 내용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또 11년간 연방항소법원 판사로서의 소토마요의 판결내용은 그가 경험이나 공감능력, 정체성에 기울지 않아온 비이념적 법관이었음을 말해준다. 차별을 주장하는 피고에게 승소를 안겨준 것은 10건뿐이었고 패소가 78건이나 되었으며 100건 인종관련 케이스에서도 이견을 낸 것은 4건에 불과했다. 오히려 리버럴 진영에서 너무 중도적이라고 불평할 만한 기록이다.
그런데도 극우 보수파는 무차별 난사를 감행했다. 졸지에 소토마요는 ‘인종주의자’로 채색되었고 히스패닉판 KKK의 단원으로 비유되는가 하면 공화당 의원들은 ‘공감’이 운동권 판사를 의미하는 암호라고 거세게 비난을 퍼부었다. 비판의 여지를 감지한 백악관은 서둘러 조기진화에 나섰다. 스피치 당시 ‘말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해명했으며 ‘공감’이란 단어 사용도 자제했다. 논쟁 확대가 빠른 인준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연방상원의 새 대법관 인준 청문회를 위한 준비작업의 시동은 이미 걸렸다. 소토마요 자신도 2일과 3일 이틀에 걸쳐 의사당을 방문해 10여명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과 연쇄 회동을 가졌다. 비공개 회의에서의 주요 의제가 바로 소토마요의 공감능력이었다 : ‘가난과 차별을 경험한 히스패닉계 여성으로서의 그의 경험이 불편부당해야 할 판결에 어떤 영향을, 어느 정도 미칠 것인가.’ 인준의 발목을 잡힐까 우려하는 민주당 중진들에게 소토마요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기 경험의 산물이지만 판사로서의 자신은 “궁극적으로 완벽하게 법에 의해 판결할 것”을 다짐했다고 패트릭 레히 법사위원장은 전한다.
민주당보다 급하고 난감한 것은 공화당이다. 청문회 쟁점을 어떻게 하면 당파적 트집이 아닌 법의 원칙 수호를 위한 노력으로 확대시킬 수 있을까를 고심하고 있다. 오바마의 지명자를 반대는 해야겠는데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막강한 스윙 표밭으로 부상한 히스패닉계 유권자의 비위도 거슬리지 않아야겠고 적극반대를 외치는 극우 보수표밭의 요구도 외면할 수 없다. 게다가 무엇보다 숫자상으로 인준을 부결시킬 현실적 능력이 없다. 청문회를 9월까지 늦춰 시간을 벌어보려는 것이 우선작전이다. 그동안 뭔가 소토마요의 새로운 결함이 튀어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민주당이 7월에 청문회를 열어 8월7일 휴회 전 인준을 매듭짓겠다는 일정을 고집하면 그것조차 여의치 않게 된다.
한 여름 인준청문회의 설전을 지켜보는 재미도 기대되지만 그보다 우리에게 반가운 것은 구현화된 대법원의 다양화다. 인준된다면 소토마요는 미국의 111번째 연방대법관이 된다. 106명의 백인남성, 2명의 흑인남성, 2명의 백인여성에 더해질 1명의 히스패닉 여성이다. 변하고 있는 미국의 새 얼굴 ‘대법관 소토마요’는 우리에게도 희망을 준다. 동양계 여성 혹은 한국계 남성 대법관이 탄생할 내일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박록 주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