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북한 핵 도발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마치 드라마 재방송을 거듭해 보는 듯 했다. 북한이 핵물질을 개발하고,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할 때마다 미국은 강도 높은 비난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고립을 경고했다. 서둘러 소집된 유엔 안보리가 작성하는 결의안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에 부딪쳐 호랑이를 그리려다 번번이 고양이로 낙착되었으며 그나마 때로는 결의안 대신 의장 성명으로 약화되기도 했다.
제재의 채찍을 한손으로 휘두르면서도 미국은 각종 원조라는 당근을 내밀며 북한을 회담 테이블로 끌어내 왔다. 2006년 1차 핵실험 후 강경대응을 천명한 당시의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도 “아직 문은 열려있다”고 협상의 여지를 남겼고, 지난 달 장거리 미사일 발사 후 힐러리 클린턴 국무 역시 “북한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에 굴복해서는 안된다”면서도 6자회담을 재개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강조했었다.
국제적 ‘강경제재’ 경고와 어렵게 성사되어 온 몇 년간의 회담이 결국은 허사였다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지난 24일(미국시간) 북한은 기습적 핵실험을 감행, 메모리얼데이 연휴를 즐기던 미국의 허를 찔렀다. 이번에도 첫 대응은 갈 데 없는 ‘재방송’이다. 북한의 고립 심화, 국제사회에서의 보다 강한 압박 등 경고가 잇달았다. 유엔안보리가 소집되었고 결의안 작성에 착수했다.
그렇지 않아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은 ‘안보’다. 여전히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 안보에서만은 아직도 미 국민은 41% 대 48%로 오바마의 민주당 보다는 공화당을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 캠페인 당시 라이벌 힐러리 진영의 성공 전략 중 하나가 ‘새벽 3시의 비상전화’ TV광고였다. “어린 자녀들이 깊은 잠에 빠진 새벽 3시, 세계적 위기를 알리는 백악관의 비상전화가 울릴 때 누가 응답하기를 원하는가…’ 오바마의 국가안보 경험부족을 꼬집은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오바마 안보정책의 첫 시험대다. 취임 후 악수하며 타협하는 대화의 외교로 국제무대를 순항해온 오바마가 맞은 첫 풍랑이다. 북한 등과 단호하고도 직접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겠다고 천명해온 이른바 ‘힘의 대화’를 실행해 보일 시간이 온 것이다.
구체적으로 무슨 대책이 나올 것인가. 어떤 사태든 효과적인 대책은 정확한 원인분석에서 출발해야 한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다. 그 절대군주의 속마음을 정확히 안다는 장담은 아무도 하지 못한다. 전 세계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총동원되고 있지만 출발부터가 암중모색이다.
핵심원인과 목표 추정부터 가지가지다. 후계자에 대한 군의 단결지지 확보 등 내부 체제강화라는 분석이 미국에서는 힘을 얻고 있으며 이제는 대미 협상용의 단계를 넘어 핵보유국 인정을 노리고 있다는 지적에도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이들이 제시하는 대응책의 선택 여지도 비슷비슷하다. 북한이 가장 겁낼 것은 미국의 정밀공격이다. 최첨단 무기체계를 동원해 미사일 기지를 폭격하는 군사작전이다. 지금도 네오콘들이 조심스럽게 언급하지만 북한의 보복공격이 불 보듯 훤해 애초부터 배제된 대응책이다. 남은 것은 다시 또 제재와 대화뿐이다. 한반도의 비핵화가 궁극 목표인 6자회담은 북한의 필름을 되감는다면 모를까 현 단계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6자회담 회의론이 확산되는 이유다.
이번 대북제재는 전례없이 강화될 것이라는 발표가 나오고 있지만 중국의 적극 동조가 없으면 희망사항에 머물기 십상이다. 중국은 북한이 의식주, 기본 삶에서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동맹이다. 동북아 전문가 고든 챙에 의하면 북한은 석유의 90%, 소비재의 80%, 식량의 45%를 중국에서 공급받는다. 이 생명선을 중국이 상당부분 차단한다면 제재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장과 정권붕괴, 둘 중 중국이 어느 쪽을 더 꺼려할 것인가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정권이 무너지면서 수백만 난민이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도, 미국의 우방 ‘통일한국’이 태어나는 것도 중국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대북제재는 이전 수준을 답습할 확률이 높고 국제제재에 관한한 맷집 좋은 북한은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 “우리는 수십년간 미국의 제재 속에서 살아오지만…승리적으로 진전하고 있다”고 호언한다.
지금은 비상전화가 울려대는 오바마의 ‘새벽 3시’다. 사실상의 ‘핵보유국 북한’이 눈앞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미국의 10여년 강온 외교가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에 실패했다면 미국의 대북정책은 전면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두려운 현실과 마주 선 남한의 대응책이 강화되면서 남북의 기류도 급속히 얼어붙었다. 해빙의 계기가 되어 줄 오바마의 새 대북정책을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박록 주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