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CMA 한국현대작가전을 준비한다 : 아티스트 - (8) 임민욱
영상 설치작가 임민욱은 한국이라는 사회, 서울이라는 도시, 영등포라는 후진 지역, 그 거리의 부조리를 도전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영등포에서 살며 작업하는 그는 급속도로 발전해온 한국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제기한다. 난폭한 경제도약으로 인해 우리가 잃은 것들, 국민들의 정신에 남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 상실의 시대를 사는 도시인들의 대화나 절규, 성급하게 도입된 모더니즘, 천박하고 노골적인 첨단산업 등을 그녀는 영상이나 조각적 설치작업을 통해 고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영상 작품으로 삶의 문제 끄집어내
공동 작업을 통한 사회적 책임 분산
2005년의 비디오 작품 ‘뉴타운 고스트’(New Town Ghost)는 복잡하고 분주한 영등포 일대에서 젊은 여성 래퍼와 드러머가 트럭을 타고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공장밀집지역인 영등포는 우리나라 경제개발에서 역사성과 현재성, 근대와 낙후가 공존하는 곳으로, 지금은 또 뉴타운프로젝트라는 재개발계획에 따라 숨가쁜 변화를 겪고 있는 곳이다. 트럭은 영등포 로터리를 중심으로 영등포 시장 일대를 돌아다니고 그 위에서 래퍼는 메가폰을 들고 작가가 써준 개발의 환상에 대한 뒤틀린 희망을 코멘트를 낭송한다.
사실 자본주의와 도시문제를 주제로 한 작업은 2000년을 전후해 한국 미술계에서 한창 유행했었다. 그러나 이제 모두들 빠져나가 회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임민욱은 혼자 끊임없이, 진지하게, 그러나 유머와 관대함을 갖추고 이러한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임민욱의 예술은 몇가지 특징을 갖고 있는데, 공간에 대해 민감하다는 점, 하나의 완성된 예술작품을 전시하지 않고 공동 작업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분산시킨다는 점, 특정 상황에 대한 응답, 혹은 해석으로서 매번 다르게 관객과 기능한다는 점 등이다.
비디오작품 ‘롤링 스톡’(Rolling Stock)은 2000년 광주 비엔날레를 찾는 해외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문화 가이드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작품은 자전거에서부터 밴이나 트럭에 이르기까지 물건을 싣고 나르면서 항상 끊임없이 움직이는 여러 가지 형태의 교통수단의 모습 등 분주한 도시의 삶을 찍은 사진들로 만든 꼴라주다. 전속력으로 돌아가는 도시의 리듬을 보여주는 이 가이드북은 그런 한편 느슨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순회일정을 제시함으로써 서울이라는 도시의 여러 다른 명소들에 대해 전혀 예기치 않았던 새로운 조망을 하고 있다. 이 가이드북의 내용은 2003년 하나의 비디오로 다시 제작되었다.
이번 라크마 현대작가전에 전시될 최신작 ‘잘못된 질문’(The Wrong Question)은 이중화면 사운드트랙 비디오 설치작품이다. 관객들은 어디선가 분사되는 희미한 불빛과 음향에 이끌려 10미터 길이의 길고 어두운 공간을 걸어 들어오면 막다른 끝에서 2개의 비디오 설치를 만나게 된다. 하나는 전시장 벽에 직접 프로젝트 되고 다른 하나는 바닥에 놓여진 TV모니터를 통해 보여진다.
비디오에서는 작가가 여러날 수집한 택시운전사(한국의 노동계급 우파의 기수들)의 정치적 견해들이 흘러나온다. 초대 대통령이며 독재자였던 이승만 시대, 혹은 용감한 개발독재자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나이 지긋한 남자의 향수어린 생각을 들려주면서 때때로 잘못된 질문이 제기된다. “소위 민주주의가 무엇을 했는가?” “민주주의의 용도는 무엇인가?” 등. 그런 한편으로는 경제개발 초기의 경제학자 남덕우의 평등에 관한 주장이 먼 메아리로 울려 퍼진다. “우리는 그때 모두가 평등했고, 모두가 가난했다.”
작가로서 예술과 삶을 따로 떼어서 보는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하는 임민욱은 현재의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을 변화시키는데 기여하고 싶어한다.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바로 이웃의 살아있는 실존문제와 씨름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자신의 직업을 당당하게 ‘예술가’라고 밝히는 작가, 관습화된 미술 형식과 사회 제도에 주눅 들지 않는 작가, “제대로 하는 것은 없지만, 그래서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이다. 그녀는 예술의 울타리를 타고 넘어 사회적으로 진짜 역할을 하는 ‘미술가-매개(교육)자-행위자’라고들 말한다.
한국 경제개발사의 천박한 증인 영등포를 배경으로 한 ‘뉴타운 고스트’의 한 장면.
# 영등포서 활동… 서울·파리서 개인전
▲임민욱 작가는
1968년 대전에서 출생한 임민욱은 이화여대를 나와 파리의 에콜 보자르와 파리 I 대학에서 조형미술을 공부했다. 영등포에 위치한 직업체험학교 하자센터의 예술감독이란 특이한 이력을 가진 작가로 사춘기 시절 현장에서 직접 가진 경험으로 힙합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1997년 이후 파리에서 2회, 서울에서 2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제10회 이스탄불 비엔날레와 제6회 광주 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광주비엔날레 광주은행상과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을 수상했다. 영등포를 배경으로 활동하는 그녀는 2003년 설립한 문화예술 작업공동체 ‘피진 컬렉티브’(Pidgin Collective)를 통해 작가, 학생, 문화 활동가 등 실험적인 그룹들과 범속적이며 동시에 지적인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라크마 현대작가전에 전시될 ‘잘못된 질문’. 이중화면 사운드트랙 비디오 설치작품이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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