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CMA 한국현대작가전을 준비한다 : 아티스트 - (7) 구정아
‘시적(poetic)인 설치작가’로 표현되는 구정아는 작은 것, 사소한 것, 부서지기 쉬운 것들을 가지고 전시공간을 디자인한다. 으깬 아스피린 가루나 돌가루를 쌓아 올려 아주 작은 산더미를 만들기도 하고 좀약, 각설탕, 껌, 담배 같은 것을 엄청나게 많이 쌓아 전시하는 그는 그 사소함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평범함을 강조하는 배열로 오히려 사람들을 조용히 끌어당긴다.
2008년 밀라노 핑크서머 갤러리에서 있었던 개인전에 선보인 껌 100킬로그램으로 만든 작품 ‘꿈과 생각’(Dreams & Thoughts).
으깬 아스피린 가루에 파란 조명을 씌운 1998년 작품 ‘오슬로’(Oslo).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
사소하고 하찮은 소재로
관객들의 호기심 불러내
구정아는 드로잉과 설치, 비디오를 전시공간 안에 절묘하게 배치해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데,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이것들은 각자 개별적인 작품이기도 하고 전체가 하나인 작품의 부분들이기도 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둘러보면 이런저런 것들이 있고, 그러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은 채 고요하고 친밀한 상호관계를 형성하는 그 전체적인 하모니가 바로 구정아만의 전략이요 매력이다.
구정아에게 세계의 미술계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처럼 평범한 것을 평범하게 놔두는 그녀의 작업방식이 가진 힘 때문이라고 비평가들은 말한다. 평론가 필립 베른은 “유럽의 모더니즘 작가들에게 있어 진리의 구현이 작품의 원칙이었던 반면 구정아의 작품에는 그러한 점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며 ‘대단한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그녀의 작품을 호평했다.
구정아는 백남준에 이어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개인전을 연 두 번째 한국작가로, 2004년 ‘에스파스 315’(Espace 315)라는 작품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전시장에 하얗게 칠한 네개의 벽을 세우고 침대, 책상, 책장, 의자 등을 배치하여 누군가의 원룸처럼 꾸몄다. 책장에는 껌이 알맹이와 껍질로, 색색별로 분리되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 아래 고무줄이 흩어져 있고, 뜯어낸 테입이 자연스레 말린 쓰레기 뭉치들, 빨랫비누로 만든 장식품, 나란히 쌓아 놓은 각설탕 더미, 전시장 벽 위에 놓여진 인형 등….
처음에 별로 볼 것도 없었던 이 전시공간은 관객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들고, 보면 볼수록 이야깃거리를 끌어내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전시장에서 관객은 오래된 기억이 교차하며 멈춰진 시간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전시장은 작가의 집이 아닌 나의 집, 남의 것을 훔쳐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것들을 펼쳐놓는 지점이 된다. 작가가 사적인 공간(그녀의 방)을 공적인 공간(전시장)에 옮겨놓았다면, 관객은 그 공적인 공간을 다시 사적인 공간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구정아는 특히 ‘집’에 관한 작품을 많이 했다. 작업실 벽을 모두 녹청색으로 칠해 버린 파리미술학교 시절 작업에서부터, 전시장을 그녀의 원룸 공간으로 꾸민 ‘에스파스 315’에 이르기까지 그녀에게 집은 숨을 수 있는 곳, 은밀하게 피신할 수 있는 곳이며, 그녀의 표현을 따르자면 ‘꿈의 나라’(dream land)이다.
김선정 한국측 큐레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구정아는 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집을 떠나 있으면 집을 더 많이 보게 된다. 마치 1분 동안 숨을 쉬지 않으면 우리의 생각은 온통 숨 쉬는 일뿐인 것처럼 극단적이 되는 것이다. 런던의 존 소운 경 뮤지엄, 멕시코시티의 바라간 하우스, 그라나다의 카사 로르카 등지에서 내가 했던 모든 집에 관한 프로젝트는 모두 그러한 이유가 담겨 있다”
그녀의 작품은 대부분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 시작된 것이다. 구정아 작품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한국적인 모티브는 꿈의 나라로 가는 다리가 된다. 비엔나 전시에서 선보였던 ‘3355’(2003)는 사람들의 무리를 뜻하는 한국어 ‘삼삼오오’에서 따온 제목이다. 또 나폴레옹이 유배되었던 엘바 섬의 밤바다를 담은 비디오 설치작업 ‘씨사이’(Ssisai)와 드로잉 작업 ‘새치미’(Sechimi)도 주목을 끄는데 새치미는 ‘천연덕스럽게 시치미를 때는 태도’, 씨사이는 ‘주책없고 실없이 웃는 사람’을 이르는 통영지역 사투리라고 한다.
최근 구정아는 ‘우스랜드’(Ousssgood)라는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다양한 문화의 기억과 하찮은 일상, 동심과 장난기가 뒤섞인 상상의 나라를 통해 상식적 개념에 도전하는 작가의 정신세계를 투영하고 있다.
이번 라크마 전에서는 돌가루를 쌓아 만든 ‘산의 근원’(Mountain Fundamental 1999/2009)과 1,001개의 드로잉 작업인 ‘R(details)’을 볼 수 있다.
구정아는 1967년 서울 생으로 1991년 이후 파리에서 거주해 왔으며 지금은 파리와 런던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파리 에꼴 데 보자르에서 수학했고 2002 광주 비엔날레, 2004 시드니 비엔날레, 2005 모스크바 트리엔날레 등에 참여했다. 2002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휴고 보스상과 2005년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을 수상한 구정아의 작품은 퐁피두 현대미술관과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1,001개의 드로잉으로 이루어진 2005년 작품 ‘R(details)’의 부분.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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