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주 갑자기 워싱톤 D.C.에 다녀왔다.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내무부 차관보로 지명된 세째 딸 때문이다. 연방수사국 (FBI)의 신원조사가 끝난 다음 연방 상원에서 청문회를 거쳐서 비준 동의안이 가결되면 다 되는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연방 상원 청문회를 시작할 때 의례히 지명자의 가족을 모두 소개하는 절차가 있는지 몰랐었다.
많은 미국인들은 아직도 ‘한국인’하면 ‘한국전쟁’을 떠올린다. 한국인 부모를 두고 미국에서 태어난 딸도 한국전에 관해 많이 들었던듯 어린 시절 내게 “아빠는 그때 무엇을 하셨어요?”하고 딸이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물어보는 딸이 그냥 신통하고 또 한편으론 고마웠다.
상원 청문회가 끝나자 그대로 가족 모두가 택시를 타고 그 유명한 “미국 6.25 참전 기념비”를 찾았다. 크나큰 까만 대리석 벽에 새겨있는 수백명의 사라진 “미국 6.25 참전용사”의 “얼굴”. 나는 그 얼굴에 손을 대고 그만 울고 말았다.
59년전 6.25 남침할때 북한 인민군은 제일 먼저 우리 대한민국 국군을 다 죽여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은 90% 성공했다. 그러나 나머지 우리국군이 끝까지 살아남아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서 온 미군 참전용사들이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South Korea라 부르는 대한민국이 세계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른 채 지구 반대쪽에 있는 한국에 와서 우리를 구하기 위하여 우리 국군과 함께 싸웠고 그리고 죽었다.
지금 우리는 미국에 와서 미국시민이 되어 스스로를 “6.25 참전용사”라고 부르지만 “미국 6.25 참전용사”와는 다른만큼 “한국 6.25 참전용사”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35년간 콜로라도에 살다가 여기 한국사람이 많은 S.F. Bay Area로 오면서 제일 먼저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나와 6.25때 생사를 같이했던 “한국 6.25참전용사”들이었다. 그래서 지난 6년간 우리 전우들의 모임에는 거의 빠짐없이 나갔다.
어느날 아내가 S.F. 의 어떤 백화점에 갔는데 그백화점 점원이 느닷없이 Visa Card를 보고 “한국사람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렇다” 하자 “나는 한국전 (6.25) 참전용사요.” 하면서 6.25때 어떤전투에서 어떻게 싸웠다고 계속 말하는 것이었다. 나의 아내가 “나의 남편도 한국 6.25 참전용사”라고하자 그사람은상기되어서 “명함”을 주며 “나는 몇일후 은퇴한다”면서꼭 나와 전화통화하고 싶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다음날 아침 그사람에게 백화점으로 전화했다. 그런데 몇마디 나누기도 전에 그의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나도 그만 울고말았다. 그때 총에 맞고 폭탄에 맞아 죽은 “전사자” 보다도 굶어죽고 얼어죽은 “미국 6.25 참전용사”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한국 6.25 참전용사”뿐만 아니라 “미국 6.25 참전용사”들도 만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다 내가 “북가주 6.25 참전단체 연합회장”이 되자 “6.25를 되새기며 한미관계를 굳건히 하자”를 공식으로 내세우고 6.25날 “한미공동 6.25기념식”과 “점심식사”를 마련했다.
지난해는 “미국 6.25 참전용사”와 그의 가족 40여명이 우리와 함께 6.25행사에 참여했다. 이 행사가 그들에게 우리의 고마움을 제대로 전달한 것 같다. Concord (콘코드) 에 본부를 둔 미국 6.25 참전 전우회(264 지부) 부회장 Don Sharp (도날드 샤프) 씨는 행사후 장문의 편지로 그 6.25행사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6.25 기념식을 끝내면서 80대의 “한국 6.25 참전용사”와 “미국 6.25 참전용사”가 모두 앞에 나와 서로 마주보며 일제히 “거수경례” 하며 58년전 한미전우의 “경의”를 표할때 ? 그의 “감회”를 쓴 편지의 그 “글”은 내가 영원히 간직하고싶은 “영어”로된 “명문”이다.
나는 금년에는 더 많은 미국 6.25 참전용사를 6.25행사에 초청한다. 나는 그들에게 말하고싶다. “우리는 고마움을 아는 민족이다.”
그러나 한때, 노 무현정권때 여기 미국과 미국국회까지 떠들썩하게 한 한국의 “인천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운동에 많은 “친북반미” 의 젊은이가 동원되었을때 나는 과연 그런가하고 의심한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시작한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반대” 운동으로 몇달만에 1만명 이상의 동포의 서명을 받아 그 보따리를 갖고 우편국에 가서 한국에 보냈을때는 다시 나는 “우리는 고마움을 아는 민족이다”라고 확인했다.
모든 철학과 종교는 물론 정치, 외교, 문화도 사람이 고마운 사람을 고마워할때 싹트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여기 S.F. 중심지에는 “김 만종”씨가 경영하는 양식식당이 여러개 있다. 지난번 그중의 한 식당 Sears Fine Foods (씨어스 파인 후드) 를 찾아갔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극심한 경제위기와 실업자 사태로 많은 사람이 “외식”을 못하고 많은 식당이 문을 닫고있는데, 그식당에 들어가는데 입구부터 사람이 꽉 차있어 나는 무슨 “사고”가 난나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음식을 먹고나니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지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너무나 싸고 맛있었다.” 한달내로 그옆에 또 식당을 사서 운영한다니 지금이 어떤 때인데 대단한 “성공”이다. 도미하여 S.F.에서 대학에 다니면서 “티브런”의 어떤 식당에서 “청소’를 하면서 “고학”하며 “식당하는 것”을 보고 시작하였다는 그는 벌써 6년간 이때쯤 매년 “미국 6.25 참전용사”들을 초청하여 “감사의 저녁식사”를 주고있다. 한국이나 미국신문은 물론 TV, 라디오에도 일절 알리지 않고 묵묵히 매년 차려지는 이 만찬에 올해는 약 70명이 참석한다고 한다.
그사람이 보낸 초청장에는 “As you saved our country, we want to save your name in our hearts…” “당신이 우리나라를 구하였으니 우리는 당신의 이름을 우리가슴에 간직하고져…” 라고 쓰여져 있다.
6.25 참전용사라 자랑하는 우리도 김 만종씨에게서 배울 바가 너무 많다. 우리는 진정 고마움을 아는 민족이다.
서 정하 박사
북가주 6.25 참전단체 연합회장
415-383-8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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