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는 축복인가, 아니면 재앙인가. 뉴욕타임스의 토머스 프리드먼에 따르면 석유는 재앙 쪽에 가깝다.
독재자나 지배군주가 석유 개발이익을 독점한다. 그들은 오일 달러의 위력으로 국민의 정치 참여의지를 억압하면서 자의적인 통치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중동지역과 베네수엘라 등 산유국 공통의 현상이다.
적어도 중동지역에서 석유와 민주주의는 공존할 수 없다. 석유가 독재를 가능케 해서다. 중동지역에서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는 나라는 비산유국 레바논이다. 바로 이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공식이 나온다. 이른바 석유 정치학 제 1법칙이다. 유가와 산유국의 민주화 정도는 반비례한다는 공식이다.
유가가 떨어질 때 찾아드는 것은 민주화다. 저유가시절인 지난90년대 말 나이지리아와 인도네시아는 민주화의 급물살을 탔다. 모로코와 요르단이 민주화 체제를 갖춘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유가가 고공행진을 할 때는 반대로 독재정치가 기승을 떤다. 산유국 대부분이 민주화 역행이라는 ‘자원의 저주’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저주는 전 지구적으로도 확산된다. 회교혁명정부 이란이,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의 위상이 커진다. 또 푸틴의 러시아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독재정치의 검은 역류가 전 세계에 휘몰아쳤던 것이다.
지난번 고유가시절이 그랬다. 그 스타트라인의 해는 2006년. 국제원유가는 50달러 선을 넘더니 배럴당 66달러 선을 마크했다. 이후 수직상승을 거듭, 2008년 국제원유 값은 150달러 선에 거의 육박했었다.
이 시기에 자유는 크게 위축됐다는 게 프리덤 하우스의 보고다. 냉전종식 후 계속 신장만 되어온 게 자유다. 그 민주화의 행진이 12년 만에 정지됐다. 반대로 위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기를 3년째, 2008년은 ‘민주화 불황’의 해로 불리게 된 것이다.
올해 들어 뭔가 서광이 비쳐지는 것 같았다. 민주화 불황의 골은 여전히 깊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가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테헤란의 태도도 다소 고분고분해진 것 같다. 차베스는 풀이 죽은 모습이다. ‘석유의 축’(axis of oil)이라고 불리는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의 위상이 약화된 것이다.
그러나 유가하락은 생각보다 민주화 촉진의 기폭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동시에 석유 정치학 제1법칙에 대한 회의감이 일고 있다.
유가가 크게 떨어졌다는 건 경제 불황이 그만큼 깊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석유독재체제들은 이 불황의 시기에 분명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그 체제는 좀처럼 무너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불황을 맞아 내구력에 한계를 보이고 있는 국가들은 어린 민주주의 체제들이다. 오랜 세월의 소련지배를 벗어나 민주화를 이룩한 몽고가 흔들리고 있다. ‘오렌지 혁명’의 주역이었던 빅토르 유센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정치적 기피인물이 되고 있다.
경제 불황이 몰아닥치면서 그들이 내건 정치공약이 물거품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뭔가 2%, 아니 20%가 부족한 것이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아무리 유가가 떨어져도 민주주의 촉진의 확고한 비전과 정책이 없으면 민주주의 신장은 극히 더딜 수 없다는 진단과 함께.
시선은 자연 오바마 행정부에 쏠리고 있다. 스마트 정책을 표방한다고 했던가. 얼마만큼 스마트한 민주화 촉진정책을 오마바 행정부는 준비했을까. 출범 5개월째를 맞았으나 그 구체적 플랜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경제회복에만 올인한 인상이다. 그러면서 민주화 촉진 포트폴리오는 아무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인권이니, 민주화니 하는 문제에는 모두가 함구다. 오바마 대통령 자신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 여기자들이 이란에서, 또 북한에서 억류되는 사태가 발생해도 침묵만 유지할 뿐이다.
그 가운데 유가가 또 다시 오르고 있다. 국제원유 값이 60달러 선을 돌파하면서 머지않아 80달러 선도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민주화 불황은 장기화될 것이라는 예감이 스친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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