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유럽 순방 중에 이라크를 깜짝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이 LA타임스에 크게 실린 적이 있다. 수많은 미군 장병들에게 둘러싸여 밝게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오바마를 둘러싼 수많은 미군들이 모두 디지털 카메라나 셀폰을 꺼내들고 대통령의 모습을 사진 찍고 있는 광경이었다. 군인들도 카메라를 자유롭게 소지하고 다니는구나 하고 놀랐고, 진짜 대중화된 디카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폰카와 디카가 너무도 흔해진 요즘은 누구나 카메라를 한 대씩 갖고 다니는 셈이다. 젊은이들은 매일 자기 주변의 일상을 찍어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올리고 있으며, 인터넷에는 사진 잘 찍는 정보들이 넘쳐나고, 일부 블로거들은 사진작가 뺨치는 실력을 발휘하여 아마추어 작가 대열에 합류하기도 한다.
시대가 이러하니 이곳 남가주 한인사회에도 사진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요즘 타운의 좀 큰 행사장에 가보면 큼직한 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를 들고 왔다갔다 설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너도 나도 사진작가라며 작품 활동을 해대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작품 활동은 블로거들의 디카 놀이와는 사뭇 다르다. 일단 나이가 모두 중년 이상으로 상당히 많고, 카메라의 기종이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대부분 주변의 일상사를 찍기보다는 여행을 떠나거나 특별한 이벤트를 찾아다니며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출사여행’이라는 다소 낯선 용어를 주위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걸핏하면 선물이라며 작품사진을 건네는 사람도 많은데 대개 ‘달력사진’이라 불리는 풍경사진들로서 사막, 바다, 석양, 나무, 꽃, 산, 뭐 그런 것들을 찍은 것이다.
사진 찍는 일은 카메라만 있으면 되고, 찍는 기술은 금방 익힐 수 있으니까 다들 쉽게 도전하여 사진작가가 되는 모양이다. 수준을 알 수 없는 공모전에 입상하거나 여기저기 그룹전에 참여하면 어느 틈에 작가가 될 수 있는 사진이란 분야는 ‘작가’ 명함을 내밀고 싶은 사람에게 아마 가장 만만한 예술인지도 모르겠다.
더 놀라운 일은 사진작가이면서 문인으로 등단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한가지에서만 작가가 되기도 쉽지 않은데 두가지 예술분야에서 모두 전문가가 되었다니 경이롭기 짝이 없다. 그런데 그런 일을 모두 중년 혹은 노년에 시작하여 몇년만에 다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펄쩍 뛸 만큼 놀라게 된다. 화가인데 글을 잘 쓴다거나, 시인인데 연주도 잘 한다거나, 음악가이면서 사진도 잘 찍는 사람들은 더러 있지만 그 두 가지를 다 잘해서 ‘작가’로 데뷔하는 경우는 거의 천재 급이기 때문이다.
요즘에 이런 작가들이 너무 많아서 좀 짜증이 난다. 누가 봐도 취미로 보이는 수준이건만 꼭 작가라는 명함을 달아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네끼리 협회나 조직을 만든 다음 그 안에서 싸움을 벌이는 일, 그 중 몇 사람이 뛰쳐나와 새로운 협회를 만들고 자기네가 더 실력 있다며 서로를 씹고 비방하는 모습이 혀를 차게 만든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사진의 기본원리조차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가 찍은 사진을 직접 인화해본 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사진예술을 ‘카메라와 필름과 인화지를 통해 창조하는 예술’이라고 할 때, 필름과 현상과 인화를 모르는 디지털 작가들이 너무도 쉽게 무한정 찍어대는 사진에서 얼마나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또한 이런 사람들일수록 작품보다 카메라에 집착하는 것도 공통적이다. 나이콘이 좋다, 캐논이 좋다 하면서 자기 카메라와 렌즈의 성능을 자랑하는 사람들, 렌즈가 클수록 더 실력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지 엄청나게 무거운 렌즈를 늘 보이게 들고 다니는 초짜들이다.
사진작가에게 있어 카메라는 예술을 창조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마치 이 도구가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주는 것처럼 좋은 카메라를 자랑하는 일은 좀 이상하다. 화가가 좋은 붓과 캔버스 때문에 좋은 그림을 그린다거나, 피아니스트가 좋은 피아노 때문에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사진은 찰나의 예술이지만 영원을 담는 기록이기도 하다. 신기하게도 순간을 담은 사진 한 장에서 찍은 사람의 생각과 숨결이 느껴진다. 글 한 줄에 저자의 마음이 담기고 음악과 미술작품에도 예술가의 혼이 담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일은 쉽지만 글을 잘 쓰는 일은 어렵다. 셔터를 누르는 일은 쉽지만 좋은 사진을 찍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무나 작가 하고 싶다고 작가가 되는건 아니라는 말이다.
정숙희 특집 1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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