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장 잊기 힘든 주민발의안 중 하나는 1994년 캘리포니아 선거에 회부되었던 프로포지션 187일 것이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공립교육을 포함한 정부 혜택을 전면 금지시키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여론조사에 의하면 유권자의 70% 이상이 통과된다 해도 법원에서 위헌판결을 받아 시행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도 59%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었고 예상대로 위헌판결을 받아 폐기되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정계에,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였다 - “이제 더 이상의 불법체류자는 싫다”
다음주, 5월19일 캘리포니아 특별선거에 회부된 예산관련 6개 발의안에 대한 투표결과 역시 ‘메시지’의 성격이 짙을 것으로 전망된다 - “우린 이제 지겹다 : 정부의 낭비지출도, 세금인상도, 그리고 잦은 선거도”
1A, 1B, 1C, 1D, 1E, 1F 등으로 별도 내용이면서도 하나의 패키지로 묶여진 듯 보이는 이 6개 법안은 ‘주민’ 발의안은 아니다. 공화당 주지사와 주의회 다수인 민주당 의원들, 소수인 공화당 중 온건파 의원들이 ‘초당적 합의’를 이루어 작성한 법안들로 주민들에게 재가를 구하는 셈이다.
적자해소를 위해 정부의 지출제한 및 예비금 비축이라는 장기대책과 앞으로의 복권수입을 미리 당겨오고 조기교육 및 정신건강 서비스에 배정된 기금을 전용하여 당장 발등의 불인 금년의 적자를 메꾸는 단기대책, 그리고 주의원과 주지사 등의 봉급인상 제한이라는 ‘솔선수범’까지 골고루 포함시켰다. 워싱턴 못지않게 민주·공화의 당쟁이 치열한 새크라멘토에서 주정부 파산을 막으려는 일념으로 서로 한 발씩 양보하여 어렵게 마련한 해결책들이다.
그런데,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보통 발의안 하나를 놓고 찬반으로 갈려 대결하는 진보와 보수의 편싸움도 찾기 힘들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핵심은 발의안 1A다. 예산제도 자체를 변경하는 내용이다. 주정부 지출에 상한선을 부과하고, 재정흑자 때 예산의 12.5%에 해당하는 기금을 재정적자 때를 대비해 비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주의회는 1A가 통과될 경우 최근 잠정시행 중인 세금인상을 2년 더 연장한다는 법안을 따로 통과시켜 놓았다. 다시 말해 1A에 판매세, 주소득세, 자동차 등록세 인상이 포함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긍정적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 정부의 지출제한과 비축금 확보는 보수진영의 오랜 염원이었다. 2년만에 중단될 세금 인상을 4년까지 연장하면 세수입이 늘어나 당장 서비스프로 중단을 면하게 되니 진보진영에도 다행스런 일이다.
현실은 그리 긍정적이 아니다. 보수 유권자들은 세금인상이라며 결사반대하고, 진보 유권자들은 교육과 복지예산 영구삭감을 우려하며 적극 반대한다. 극좌도, 극우도 아닌 중도파 유권자들까지 뭐가 그리 복잡해? 왜 복잡한 결정을 매번 우리에게 떠넘겨? 무슨 음모를 숨긴 거야? 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솔직히 나도 그랬다. 1A 하나에 대한 빼곡한 설명만도 10여 페이지가 넘는 특별선거 안내서를 받아든 순간 “이번엔 기권해야지”라고 생각했다.
2주전 실시한 필드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발의안 들에 대한 유권자의 대표 반응은 ‘노우’다. 단하나, 적자예산 때 주의원들의 봉급인상을 제한하는 1F에만 71%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선거에 임박해 지지가 50% 전후는 되어야 승산을 기대할 수 있는데, 나머지에 대한 지지율은 모두 40% 이하다. 얼마나 중요한지를 몰라서가 아니다. 발의안이 부결되면 주재정상태가 악화될 것이라고 보는 유권자가 47%로, 악화 안될 것이라는 41%보다 많다. 그래도 상관없다면서 반대표를 던지는 민심의 키워드는 ‘불신’이다. 한때 빛을 발했던 스타 주지사의 업무에 대한 긍정평가는 33%로 폭락했다. 주살림은 망해 가는데 당쟁으로 사사건건 교착상태에서 허우적대는 주의회에 대한 긍정평가는 낯 뜨거운 12%에 머물러있다.
엊그제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지사는 발의안 지지를 당부하며 부결될 경우 초래될 엄청난 결과를 우려했다. 대규모 서비스 삭감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일부 소방서가 폐쇄되고, 4만명의 죄수들이 석방되고, 수만명 교사가 해고되고, 경찰력이 약화되고…겁주려는 위협이 아니라, 실상이라며 이보다는 약간의 세금을 더 내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호소했다.
발의안이 통과된다 해서 적자가 모두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결된다면 새크라멘토는 또 다른 해결책을 강구하는 한편 우선적으로 수십억 달러의 지출 추가삭감을 단행할 것이다. 그 무자비한 삭감 칼날에 누가 먼저 희생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차선도 못되고 차악에 불과한 해결책이지만 결점보다는 장점이 더 커 보여 이번 발의안들을 지지한다고 LA타임스는 설명한다.
나도 던져버렸던 선거 안내서를 다시 집어들고 투표하기로 마음을 바꾼다. 요즘처럼 힘들 때 세금인상은 정말 싫다, 그러나 지출제한과 비축금 확보로 영구적인 균형예산이 실현된다면 2년 정도는 참아도 될 듯싶다. 균형예산이 정착되면 교육, 공공안전, 복지 등 기본지출의 삭감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주지사의 말을 한번 더 믿어보려고 한다.
박록/주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