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산길 지나니 마을 전체가 기와집
‘3대 전통’‘제조 기능인’ 등 상호들 그럴듯
여덟 번째 날입니다. 광주를 출발하여 담양읍을 향해 걷기 시작합니다. 좁고 한적한 구 도로를 따라 걷습니다. 아직은 농사철이 아니어서 간혹 거름을 나르는 모습이 보일 뿐 들녘이 한적하고 평화롭습니다.
담양군은 가사문학과 정자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수많은 정자와 관련 문화재가 남아있는 지역입니다.
‘소쇄원’과 ‘식영정’이 대표적인 명소이며, 송강 선생의 발자취가 진하게 남아 있는 곳입니다. 고서면 쌍교 마을을 지나면서 길 건너 언덕 위에 정자가 보이기에 지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송강정’이라고 말해줍니다. 정철 선생이 머물었던 작은 정자입니다.
알다시피 담양군은 옛날부터 대나무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대나무축제 홍보물이 곳곳에 붙어있습니다.
‘죽녹원’을 방문했습니다. 넓은 대나무 숲입니다. 바람에 쓸리는 댓잎소리를 들으며 서늘한 대나무숲속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담양군은 대나무로 만든 새로운 웰빙제품을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한편 대나무 산업을 지역의 성장 동력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점심을 먹으려는데 대통밥이라는 메뉴가 보입니다. 대통 속에 쌀을 넣어 밥을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식후에는 댓잎 차 한 잔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담양에서 순창군으로 넘어가는 길은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시원하게 뻗어 있습니다. 길을 넓히면서 이 나무들이 하마터면 베어 없어져버릴 뻔 했는데, 뜻있는 사람들이 앞장서 막아냈다고 합니다. 이 길이 영화촬영 장소로 이용된 이후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답니다. 오늘은 전라남북도 경계까지만 걷기로 했습니다.
아홉째 날. 전라북도 순창군에 들어왔습니다. 구불구불 산길입니다. 산 넘어 또 산입니다. 봄 산은 생명이 움터 나오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한데도 등에 땀이 흠뻑 젖습니다.
순창읍까지 8킬로라는 이정표를 보았는데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또 순창읍 8킬로라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읍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고치도록 말해주었습니다.
농부가 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무엇을 심을 거냐고 물었더니 고추농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부근마을은 거의 모든 밭에 고추를 심는다고 합니다. ‘고추장 마을 4킬로’라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장수, 장류의 고장”이라는 현수막도 보입니다.
고추장마을에 들렀습니다. 순창읍 백야리입니다.
마을 전체가 기와집입니다. 50여호 되는 이 마을에서 고추장, 된장, 청국장, 장아찌 등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원조 김점례 할머니 고추장’, ‘전통고추장 제조기능인 김성숙’, ‘3대 전통원조 빚어내는 왕실순창전통고추장’ 등, 제각기 그럴듯한 이름을 내걸고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고추장, 된장 항아리가 집집마다 마당에 가득합니다. 어느 집에 들렀더니 아주머니가 주걱으로 된장을 용기에 담고, 상표를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메주를 만들어 집안 가득히 걸어놓은 곳도 있습니다. 재래식 방법으로 만들기 때문에 방문객들에게 파는 물량정도만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합니다.
시식관을 지나는데 영어음악이 들려옵니다. 고전음악이나 장구소리 정도면 이 마을 분위기에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순창읍을 지나 임실군 쪽으로 걸어갑니다. 길을 넓히고 있습니다. 언덕이 꽤 가파릅니다. 힘들다는 내색도 없이 아내가 잘 따라오고 있습니다.
갈재 마루에 당도하니 날이 저물기 시작합니다. 갈재를 넘으면 임실군입니다. 근처에 민가도 없고 잠잘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마침 버스가 한 대 오기에 손을 들어 세웠습니다. 운전사에게 물어보니 이 근처 운암대교 부근으로 가면 모텔이 있을 거라고 합니다.
강진이라는 곳에서 운암호 가는 버스를 갈아탔습니다. ‘하필리’라는 마을 표지석이 보입니다. 하필이면 마을 이름이 하필리일까 하는 생각이 스쳐갑니다.
운암호는 다목적 인공호수인데 가뭄이 심한 탓인지 물이 많이 줄었습니다. 멀리 산골짜기 외딴 집 굴뚝에서 연기 한줄기 올라갑니다. 저녁밥을 짓는 모양입니다. 내일은 임실군을 걷게 됩니다.
정찬열
도보 국토 종단기 <4>
집집마다 고추장·된장 항아리가 마당에 가득한 순창 고추장 마을.
순창 고추장 마을에서 된장을 용기에 담아 상표를 붙이는 작업을 하는 아주머니들.
고추장 마을을 알려주는 표지판.
운암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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