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터지 문학의 금자탑으로 불리는 ‘반지의 제왕’은 악의 근원인 반지를 영원히 없애는 것이 줄거리다. 이 소설에는 인간과 마법사, 난쟁이와 요정, 요괴, 유령 등 숱한 종족이 등장한다. 이 들 가운데 가장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종자가 있다. 호빗이다. 얼핏 보기에 어린 아이 같이 생긴 이 종족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과다. 또 하나 특징이라면 동물이든 식물이든 살아 있는 것을 기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가장 힘없고 약해 보이는 이 종족이 ‘악의 반지’를 없애는데 결정적인 일을 한다. 이 반지를 반지의 마법에 걸려 괴물로 변한 골럼으로부터 얻어낸 것도 호빗이고 이를 ‘멸망 산’으로 가지고 가 용암 속에 빠뜨려 녹여 없애는데 제일 큰 공을 세우는 것도 호빗이다. “세상의 운명은 때로는 가장 작은 자의 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이 소설의 메시지다.
지난 100년간 세계의 역사를 바꾼 가장 중요한 사건인 제2차 대전은 5,000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 끝났다. 이런 엄청난 전쟁의 결과를 좌우한 것은 극소수 젊은이들이었다. 1940년 히틀러가 유럽 대륙을 제패했을 때 1년 여 동안 이와 맞서 싸운 것은 영국뿐이었다. 히틀러는 영국 침공에 필수적인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 쉬지 않고 전투기와 폭격기를 보냈지만 끝내 실패했다. 수백 명에 불과한 영국 전투기 조종사들의 결사적인 저항 때문이었다. 히틀러는 결국 영국 침공을 포기하고 총구를 소련으로 돌렸다 멸망의 길을 가고 만다. 처칠은 훗날 “인류 역사상 그토록 많은 사람이 그토록 적은 사람에게 그토록 많은 빚을 진적은 없다”는 말로 이들의 공로를 치하했다.
1942년 태평양전쟁 최대 해전인 미드웨이 전투도 마찬가지다. 불과 수십 명의 미군 전폭기 조종사들이 4척의 일본 항공모함을 수장시키며 사실상 전쟁의 승패를 갈랐다. 그전까지 승승장구하며 공세를 펴던 일본은 그 후 연전연패하며 수세에 급급했다.
20세기 미국 정치사상 잭 켐프 만큼 뜻밖의 영웅을 찾기도 힘들다. 남가주 옥시덴털 칼리지에서 체육 교육을 전공하며 풋볼 선수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아인 랜드와 윌리엄 버클리 주니어 등을 읽으며 독학으로 누구 못지않은 경제 지식을 쌓았다. 70년대 뉴욕 버팔로의 연방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한 후 민주당 리버럴 진영의 2중대 역할에 만족하고 있던 공화당 지도부를 비판하고 어째서 감세가 미국 경제와 공화당을 동시에 살릴 수 있는 비결인가를 강조했다.
그는 당시 70%에 이르던 최고 세율을 대폭 낮추는 법안을 4번 제출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나 그의 이처럼 집요한 감세 주장은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여 공화당 의석수를 늘리는데 기여했고 1980년 대선 후보로 나온 로널드 레이건은 이를 주요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당선 후 켐프의 감세안을 법으로 만들었다. 80년대의 번영을 가져온 레이거노믹스는 켐프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
그는 또 백인 중산층 위주로 짜여진 공화당의 세력 기반을 소수계와 이민자까지 넓히려 애쓴 대표적 인물이다. 풋볼 선수로 뛰며 흑인들과 매일 어깨를 비비고 산 그는 개인의 능력과 피부색과는 아무 관계가 없음을 뼛속 깊이 체험했다. 그는 공화당이 포용력 있는 ‘링컨의 당’임을 상기시키며 ‘큰 집 공화당’(Big Tent Republican Party)을 누구보다 열렬히 주창했다.
그런 그가 지난 2일 7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레이건도 그도 떠난 공화당은 반 이민주의자, 기독교 근본주의자, 낙태 반대론자 등이 판을 치는 찌그러진 ‘작은 집’으로 변해가고 있다. 첨단 테크놀로지와 금융 중심지 거주자, 전문직 종사자, 고학력 고소득자, 이민자, 소수계, 중도파 등은 줄줄이 공화당을 버리고 있고 지도부는 지리멸렬 상태다.
지난 번 대선에서 공화당이 이긴 곳은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캔사스 등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이 미국에서 가장 낮은 지역이었다. 이대로 가면 30년대부터 수십 년 동안 만년 소수당 노릇을 해오던 과거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공화당은 하루 빨리 정신을 차려 ‘링컨과 켐프와 레이건의 당’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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