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1,461일(운이 좋으면 2,922일) 동안 계속될 대통령의 국정 성공여부를 단 100일만에 평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백악관도 애써 ‘100일’을 무시하려고 했다. 더구나 지난 주말부터 휘몰아친 돼지독감이 미디어를 점령하면서 백악관은 100일 기자회견도 취소해야하는 것 아닌가하고 고심했다. 그러나 어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타운홀 미팅과 황금시간대 기자회견등을 예정대로 진행하며 취임 100일의 홍보효과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오바마 백악관의 비공식 모토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독감발생에 성공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론조사마다 높게 나온 대통령의 지지도에 한껏 고무되어서이기도 하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의 조사에선 업무수행 지지도가 69%로 집계되었고 보수언론 월스트릿과 NBC방송 조사에선 오바마 개인에 대한 호감도가 무려 81%나 되었다.
그러나 오바마가 받은 최고의 백일선물은 따로 있었다. 알렌 스펙터 공화당 연방상원의원이 전격 선언한 민주당으로의 당적 변경이었다. 그건 쉽지 않은 첫 100일을 숨가쁘게 보내고 두 번째 100일의 험난한 여정을 각오하던 대통령에겐 자신의 표현대로 ‘스릴을 느낄만큼’ 기쁜 소식이었다. ‘꿈의 60석’을 의미한다. 상원에서 민주당이 공화당의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를 차단할 수 있는 안정의석를 확보한다는 뜻이다. 스펙터에 더해 아직도 법정공방 중인 미네소타주 연방상원 선거 결과가 민주당의 승리로 확정된다면 완전한 60석이다. 민주당 대통령이 추진하는 모든 정책을 입법화 할 수 있는 민주당 천하가 도래하는 것이다.
28일 스펙터의 민주당 합류 선언은 당장 돼지독감 뉴스를 압도했다. 특히 워싱턴 정가에선 충격, 그 자체였다. 돼지독감 청문회를 하던 민주당 의원들은 ‘키스도 포옹도 하지말라’는 보건당국의 예방수칙을 무시하고 기쁨에 겨워 스펙터를 끌어안았고 ‘배신자의 정치적 계산’으로 평가절하한 공화당 의원들은 분노, 냉소, 허탈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스펙터의 이적 자체는 공화당에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낙태는 지지하고 총기소유는 반대해온 중도파 스펙터는 보수이념과는 거리가 먼 ‘무늬만 공화당’이었다. 공화당이 사생결단으로 막으려던 오바마의 경기부양안도 스펙터 포함 3인의 당론 이탈로 통과되었으니까 차라리 잘 됐다는 극우파의 반응도 빈말만은 아니다.
그러나 연방상원 수가 41명에서 40명으로 줄어든다는 것은 공화당에겐 치명적 손실이다. 힘없는 공화당의 마지막 무기, 필리버스터 능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이제 의회내 공화당 보이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적 뇌사상태라 할 수 있다. ‘판을 바꾸는’ 지각변동이 아닐 수 없다.
스펙터는 두가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우선 자신의 내년 재선전망이 어둡다는 것,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민주당에 합류한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펜실베니아주 연방상원의원 공화당 예선에서 낙선할 것이 거의 분명한 상태다. 극우보수만이 득세한 공화당에선 스펙터 같은 중도파는 설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무슨 이슈든 민주당 당론에 따라 표를 던지는 자동 거수기는 안 되겠다는 경고다. 거리낄게 없는 79세 5선의원이니 자칫 이번엔 ‘무늬만 민주당’이 될 위험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까탈스런 스펙터를 무조건 환영하며 오바마는 2010년 중간선거에서의 전폭지지를 공개적으로 다짐했다. 잃을 것보다는 얻을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타이밍도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이제는 꽤 좋은 평가를 받은 첫 100일에 제시한 다양한 어젠다를 실현해야할 때다. 절대 필요한 것이 의회와의 협조다. 상원 60석, 그건 오바마에게 날개를 의미한다.
공화당과 대립각을 보였던 금융규제 강화안 통과로 월스트릿에 변화를 밀어부칠 수도 있고 여름이 가기 전 헬스케어 개혁을 실현시킨다면 에너지와 교육 개혁에 이어 자꾸 뒤로 밀리는 이민 개혁을 성사시킬 수도 있다. 내년 중간선거 전까진 공화당의 반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까지 오바마는 민주당의 만장일치적 지지를 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론 다를 것이다. 예산안 세부사항 심의에서 헬스케어, 에너지 등 주요 안건 모두가 민주당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들이다. 당내 반란이 자주 고개를 쳐들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주당 무적천하가 자칫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모든 권리엔 당연히 책임이 따른다. 절대적 권리는 절대적 책임을 뜻한다. 앞으론 ‘반대위한 반대’만 한다고 비난할 수 있는 공화당이 사라진다. 첫 100일로 ‘부시 탓’도 퇴색했다. 민주당 대통령과 민주당 의회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높은 인기라는 정치적 자산과 뜻밖의 선물로 얻은 60석 상원의 절대적 의결권을 잘 선용한다면 민주당 대통령과 민주당 의회는 여론에 일희일비 하지않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장기 대책을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권한을 절제하지 못한다면, 유권자들은 ‘균형과 견제’라는 원칙을 기억할 것이다. 보통 중간선거를 통해 여당이 잃는 의석은 양원 합해 30석이라고 한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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