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9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는다. 미디어들이 여론조사와 전문가를 동원하여 분석하고 평가한 새 대통령의 첫 성적표가 이번 주말부터는 연달아 발표될 것이다.
미국의 새 대통령에게 부담을 넘어 압박감을 주는 ‘100일’ 개념이 생겨난 것은 익히 알려진 대로 프랭클린 루즈벨트 때였다. 1933년 대공황에 빠진 국가를 구해내기위해 소집한 연방의회 특별회기가 3월9일부터 6월16일까지였고 이 100일동안 15개의 긴급법안을 번개처럼 통과시키며 루즈벨트는 뉴딜의 터전을 마련했다.
이때부터 100일은 대통령의 초기성공을 평가하는 기준점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전체 임기의 성패를 예측해주는 정확한 잣대가 되어온 것은 아니다. 집권초기에 실수 연발로 허둥댔던 클린턴은 그후 안정을 찾으며 재선에 거뜬히 성공했고, 대법원 판결 덕에 간신히 취임했던 부시는 ‘놀랄만큼 프로페셔널한’ 행정부를 이끌어 초기에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테러와 금융위기 등 예상치 못한 사태에 직면해 결국 초라하게 퇴장했다. 취임 초 83%라는 높은 지지도를 누렸던 케네디도 100일은커녕 자신의 목표는 “1,000일에도 실현되기 힘들 것”이라고 개탄했다.
프랭클린 이후 가장 숨 가쁘게 첫 100일을 보낸 대통령은 오바마일 것이다. 올A 성적표까지는 글쎄, 장담하긴 힘들지만 어제까지 7개 주요법안 서명을 비롯해 그가 처리한 업무의 성과는 주목받을 만하다. 미 사상 최대규모인 7,870억달러의 경기부양안 서명등 경제대책,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와 고문금지, 직장내 성차별 소송권 확대, 저소득층 아동건강보험 연장, 이라크 철군시기 확정, 아프간 증파 승인, 줄기세포 연구제한 완화, 그리고 국제외교무대 ‘성공적 데뷔’…대충만 꼽아보아도 한참이다.
여기에 더해 헬스케어, 에너지, 교육, 이민등 모든 이슈가 다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달라진 것을 피부로 느낄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하나, 변화를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는 예외가 있다. 외교 스타일이다.
한 두주전부터 새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 ‘오바마 독트린’
4월 첫 3주 동안 유럽과 중남미를 순방하며 오바마가 국제무대에서 선보인 미국외교의 새로운 방향이다. 오바마의 외교정책은 부시와의 차별화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림하는 일방주의에서 대화하고 타협하는 다자주의로의 급선회다. 오바마가 캠페인 내내 ‘미숙하다’는 질책을 감수하며 고수해온 신념이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신념을, 경제위기에 파묻힌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행동으로 옮기는 속도가 놀랄 만큼 빠르고 과감하다.
지난 주말 중남미국가들과 회동한 미주기구 정상회의가 끝난 후 열린 회견에서 한 기자가 ‘요즘 자주 거론되는 오바마 독트린의 중심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오바마는 크게 두 가지를 들었다 : 첫째,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인 것은 여전하지만 미국 혼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른 국가와 협력해야 한다, 협력하려면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하지 말고 경청도 해야 한다. 둘째, 다른 나라의 문화와 시각을 존중하며 차별 없이 동등한 파트너십으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 우리가 심으려는 가치관과 이상이 왜 좋은 가를 설교가 아닌 모범적 실행으로서 보여주어야 한다.
“미국은 위대한 국가이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한 겸손하고 솔직한 자기평가는 유럽과 중남미 순방 곳곳에서 행동으로 드러났다. 프랑스 연설에선 그동안 미국이 ‘오만했음’을 인정하였고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선 반미의 기수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미소 띤 악수를 나누었으며 50년 적대국 쿠바에 대한 제재조치를 풀기 시작했다.
변한 미국이 선보이는 새로운 외교에 대해 세계의 지도자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지만 그들의 찬사가 외교적 성과로 연결될 지는 미지수다. 어떤 평가를 내기에도 아직 이르다.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국내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리버럴 진영조차 전폭지지에 소극적이다. 특히 보수우익은 인내하고 기다려줄 태세가 전혀 아니다. 유럽순방은 ‘사과여행’으로 빗대지고 ‘나약한 카터외교의 복사판’이라거나 ‘무책임하다’는 폄하가 난무하며 공화당 중진들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여론은 여전히 오바마 편에 서 있다. 그의 외교방향을 62%가 지지한다. 그런 변화에 대한 바람이 오바마를 당선시킨 힘의 한 축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오바마 독트린은 그가 취임연설에서 강조했듯 적성국가에도 “당신들이 기꺼이 주먹을 편다면 우리도 손을 내밀 것”이라는 조건부 화해의 신호를 담고 있다. 아직은 당근만을 들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인도적 외교를 강조하지만 합리적 현실주의자인 오바마가 채찍이 필요한 시점을 놓칠 만큼 순진하다고 보는 것은 오산이다.
이란까지 포함한 반미국가들이 오바마 외교정책을 신중하게 관망하고 있는 시점에서 유독 한 나라, 보란 듯 미사일을 쏘아올린 북한이 그 채찍의 본보기가 될까 그래서 우려된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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