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몇일 있으면 이곳에서 대지진이 난지 103년째 되는 날이다.
지난 여러해 동안 4월18일이 되면 신문과 방송에 당시 있어던 참사를 소개하고 현장을 목격했던 사람들과 인터뷰등을 내보냈는데 이제는 생존자가 남아 있지 않아 그 후손들의 이야기로 대신 한다.
당시 마켓스트릿을 포함한 다운타운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 같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피해자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그날 새벽 5시15분에“릭터 스케일”7.8이라는 강진이 샌프란시스코를 위시해서 산타 로사까지 엄습을 했다. 지각변동에 의한 재난과 그리고 뒤따르는 화재로 재산 피해는 많았지만 인명피해는 그리 많지는 않았다. 80여년후에 닥친 “로마 프리에타”는 강도가 6.7이였으나 당시의 피해상황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손실이 적었다. 물론 1906년 지진이 있은후 지진에 대비한 건축기술의 꾸준한 향상으로 그리 큰 인명과 재산 피해는 없었다. 그래도 배이 브리지 한구간이 주저 앉았고 17번 프리웨이-지금은 880 프리웨이라고 한다-상단이 무너저 아래층 길을 달리던 여러대의 차량들이 피해를 보았다. 천재가 불러온 참 무서운 장면이었다.
1906년 지진때 참상도 많았지만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있다. 대지진이 발생한 날은 세계적인 테너“엔리코 카루소”가 샌프란시스코 그랜드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한 다음날이였다. 공연작품은 비제의 “칼멘”이었고, 그는 돈 호세역을 했다. 투숙 했던 호텔 천장이 주저 앉으며 흑더미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그는 체면이고 뭐고 다 내팽개친 채 속옷 바람으로 울면서 헤매고 다녔다고 한다. 그때 너무도 놀란 그는 살아 생전 다시는 샌프린시스코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끝까지 자신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다.
다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도 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은 금싸리기땅으로 백인 투자가들이 욕심을 내던 곳이었다. 이들은 지진후에 정치인들을 동원, 외곽지대인 헌터스 포인트로 차아나타운을 옮길 계획을 하고 있었다. 당시 차이나 타운에는 중국사람들만이 아니고 우리동포와 일본 사람들도 어울려 살았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때에 동양 사람들이 이곳을 벗어나서 백인지역에 들어가면 그들한테 봉변을 당하기가 십상이었다고 한다. 이야기가 좀 벗어나지만 이조 말엽에 관광객으로 온 조선 왕자가 마켓 스트릿에서 중국사람으로 오인 받고 백인들 한테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벌어젔다. 왜 차이나 타운을 벗어냤느냐는 것이다. 나중에 신원이 밝혀저 시장으로 부터사과를 받었다고 크로니클지가 보도했다.
지진이후에 일본사람들은 지금 니혼마찌가있는 웨스턴 에디션으로 이주 하여 그들의 커뮤나티를 만들었다. 지진때 놀란 중국 사람들 많은 수가 오클랜드에 오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지진 피해가 덜 심한 이곳을 피난처로 삼았다. 그때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 지금 오클랜드 차이나타운을 형성 했다고 한다. 이곳도 샌프란시스코 처럼 인종 차별이 심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밀려오는 피난민 때문에 그들이 정착할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시작 했다. 기록에 의하면 처음 차이나타운은 지금있는 곳이 아니었고 그랜드가와 20가 근처였는데 백인들에 의하여 척박했던 지역으로 밀리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중국피난민 대열에 우리 동포들이 끼어 있었고, 이들이 오클랜드에 한인이 거주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후에 하와이에서 고용계약을 마친사람들이 새크라멘토 근처에서 농사 일을 하다가 오클랜드 차이나타운에 정착 하며 스몰 비지니스를 운영 하기도 했다.
지진에 대하여 한가지 더 재미 있는 이야기는 1989년에 유래를 찾어볼수 없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자이언츠와 에이스가 캔들스텍팍에서 월드 시리즈 야구 경기를 벌리고 있었다. 이때 “로마 프리에타” 강진이 덮첬고 경기가 중단 되었다.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 야구 팀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좌웅을 겨룬 것은 보기 힘든 일이었다. 나도 그동안 여러번 지진을 당하며 ‘큰 꿈을 갖고 온 미국에서 비명 횡사하는게 아닌가’ 두려운 생각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40층 높은 건물에서 일을 하다가 지진이 날 때 사무실 창에서 베이 부리지 교각에 시선을 마추면 건물이 좌우로 약 1 피트씩 움직이는 모습도 목격했다. 겁도 났지만 그래도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가 시시때때로 발생 하는 미국 남부나 중부보다는 이곳이 났다고 외지에서 온 사람들한테 자랑도 한다. 산 안드레아스와 헤이워드 지진대가 오클랜드와 인접도시를 지나 간다 하여도 그리 겁을 먹을 일은 아니다. 이제 지진도 생활의 한부분 처럼 되어간다. 지진날때면 그저 그런가보다한다. 그래도 캘리포니아가 좋고 더구나 오클랜드를 떠나고 싶은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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