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드디어,베란다 화분들에 심었던 샐비어등을 다 걷어냈습니다. 작은 베란다에 좁고 길다란 나무 화분 3개와 좀더 폭이 넓고 긴 플라스틱 화분 2개 그리고 이사올 때 가지고 온 둥근 항아리 모양의 검은 화 분 2개며, 또 크고 작은 여러개의 화분에 잡다하게 이것 저것 심었던 것들을 말끔히 걷어버렸습니다. 금년엔, 앵두 토마토며 풋고추등 열매 맺는 것들은 안 심으려합니다.
지난 해 5월, 샌프란시스코 베이 브릿지 근처의 이콘도로 이사를 오자 마자, 떠나온 동부 내 집 담장 안의 아담한 텃 밭을 잊지 못하고, 조그만 베란다에 샐비아며 몇가 지 꽃들과 함께, 풋고추며 앵두 토마토를 정성껒 심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처음 몇달동안, 잎과 줄기가 쑥쑥 돋아나면서, 오종종 열매까지 맺기 시작 하던 토마토 와 폴투갈 고추가 어느날 갑자기 약속이라도 한듯 초록색으로 굳어진 채 고만고만한 크기에서 딱 멈추고 말았습니다. 눈여겨 살펴보았더니, 오후 3시 반 에서 7시 반까지 4시간 동안 머물곤 하던 햇빛이 점점 서둘러 다른 빌딩쪽으로 옮 아가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햇빛이 머무는 시간이3시간, 2시간으로 줄어 들더니, 나중엔 아예 우리 집 베란다를 건너 뛰는지 거의 햇빛을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적어도 6시간은 햇빛을 받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4시간으로 혹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을 까, 요행을 바라며 심었었는데…
결국 풋고추는 더 커지지 않고, 꽈리송이처럼 동그랗게 진한 초록으로 단단하게 굳어진채 한 겨울이 되도록 매달려 있었는데, 그나마 앵두 토마토는 늦은 가을부터 초겨울로 들어서면서 하나씩 둘씩 빨갛게 익기 시작했습니다. 아까와서 손을 안 대고 한동안 바라보기만 하다가, 어느 날 빨갛고 탐나는 토마토 한알을 따서 입에 넣고 살며시 씹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해 아니 그리고 그 지지난 몇 해동안, 동부의 텃 밭 에서 따서 먹을 때처럼 말캉 씹히며, 입안 가득히 달디 단 즙과 함께 상큼한 향기로 고여오던 그 맛이 아니었습 니다. 보기에는 똑같이 탐스럽고 빨갛게 윤기나는 그 토마토는 내 입안에서 구슬처럼 뱅그르 한바퀴 돌더니, 짓이겨지듯이 으깨지며 들큰한 즙을 찔끔 흘리고는, 굳은 껍질로 구겨지듯 입안에 그대로 남겨 졌습니다.
어쨋거나, 신기하게도 한 겨울을, 샐비어와 임페이션 꽃이 계속 피어 있는 내 작은 베란다에서 꽈리처럼 동그랗게 매달린 진귀한 고추들과 앵두 토마토는 그런대로 휼륭한 관상용 식물이 되어 해를 넘겨주었습니다.
말끔히 정돈한 화분들에서 한 1/3정도의 흙을 걷어내서 버리기 쉽게 비닐봉지에 담아 옆으로 밀어놓고, 대신 새로 사온 흙으로 살살 채워넣었습니다. 금년에도 또다시, 그늘에서도 잘 피는 임페이션 꽃들은 안쪽 화분들에, 매혹적인 붉은 꽃잎들이 떨어질듯 긴 줄기에 총총히 매달린 프리지어와, 진홍의 피튜니아, 그리고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팬지 꽃들은 햇빛과 그늘 반반의 조건에서도 잘 된 다기에 노랑, 하얀 색 진 자주, 그리고 진 남색, 연 남색 얼룩이등으로 색갈을 맞추어 긴 화분에 정성껒 심어서, 베란다 바깥 쪽으로 주욱 내 놓았습니다. 뻐근한 허리를 두드리며, 집안으로 들어와 안에서 잘 보이도록, 돌아가며 거실과 작은 서재의 블라인드를 이리저리 조절해 놓은 후, 다시 거실 소파로 돌아와 앉아 봅니다.
새로 심은 팬지꽃들과 임페이션 꽃들 뒷 편으로, 맨 끝 베란다코너에 2주 전에 심 었던 분홍색 제라늄들이 두개의 둥근 항아리 화분에 곱게 피어 있고, 지난해 한국에 갔을 때, 손아래 올캐가 화분을 엎어 묘근을 신문지에 싸주어 가져다 심은 ‘사랑초’ 의 진한 자줏빛 잎들이 바람에 부드럽게 살랑거립니다. 봄부터 여름내내 그리고 가을 햇살이 비낄 때까지, 토마토, 풋고추, 깻잎은 물론, 상추와 쑥갓 부추에 아욱이며, 한국오이와, 한국호박, 즈키니 그리고 일본 가지에 이르기까지, 지칠 줄 모르고 온 몸에 햇살을 받으며, 누리던 나의 전원생활은 앨범 속의 사진들처럼 이제는 지나가 버린 삶이 되었습니다.
은퇴 이전, 동부의 우리집 거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노라면, 몇시간동안 자동차 한대 지나가지 않았고, 앞 뜨락에 그늘조차 빠알갛게 물들일것 같았던 메이플 나 무에 걸어 놓은 새먹이 집에 날아와 오그그 모이를 먹으며 우짖지던 크고 작은 각가지 새들과, 나무 밑둥까지 닥아와 함께 어울려 놀다가던 다람쥐가 오직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 같았던 고요한 생활이었습니다. 마침내, 베란다에 햇살이 환하게 닥아오는 시간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꽃으로 둘러싸인 내 작은 베란다에 나가 의자에 앉습니다. 의자에 앉고보니, 불현듯 차 마시기를 즐기는 서울의 내 친구 생각이 납니다. 구색 을 맞춘 예쁜 찻잔도, 찻잔을 올려 놓을, 쓸만한 테이블도 아직 장만 하지 못했지만, 나는 아마도 이 자그마한 베란다 때문에 낯선 항구도시 샌프란시스코를 이처럼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몸이 허약해져서 먼 여행이 쉽지 않다는 그 친구에게, 그리고 다정하기 이를데 없는 내 남동생에게 연분홍 갸날픈 꽃술을 피워 올리기 시작한 자주빛’사랑초’와 함께, 햇살을 받아 더욱 영롱하게 반짝이는 베란다의 내 작은 꽃밭을 카메라에라도 담아 보낼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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