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문편집인협회가 매년 4월에 가져온 연례 컨벤션의 금년 일정을 취소했다. 1922년 설립된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5년을 제외하곤 처음이다. 신문업계에 몰아친 한파를 실감케 한다. 그러나 편집인들의 보스인 발행인들 모임 미국신문협회는 예정대로 이번 주 초 샌디에고에서 2009 컨벤션을 개최했다. 주제는 당연히 벼랑으로 몰린 신문의 살길 찾기다.
7일의 기조연설 분위기는 묘했다. 연사는 호황을 누리는 구글의 에릭 슈미트회장, 청중은 불황에 고심하는 신문사 발행인들로 연사와 청중의 관계가 좀 껄끄러워서다. 구글이 신문의 콘텐츠를 도용 내지 오용하여 막대한 돈을 벌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 지는 이미 오래다. 연설 하루 전 AP통신도 뉴스 콘텐츠가 온라인상에서 도용되는 것을 막기위해 강력 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었다.
슈미트회장은 이에 대해 직접 반박은 하지 않은채 신문의 살길은 콘텐츠 규제를 걱정하기보다는 온라인 광고 활성화를 통해 수익을 올려야 하며 광고를 끌기위해선 온라인에 적합한 새로운 포맷을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막에서 신음하는 사람에게 5개년 계획서를 작성하란 것과 같다’는 비난도 없지 않지만 문제는 신문의 앞날을 위한 신통한 다른 대안이 없다는 데 있다.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투자해 작성한 기사가 공짜로 구글에 올려져 많은 독자를 끌면서 독자증가에 따른 엄청난 광고수입으로 구글이 돈을 버는 것은 알고 있지만 콘텐츠 공급중단을 하지 못하는 것이 신문사들의 입장이다. 그나마 구글 서치를 통해 각 신문사 웹사이트로 넘어오는 트래픽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연결되는 사용자들의 클릭 수가 한달에 수십억에 달한다니 ‘구글은 새로운 의미의 신문 가판대’라는 블로거들의 비유가 과장만은 아닌 듯하다.
지난 1년여는 아마도 미 신문역사상 최대 수난기였을 것이다. 2008년 1월이후 약 120개의 신문이 폐간되었고 67개 신문사에서 2만1천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신문산업 전문 웹사이트 페이퍼컷의 통계다. 150년 역사의 일간지가 하루아침에 폐간되었고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던 신문기업들이 파산을 신청했으며 몇 년전 70달러였던 한 신문그룹의 주가는 1달러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앞으로도 신문이 죽어가는 이같은 추세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미디어 분석가들은 연일 불길한 예언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 반론도 있다. USA 투데이의 설립자 앨 뉴하스는 신문의 죽음이라니! 넌센스라고 한마디로 부정한다. 미국의 1,422개 일간지 대부분은 아직도 건재하며 5~10%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면서 멀지않은 경기회복과 함께 재도약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스카보로 리서치에 의하면 주중 종이신문을 읽는 미국인은 1억명에 달한다. 일요일엔 1억5,000만명으로 늘어난다. 인구의 52%다. 성인의 75% , ‘엘리트’의 84%가 매일 신문을 구독한다. 신문의 영향력은 여전한데 비판정신이 강한 저널리스트들의 자학증이 너무 빠른, 너무 과장된 신문의 부음을 쓰고있다는 지적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종이신문에 대한 비관론이 갈수록 힘을 받고 있는 것은 어쩔수 없는 추세다. 2004년 출간된 ‘사라지는 신문’의 저자 필립 메이어교수가 예언한 신문의 종말은 2044년이었는데 사회학자 폴 길건은 2015년으로 앞당겨 놓았다. 독자들의 습관이 바뀌었고 광고시장이 변했으며 경기불황이 끼어든 환경에서 이런 변화에 빠르고 스마트하게 적응하지 못한 신문사들의 부실대응이 현 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이 신문산업 위기에 대한 분석이다.
해결책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신문을 살릴 수 있을까에 대한 기사가 온라인에 매일 넘쳐난다. 수많은 제안을 정리하면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정부의 지원이다. 은행이나 자동차회사처럼 신문사도 구제하자는 것인데 연방상원에 ‘신문회생법안’도 상정되었다. 프랑스처럼 수억달러 예산을 배정하는 직접지원이 아니라 신문을 비영리기관으로 바꾸어 면세혜택을 주자는 내용이다. 미디어의 생명인 독립성 훼손을 감수해야하니 우선 신문 쪽에서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둘째는 급증하는 온라인 독자에 대한 구독료 부과다. 신문은 죽어간다는데 뉴스수요는 급증하고 있는 아이러니칼한 현상이 신문의 살길 찾기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신문산업이 종이에 머물지 않고 온라인 영역을 보다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미 월스트릿저널은 유료화를 정착시켰고 실패한 경험이 있는 뉴욕타임스와 LA타임스 등 콘텐츠에 자신을 가진 신문들이 앞으로 몇 달내 재시도를 계획하고 있다.
관건은 지금까지 무료에 익숙해진 독자들이 과연 돈을 낼까에 있다. 된다, 안된다로 뜨겁게 달아오른 논쟁을 단순한 한마디가 결론짓는다. “공짜로 보는 것보다 내용이 뛰어나면 돈을 내지 않을까” - 그건 불황을 구실로 안일하게 타협하며 소홀히해온 저널리즘의 기본가치를 상기시켜주는 말이기도 하다.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 그래서 독자가 신뢰할 수 있는 기사는 종이신문 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신문의 생명을 지켜주는 저력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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