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씨는 계속 혼자 살 거야?”
“이 늙은이 데리고 갈 사람이 없잖아.”
“뭐가. 들국화처럼 아직 향기와 멋이 있는데.”
“겨울이 눈앞에 왔네요.”
“그러니까 곁에 사람이 있어야지.”
“새삼스럽게 사람 성격 알고 습관 익히다 할매 다 되겠다.”
“그래도 혼자 있는 것 보다 낫잖아.”
“혼자 있는 것이 편한데 뭐.”
“아직 나이도 있는데 생각 안나?”
“우리 일 들어가.”
미리는 의자에서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 미리와 해미는 전자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둘 다 오십 중반이다. 미리는 팔 년 전 이혼했다. 해미는 세 살 아래 남편과 두 딸을 두고 있다. 해미의 남편이 젊어 그런지 아직도 밤 늦게까지 보건체조를 한다고 은근히 젊음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미리도 남자를 만나 볼까하는 생각도 없잖아 있었다. 그러다 돌아서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가면서 부부가 함께 느끼던 감정들이 이제는 상상도 안 되었다. 그러면서도 해미가 얄밉고 질투심도 났다.
미리의 전남편은 성실한 면은 있었지만 현실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싫어했다. 미리가 직장생활을 그만 두고 사업을 하자고 남편을 설득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자기는 직장 생활하면서 휴가 때 아이들과 여행 다니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미리는 아이들도 커가고 현실은 돈이 최고라고 역설했지만 남편은 마이동풍이었다.
“당신이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 간섭 안할 것이니까.”
“나 혼자서 어떻게 해? 같이 해야지.”
“내가 새로운 일에 쉽게 적응 못하는 것 알잖아.”
“어쩌다 내가 저런 머저리를 만나 이런 고생을 하는지.”
미리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는 아이 방으로 들어갔다. 미리가 막말까지 한 이상 그냥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죽든 까무러치든 결판을 내야겠다는 생각에 남편과 마주 앉았다.
“우리 헤어져요. 위아래로 꽉 막힌 당신과 더 못살겠어.”
“그래 좋을 대로 해. 대신 아이는 두고 가야 돼.”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야.”
“나도 보호할 책임이 있어.”
“그래 잘 키워.”
1.
미리는 무슨 일을 깊이 생각지 않고 단순히 처리하는 성미다. 그런 자신의 성격이 안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있다.
미리는 집을 나온 다음날부터 사업을 알아봤다. 마침 아동복 옷가게가 있었다. 이것저것을 알아보고 부족한 돈은 오빠, 언니한테서 빌렸다. 가게는 잘되어가다 전반적인 불황으로 손님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결국은 일년 반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미리의 가족들은 한마디씩 했다. 그러니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잖아, 왜 남편 말을 안 듣고 이혼까지 하면서 장사를 했느냐고 했다. 또한 여자가 보기보다 너무 억세어 저렇게 되었다는 말도 있었다. 미리는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말장난으로 알고 휠훨 털어 버렸다. 미리는 오빠와 언니한테는 미안했지만 자신은 후회가 없었다. 한번 장사를 해보고 싶었고, 또 여 사장님이란 소리도 들어봤다. 아쉬움이 있다면 자식이 곁에 없다는 것과 가끔 밀물처럼 밀려오는 사랑이 그리웠다. 그렇다고 사업까지 망해먹은 여자를 누가 좋아 할까하는 생각에 마음을 정리했다. 직장을 알아보고 있을 때 해미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일하던 한 사람이 교통사고로 장기간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미리는 그 다음 날부터 전에 나가던 직장으로 출근했다.
“미리씨. 이제 결혼해야지.”
직장에 다시 나간 후 해미가 말했다.
“잔잔한 호수에 돌 던지면 홍수 난다.”
“그래. 그 좋은 구경 한번 보자. 그 위력 대단하겠다.”
“너 혼자 즐기니 미안해? 신경 끄고 너나 열심히 해.”
“그래 난 열심히 하고 있어. 잠자리가 건강에 좋다는 기사 못 봤어?”
“내가 그런 것 왜 봐.”
“스트레스를 완화 시켜주고 장수에 도움이 되고, 심장 질환을 막아주고, 폐경기 여성들의 요도관 감염 등의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다고 했어. 그러니 남자를 만나.”
“이제 의학 공부까지 하셨네요.”
“다 너를 위해서니, 한번 만나봐.”
“그래 뭐 하는 사람인데?”
“직장 다니고 있데.”
“사업하는 사람이라야 돈이 있지.”
“먹고살면 되지 뭐 돈돈 해.”
“돈 없는 사람 관심 없어. 나 먼저 일어난다.”
미리는 일 시작할 시간이 안 되었는데 일어났다. 해미는 퇴근해서도 집으로 전화해 미리를 설득시켰다. 남자가 성실하고 두 아이는 멀리 있는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집도 있고 수입도 좋다는 말을 했다.
미리가 혼자 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어떤 모임에 참석했을 때 같은 여자끼리 이야기하다 혼자란 말을 했다. 그때 주위에 있는 여자들의 표정과 눈빛이 순간적으로 변하였다. 그런데 잠시 후에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즉 자기 남편을 유혹할까봐 경계의 눈빛이란 것을 알았다. 그 후 미리는 어떤 모임에도 안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제 세월의 고개를 올라가다 보니 외롭고 사람이 그리웠다. 어떻게 말동무라도 되게 한번 만나 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2.
“해미씨. 그 남자 한번 만나볼까?”
“미리씨. 잘 생각했어. 그럼 내 연락해 다시 전화할게.”
미리는 주말에 해미가 말한 커피숍을 찾았다. ‘창문 가에서 책보고 있겠다고 했어.’ 미리는 안으로 들어가 창문가 쪽을 봤다. 안쪽 의자에서 한 남자가 책을 읽고 있었다. 미리는 그 쪽으로 걸었다. 그 남자 앞에 서기 전 미리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때 그 남자도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미리는 몸을 홱 돌려 커피숍을 나왔다.
“저 웬수와 살았던 것도 지긋지긋한데 또 만나. 세상에 남자가 없어 내가 뿌리치고 나온 사람을, 외로움이란 한낱 사치스러운 언어였구나.”
미리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차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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