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 며칠째 ‘분노’로 들끓고 있다. 분노의 타겟은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의 보너스다. 작년 9월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파산지경에 빠진 회사를 그동안 4차례에 걸쳐 1,800억달러의 세금을 쏟아 부으며 기사회생 시켜놓았더니 아직도 수백억 달러 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처지에 직원들에게 거액의 보너스를 지급한 것이다. 그것도 튼튼했던 미 최대보험사 AIG의 부실을 초래한 장본인들 중 수십명은 100만달러이상씩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에 아무런 부실을 초래하지 않고도 감원과 감봉의 경계선에서 불안해하며 경제위기의 고통을 견디고 있는 수많은 미국인들에게 이 ‘소화하기 힘든’ 뉴스가 전해진 것은 지난 주말이었다. 오바마 경제팀은 처음엔 분노의 수위를 잘 가늠하지 못했다.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과 로런스 서머스 대통령 경제수석 등의 첫 반응은 ‘터무니없다, 분노한다’면서도 너무 늦게 알았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정도에서 그쳤다. 그러나 주말을 지나면서 “경제적으로 고통스런 시기엔 성난 포퓰리즘의 위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전 노동부장관 로버트 라이시의 경고는 그 실체를 드러냈다.
주초부터 부글부글 끓는 여론에 정신이 번쩍 든 것은 백악관과 의회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보너스 지급을 막겠다며 격노했고, AIG 경영진에게 “물러나거나 자살하라”는 막말이 중진의원의 입에서 나왔는가 하면 100%까지의 중과세로 보너스를 다시 빼앗아 오겠다는 법안들이 하루이틀 사이 연달아 제출되었다. 미디어의 지면과 화면이 연일 ‘몰염치한 보너스’ 파문으로 도배되면서 워싱턴 정가는 마치 누가 더 강하게 분노하는가, 경쟁을 벌이는 양상마저 띠워가고 있다.
이번에 보너스를 받은 AIG의 경제 브레인들이 만들어 팔다가 회사를 파경으로 몰아갔다는 금융파생상품 CDS(크레딧 디폴트 스왑스)가 무엇인지 대부분의 우리는 잘 모른다. CDO(부채담보증권)에 대한 보험계약 상품이라는데 이 CDO가 또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왜 공적자금으로 금융을 살려야 하는지에 대해 “금융을 구제해 신용경색을 풀지 못하면 진정한 경제회복은 없다”라고 강조한 대통령의 설명을 믿고 있을 뿐이다. 이런 보통사람들이 AIG 보너스파문을 보며 갖는 의문은 크게 두 가지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첫째, AIG 사람들은 제 정신일까. 어떻게, 감히 허리띠를 있는 대로 졸라맨 국민들이 낸 세금에서 보너스를 챙길 생각을 했을까. ‘회사 이익창출에 대한 보상’이라는 보너스의 정의가 언제부터 ‘부실책임에 대한 격려금’으로 바뀌었을까.
에드워드 리디 AIG 회장이 보너스지급 결정 이유로 밝힌 법적 구속력과 경쟁력이라는 두가지 구실은 이렇다 :
이들에 대한 보너스는 2008년초 이미 작성한 법적 계약에 의한 것이다. 이행치 않으면 소송에 직면할 것이고 소송비용은 보너스 총액보다 훨씬 많이 들 것이다(소송을 한다 해도 과연 그들의 손을 들어주는 배심원과 판사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이번 보너스는 성과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핵심인력을 유지하기 위한 잔류보너스다. 물론 이들은 무모한 금융파생상품을 만든 장본인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 금융상품이 세계경제에 미칠 피해 잠재력은 엄청나다. 구조 복잡한 시한폭탄과도 같다. 폭탄을 해체시킬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만든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난국을 해결할 때까지는 담당자를 잡아두지 않으면 안된다. 리디회장의 ‘위협’이 사실인가에 대한 정답은 시간이 지나야 나올 것이다.
보다 큰 의문이 고개를 든다. 정부는 왜 사전에 대처를 못했을까, 보너스 계획을 몰랐을까.
그건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무능’이고 나쁘게 말하면 공모 내지 은폐로 비화될 수도 있다. 어떤 시각으로 보아도 정부는 수백억달러의 공적자금을 내주면서 규제와 감독은 엉성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그의 경제팀, 백악관, 의회 등 모두가 분노하며 아우성을 치는 걸 보면 보너스가 지급된 13일 직전까지 까맣게 몰랐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AIG는 보너스 지급계획을 2008년 초부터 밝혔다고 주장하며 CNN은 2009년 1월에 지급계획을 보도했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구제금융지원금 사용처에 대해서 잘 알고있다고 자신있게 말한 것도 2주전이다. 그렇다면 누가 무엇을 언제부터 알았을까. 어제 연방의회에서 열린 보너스 청문회에 불려나간 리디회장은 지난 몇 달간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과 이 문제를 상의해 왔다면서 FRB가 재무부와 상의했을 것으로 암시했다.
오바마팀이 전부터 알았다는 게 확인되면 공화당의 가이트너 재무 사퇴촉구가 힘을 받을 수도 있다. 투명통치를 강조해온 오바마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갈까 우려도 된다. 그건 경제회복 향해 갈 길 바쁜 오바마가 보너스 정국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뜻이다. 부시행정부의 몰락은 허리케인 카트리나 무능대처로 가속화 되었었다. 카트리나 사태의 핵이 바로 분노한 민심이었다. AIG 보너스가 오바마의 카트리나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박록 주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