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일보에 나온 교육에 대한 기사와 글이 집중적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거기다 진료실에서 겪은 일까지 겸하니 한국 교육에 대한 염려와 희망이 겹쳐온다.
지난 9일 한국일보 본국지 오피니언 페이지에 김승환 포스텍(포항공대) 물리학 교수가 ‘참담한 패배의 추억’이라는 제목 아래 일본은 계속해서 노벨상 수상자의 수확이 늘어나는데 한국은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 운동경기에서 진 것 같은 패배감을 느끼게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금언처럼 장기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썼다. 옳은 말이다.
그 날짜 B3 페이지 전면의 큰 글 제목 ‘국제 中 보내려 초 6을 들볶고… 外高 넣으려고 엄마도 녹초’ 기사를 보면 장차 좋은 대학(?)에 보내려면 그런 고교를 가야 안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치열하며 눈물겨운 경쟁에 아이들의 성장이 어떻게 될까 가슴이 아프다.
10일자 1면에 ‘포항공대도 입시개혁’이라는 제목 아래 포항공대의 2010년부터 신입생 선정에 전원을 수시 모집을 통해 입학사정관제 전형으로 뽑기로 했다고 한다. 순전히 입학시험의 성적으로 신입생을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학생의 학교생활에서 보여준 여러 면을 참작하여 뽑는 방법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브라보’를 외쳤다.
그 날짜 오피니언 페이지에는 서울대학 교육학과 박순근 교수가 ‘교육 뉴딜이 필요하다’는 제목 아래 학교의 모양을 바꿔 새로운 교육제도를 ‘루즈벨트의 뉴딜’같이 들여와야 한다고 제안한다. 교육방침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말인즉 이것도 나는 동의 한다.
거기다가 오늘 16세 되는 한 미국 소년을 치료하면서 책 읽을 것에 대한 화제에서 내가 권하고 싶은 책이 조나산 에드워드(Jonathan Edward, 1703-1758)가 거의 300년 전 미국의 대부흥(The Great Awakening) 때 한 설교라고 하고서는 얼른 그 제목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소년은 얼른 내말을 받아 “노하신 주님의 손에 잡힌 죄인(Sinners in the hands of angry God) 말 이에요?” 해서 나는 놀랐으면서 또한 흐뭇했다. 이 소년은 지능지수가 평범하며 고등학교 풋볼 선수라 체격이 크고, 성적은 중간치 조금 넘는다. 이 학생이 이 책을 알고 있다는 것은 이 학생이 다니는 학교의 교육제도를, 아니 이사회의 교육제도를 표현한 좋은 예이다. 입학시험준비 같은 것 보다, 인격양성, 자유로운 학문과 교양과목 등을 추구하는 것에 중심을 둔 교육을 잘 표현했다고 본다. 이는 맘을 넓게 갖고 자유로이 창의성을 기르는 교육 제도로 보겠다. 기초수학이나 기초 물리학을 추구하는데 하나도 부끄럼이 없고 오히려 한 가지라도 지극정성으로 파고드는 정력을 기르는 제도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력추구에 자유로움을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자는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능을 포착하기 위하여 항상 노력을 하여야 하며 발견이 되면 그 것을 기르도록 북돋워주어야 한다.
포항대학의 신입생 선정을 이렇게 하면 고교학생 대입준비에 부모와 학생, 아니 온 식구를 괴롭히는 처참한 준비과정이 필요 없고 평소에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과 자기 스스로 창의성에서 나오는 학과나 학교활동이나 과외활동, 사회봉사 등에 집중하여 인간성을 기루고 특히 인애(仁愛)를 키우면 이 세상을 온통 경쟁의 전쟁터이니 입을 악물고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해소시키게 할 수 있다.
삶에서 성공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야 할 것이다. 부모가 바라는 사회진출과 사회적 성공은 꼭 인생의 성공의 길이 아닐 수 있다. 돈 벌 수 있는 것이 보장되는 직업을 갖는 것이 ‘성공’이라고 하여서는 안 된다. 부모는 그 학생이 진실하게 성숙하여 인류에게 공헌을 할 수 있는 바탕을 기르는데 북돋워주어야 할 것이다. 장차 정할 천직은 학생이 정하게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이런 바탕위에 창의성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는 뒷받침이 되고 학생이 추구하는 것이 건전하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이면 도우고 북돋워주어야 할 것이다. 꼭 의사나, 공학자나, 변호사가 되어야 성공인 것은 아니다. 기초 수학, 기초과학, 생리학, 언어학, 인류학…, 별로 인기 있는 과목 같지 않다. 그러나 이런 것이 이 문명의 밑바탕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화 ‘아름다운 마음’(Beautiful Mind) 주인공, 정신분열증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단순하게 추구한 수학 연구로 노벨상을 타게 된 존 나쉬(John Nash)가 기억난다. 그를 버리지 않고 온갖 고생을 하면서 도운 부인의 마음은 너무도 아름다운 것이다. 믿고 도우는 사랑의 적절한 표현이다. 쇼펜하우어의 사과나무를 심는 것이 ‘파리 파리 피풀’(빨리 빨리라는 말을 서양 사람들이 한국인에게 붙이는 별명)이 서서히 참을성 있게 해나가야 하지 않겠나.
포스텍의 결단을 환영한다. 모든 대학이 이것을 따르고, 중고등 교육이 거기에 발맞추어 가기를 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