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교사노조간의 불편한 감정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문제 된 이슈는 성과급(merit pay) 시행, 학생들의 성적 향상에 따라 봉급을 주는 교사임금제다.
대통령 취임 50일을 맞던 지난 10일 오바마는 미히스패닉 상공회의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야심찬 교육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성과급 시행 확대를 다짐했다. 교사들의 기본 권익이 걸린 성과급은 노조가 결사반대하는 사항이다. 오바마에겐 캠페인 당시 전국교육협회 초청연설에서 지지를 언급했다가 노골적 야유 섞인 냉대에 무색해졌던 경험이 있다.
후보 오바마의 연설과 대통령 오바마의 연설은 다르다. 영향력도 다르겠지만 어조에도 차이가 난다. 캠페인 땐 지뢰밭 걷듯 조심스러웠다. “여러분이 학생들의 성적향상을 돕는다면 성공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물론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여러분과 의논해서 시행 해야겠지요”
이번 연설에선 ‘메릿 페이’라는 어휘를 쓰진 않았지만 우수교사 성과급과 함께 무능교사 해고, 교사 정년제 폐지까지를 강력하게 짚었다. “이제는 좋은 교사들에게 보상을 시작하고 나쁜 교사들을 봐주는 것은 그만두어야 할 때입니다…확실히 합시다. 몇 차례 기회를 주어도 향상을 못하는 교사에겐 더 이상 교육을 맡길 구실이 없습니다. 실패한 사람을 보호하는 제도는 거부합니다”
노조는 ‘성과급이 교사 사이에서 협조 대신 소모적인 경쟁 다툼만 조장한다’고 반대를 표하지만 다른 어떤 직업보다 열정과 헌신이 요구되는 교사에게 성과에 따른 보상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개혁파들의 주장이다.
개혁 성향이 강한 오바마는 성과급에 이어 차터스쿨 확대 의사도 분명히 밝혔다. 이것 역시 교사노조에겐 껄끄러운 이슈다. 공립이면서도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차터스쿨은 개혁파들이 10여년전부터 시행해 왔다. 학생의 80%이상이 저소득층으로 학군에 관계없이 다녀도 되고 성적향상에 집중하니 학생들이 대거 몰려 지원대기자가 수십만명에 이른다. 가장 성공적 교육개혁 중 하나로 꼽히지만 공립교 예산과 우수학생들이 그쪽으로 빠져나간다고 교사노조는 반대해 왔다. 그런데 차터스쿨을 ‘혁신의 실험실’이라고 부르며 지지해온 오바마가 이번 연설에서 주정부들에게 차터스쿨 숫자 제한 폐지를 촉구, 차터스쿨 확대를 천명하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 정치가 오바마에게 교사노조와의 맞대결은 쉽지 않은 모험이다. 민주당 전당대회 대의원 10명중 1명은 교사라고 한다. 확실한 표밭과 든든한 자금력 갖춘 민주당내 막강 파워그룹이 교사노조다. 아직 이번 연설에 대한 공식반응엔 신중한 태도로 정면반박을 삼가고 있지만 교사노조의 불편한 기색은 역력하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오바마에게 아주 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성과급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압도적이다(학부모는 더 큰 민주당 표밭일 수 있다). 민주당의 전통노선과 엇갈리는 것으로도 두가지는 얻을 수 있다. 개혁가 이미지와 공화당의 협조다. 이미 공화당쪽에서 교육정책 방향이 “제대로 잡혀 간다”는 호의적 반응도 나왔다. 잘하면 아직 가까이 가보지 못한 초당적 협력을 교육개혁법안을 통해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연설을 통해 교육은 ‘장기적 경제대책의 중요한 초석’으로 강조되면서 새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사실 교육이 연방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되는 일은 흔치 않다. 주정부 소관이기 때문이다. 이번엔 좀 다르다. 경기부양기금 중 1,000억달러가 연방교육부 수중에 있다. 50개주, 1만4천개 교육구, 9만개 학교가 모두 연방을 바라보고 있다. 엊그제 9천명 교직원에게 해고경고 통지서를 발송하기로 결정한 LA통합교육구도 예외가 아니다. 연방에서 부양기금이 배당되면 상당수는 해고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에 대한 연방의 입김이 강해졌다는 뜻이다.
오바마의 교육 어젠다는 그동안 캠페인을 통해, 의회연설을 통해 계속 강조해 왔던 정책들이 대부분이지만 잘 차려진 한 상처럼 이상적 아이디어들로 가득 차있다. 한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경제·사회발전의 건전한 일원으로 성장할 때까지 ‘완벽하고 경쟁력있는 교육’을 제공하기위한, 말 그대로 ‘요람에서 전문직까지’의 교육청사진이다.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연방교육장관의 추진력과 민주당내의 지지, 의회의 협력 등이 확보된다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개혁을 계속 밀고나가는 동력은 지도자의 순수한 동기를 믿어주는 여론의 변함없는 지지다.
5,000개 단어로 이어지는 긴 연설문을 참고 읽어가다가 마지막에 얻은 기쁨 하나 : 오바마는 이날 연설 말미에서 포모나 빌리지아카데미 고교생들이 만든 동영상 스토리(1월22일자 본 칼럼)를 소개하며 부모의 실직과 주택차압 등 경제위기의 와중에서 대학진학의 꿈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아이들의 간절한 호소 “누가 들어줄 사람 없어요?(Is Anybody Listening?)”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듣고 있습니다. 우리가 듣고 있습니다. 미국이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부모들이 다시 일하게 되고, 집을 다시 갖게 되고, 걱정 없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미래의 꿈을 이룰 때까지, 쉬지 않고 노력할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빌리지아카데미의 아이들은 말할 수 없이 행복해한다고 LA타임스는 전하고 있다. 절망하던 아이들에게 행복을 선사한 대통령에게 보내는 신뢰일까, 오바마에 대한 지지도는 워싱턴 안팎의 늘어나는 반발에 상관없이 여전히 60%를 웃돌고 있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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