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커튼을 밀다가, 우리 집 테라스 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타운즈 앤드 거리에 분홍빛 벗꽃이 환하게 피어있는 것을 보고 ‘아’감탄이 절로 나왔다.
우리집에서 세이프웨이 시장이나 보더스 책방으로 가는 길을 따라 걷게 되면, 높이 매달린 화분에 심어 놓은 제라니움이 일년 내내 꽃을 피우고 있기는 하지만, 검게 헐벗 었던 볼 품 없던 가로수가 화려한 벗꽃나무로 변신 한 것을 보니, 오랫동안 소식 을 모르고 지내오던 어릴적 소꼽 친구라도 만난 듯 반갑고 놀랍기까지 하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오늘도 또 구두닦이 노인이 안 보인다.
벗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이처럼 화창한 날에, 타운즈앤드와 2가 거리가 만나는 코너에, 붙밖이 처럼 높다랗게 세워져 있던 구두닦이 의자와, 그 보다 조금 낮고 작은 의자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곤 하던 그 구두닦이 노인이 벌써 며칠째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침마다, 내가 맨 처음 접하게 되는 창밖의 어김없는 풍경은, 의자에 앉아 신문을 뒤적이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그 노인의 모습이다. 키가 크고 깡마른 그흑인노인 은 아마도 오랫동안 여기서 구두를 닦아 왔었는지, 이 길을 지나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알은 체를 하거나, 더러는 걸음을 멈추고 한참씩 정겹게 대화를 나누다 가곤 했다. 요즘도 구두를 닦는 사람이 있었나 싶었는데, 며칠을 눈여겨 보아도 실제로 구두를 닦는 사람은 별로 없는것 같았다. 간혹가다 구두를 닦는 사람도 구두에 반짝반짝 광택을 내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옛 자취가 거의 사라져 버린 이 거리에 여지껏 혼자 남아 있는 그 노인에 대한 옛 정으로 구두를 닦아주는 것은 아닐까 느껴졌다.
그런데 구두를 닦을 때의 그 노인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흥겨울 수가 없다. 작은 손타올을 목에 스카프 처럼 두르고 노인은, 높직한 의자에 앉은 손님의 발치에 긴 몸을 낮게 구부리고, 춤을 추듯이 온 몸을 율동에 맞추듯 신명나게 흔들며 정성을 다해 구두를 닦곤 했다.
우리가 사는 콘도 바로 건너 편에, AT & T 야구장이 들어서기 이전, 이 주변은 노숙 자들이 많이 모이는 형편없는 곳이었고, 또 들리는 말로는 늪지대였다고도 한다. 말하자면, 야구장 때문에 개발된 지역인 셈이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 주변의 ‘모모’식당이나,‘파라곤’식당의 옥외 식탁 에서, 환한 햇살을 받으며 오찬을 즐기고 있는 사람이 많았는데, 바로 그 ‘파라곤’식당 맞은 편 길건너에, 보란듯이 높다랗게 자리잡고 있는 구두 닦이 의자가 좀 어 울리지 않는다고 느꼈었다. 그러다가, 이러한 부조화도 샌프란시스코란 도시의 매력이겠지 싶어 좋게만 보였고, 아마도 그 노인은 이들 고급 식당이나, 가구 점 그리 고 콘도 주택이 생기기 훨씬 전 부터 이곳에서 구두를 닦고 있었을지도 모르니 귀한 유산이 아니겠나 비약까지 했었다. 어쩌면 실제로 이노인은, 야구장이 들어 설 때 심각하게 다른거리로 옮겨 보려고 팔방으로 노력을 하다가, 마땅한 곳도 없 고, 또 오랫동안 찾아주는 정든 단골들을 포기하고 낯선 딴 거리로 옮겨 갈 자신이 없었거나, 아니면 변화에 반항하는 오기로 지금까지 홀로 버텨오고 있는 고집불통 의 노인일지, 알수 없는 일이긴 하다.
어쨋거나, 이 주변은, 그 식당들을 찾는 특정 손님들을 제하면, 운동화에 진바지 차림의 젊은이들이나, 애기들을 태운 스톨러어를 밀고 지나가는 젊은 엄마 들이 아니면, 노 부부가 손을 맞잡고 천천히 걷기 운동을 하는 모습들이 눈에 더 많이 띄는 거리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요즘같이 하루하루 직장에서 떨려 나지 않고 있는 것만도 천만 다행 으로 여기는 불황에, 거리에 버티고 앉아서 돈을 내가며 구두를 닦으려 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내심 노인의 비즈니스를 걱정해 오던 것이 솔직한 내 심정 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노인이 혼자 아파서 누워있지나 않을까 염려하던 것이, 오히려 그보다는 장사가 너무 안되어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만 걷어치우게 된 것은 아닐까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지기 시작하면서 이래저래 씁쓸해 진다.
얼마 전에, 전국 Denny식당 에서 무료로 $5.99짜리 그랜드 슬렘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일이 있었다. 그 때, 전국각지에서 그 무료 아침식사를 먹기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길게 장사진을 이룬, 특히 내가 맨처음 미국에 와서 젊은시절을 보낸 버팔로나 동부같은 곳에선, 몇시간씩 영하의 추운 새벽부터 몰려와 기다리고 있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커다랗게 실렸었다. 사우스캐롤 라이너에 베이스를 둔, 전국 체인 1,541 개의 Denny 식당에서 무료로 그 날 제공한 아침 식사는 2백만 접시에 달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샌프란시스코에 산다는 파리스 윈스로라는 사람의 멘트가 인상에 남는다. 그는 스트릿 코너에서‘폐업 세일’광고판을 들고 서있는 직업을 갖고 있었으나, 나가야 할 사업체가 다 사라져 없어져서, Denny 식당 앞에서 맨 손으로 서있게 된 백수가 되었다나.
모두들, 내 인생 한 때에 그렇게 힘들었던 날도 있었다고 옛말을 할 수 있는 밝은 날이 속히 다가왔으면 좋겠다.
분홍빛 벗꽃과 함께, 타운즈앤드거리에 눈부시게 닥아온 환한 봄 날처럼 말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반짝이는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손님의 구두에 광택을 내기위해 온 몸으로 춤을 추듯, 흥에 겨운 구두닦이 노인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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