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백악관에선 ‘헬스케어 서밋’이 열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 의료제도에 관련된 각계각층 관계 당사자들을 불러 모으는 자리다. 낙마한 톰 대슐 대신 엊그제 보건부장관으로 새로 지명된 캐슬린 시벨리우스를 비롯한 행정부 관계자와 상하양원 민주·공화 의원들, 전공 학자들, 의료 및 보험 업계, 노조, 소비자 단체, 대기업과 중소기업 로비스트 등 연 2조4천억달러 규모의 의료산업을 둘러싼 이해 당사자들이 다양하게 참석할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쏟아 부으면서도 선진국 중 최저수준으로 낙인찍힌 미국 의료제도에 대한 바람직한 개혁방향을 모색하는 ‘정상회담’이다.
각 분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니 참석자들 속셈이야 팽팽하게 맞서겠지만 개혁의 성공을 바라는 의견의 일치는 아슬아슬 한 채로 일단 이루어진 상태다. 서로의 입장을 알리고 듣는 첫 모임이니 구체적 해결책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지난주 첫 의회연설 중 헬스케어 개혁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기다려서도 안 된다”라고 못 박은 오바마의 선언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수십년 미국의 대통령들이 빼놓지 않고 추진했지만 이루지 못한 과제가 바로 헬스케어 개혁이다. 특히 이번에 오바마가 금과옥조로 삼는 것이 클린턴 개혁안의 실패다. 부인 힐러리를 책임자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1천여 페이지의 법안을 완성한 것은 취임 10개월이 채 못됐을 때다. ‘전 국민 의료보험’이라는 민주당의 꿈을 담은 이 ‘힐러리케어’는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의 악몽으로 전락했다. 이상과 야심은 원대했지만 젊고 오만한 치기와 미숙이 추진과정 곳곳에서 드러났다. 개혁의 내용을 같은 민주당 의회중진들 뿐 아니라 관계부처인 보건부와 재무부 장관들에게까지 쉬쉬했다. 악의 화신으로 몰아세운 보험업계에서 부터 중소기업 고용주들까지 사방 곳곳에 적을 만들어 갔다. 특히 힐러리케어 이후 보험 및 의사 선택권 상실을 불안해하는 백인 부부의 대화를 담은 TV광고 ‘해리와 루이스’는 폭탄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의 지지도는 30% 포인트나 폭락했고 힐러리는 좌파 리버럴로 낙인찍혔다. 자신만만하게 의회로 보내졌던 ‘방대하고 완벽한’ 개혁법안은 표결에 회부조차 못된 채 폐기되고 말았다.
오바마의 개혁 추진전략은 클린턴과는 정 반대다 : 악의 화신은 없다 - 업계와 소비자 모두의 입장에 귀를 기울여준다. 그러나 원칙은 확실하다 - 전 국민의 보험 가입을 추진하고 의료비를 절감한다, 공동 목표를 위해 모두가 조금씩 양보해 나가자…
정치적 접근방식도 스마트하다. 개혁의 기본방향만 제시하고 구체적 실제 법안작성은 의회로 넘겼다. 오바마가 제시한 8가지 원칙엔 전 국민 커버와 보험료 인하, 현행 보험 계속 유지 등 선택권 보장, 병력을 근거로 한 가입거부 금지 등 무보험자와 유보험자 모두를 만족케 하는, 누구도 반대하기 힘든 사항들이 포함되었다.
매너 좋은 대통령에게서 법안작성의 전권을 위임받은 의회의 중진들도 개혁에 신바람이 났다. 특히 상원 개혁안은 뇌암 투병중인 에드워드 케네디의 열정을 원동력 삼아 빠르게, 탄탄하게 추진되고 있다. 포괄적 개혁안의 완성은 빠르면 5월말로 예상된다. 그 사이 갖가지 아이디어를 담은 상당수의 관계 법안들이 의사당 주변에 만개할 것이다.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개혁의 전망도 그 어느 때보다 밝은 편이다.
오바마는 개혁을 위한 예산 계획도 밝혔다. 부유층에 대한 세금인상과 메디케어 등의 경비 절감으로 향후 10년간 6,340억달러를 ‘다운 페이‘로 투입하겠다는 것. 경비삭감 대상 업계의 강력한 로비전쟁과 증세에 대한 공화당의 결사항쟁이 불 보듯 훤하니 그 실현 가능성은 불확실하지만 개혁의 가장 큰 숙제인 재원마련 방안을 상세히 제시했다는 의미는 있다.
물론 아직은 의문투성이다.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하지 않고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가입을 외면하면 전 국민 커버는 보험업계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의무적’ 가입이나 고용주의 종업원보험 ‘의무적’ 제공 등은 강제 집행될 수도 있을까. 또 경비절감 시행에서 어떤 분야가 어떤 이유로 깎여나갈 것인가. 이런 궁금증들을 따라가다 보면 해답은 결국 정부의 역할로 이어진다. 앞으로 헬스케어 개혁에 정부가 얼마나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로 전개되다가 “은행에 이어 헬스케어도 국유화하려는가, 사회주의로 가나”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국유화’ 표현에 감전이라도 된 듯 펄쩍 뛴다. 그러나 정작 상당수 여론은 “Why not(왜 안돼)?”이라고 반문한다. 국가주도 유니버설 케어란 쉽게 말해 노년층 의료보험인 메디케어를 전 국민에게 확대 적용하는 것이다. 보험 상실을 늘 불안해하는 근로자들, 종업원 보험제공이 힘겨운 중소기업 고용주들, 보험걱정 안하는 외국기업에 비해 국제 경쟁력에서 밀리는 대기업들 모두가 국가운영 의료보험에 무조건 반대만은 하지 않는 분위기다.
건강을 지켜주는 의료보험을 직장인 혜택이 아닌 국민의 기본권이라고 생각한다면 ‘국유화’가 금기일 것은 없다. 오늘 헬스케어 서밋에서도 심도있게 논의되어야 할 주제라고 본다.
박록/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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