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미국민의 여론은 묘한 양면성을 갖고 있다. 오바마 개인에 대한 인기는 높다. 뉴욕타임스 여론조사에 의하면 77%가 앞으로 4년 오바마 집권기를 낙관한다. 대통령 업무수행 지지도 역시 63%에 이른다. 그러나 그의 최우선 과제인 경제 살리기 정책을 하나하나 짚어 가면 찬성보다 반대가 많다. 은행과 자동차 회사에 대한 공적기금 구제엔 60%가 반대했고 압류주택 소유주 지원이 포함된 주택시장 안정대책은 51%가 공정하지 않다고 불평을 표했으며 오바마가 총력을 기울여 성사시킨 경기부양책에 대해서도 부정적 의견이 50%나 되었다. 또 91%는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적자를 우려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나타냈다.
새 대통령에 대한 호감을 밝은 희망으로 연결하고 싶은데 어려운 현실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답답한 만큼 묻고 싶은 것도 많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세 가지만 골라보자. 불확실한 내일에 대해 얼마나 더 걱정해야 하는가, 부도덕한 부실기업을 언제까지 허리띠를 졸라맨 우리의 세금으로 되살려야 하는가, 1조달러가 넘는 빚더미를 어떻게 갚을 것인가.
24일 오바마 대통령의 첫 연방의회 연설엔 이런 질문에 답변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연설을 준비하며 오바마 팀이 특히 고심한 부분이 비관적 현실과 희망적 내일 사이의 균형잡기였다. ‘Yes, we can’의 오바마가 대통령 취임후 지난 한달 가까이 강조한 것은 희망보다는 현실이었다. 백악관의 설명대로 ‘국민의 신뢰 없이는 경제회복 실현이 불가능하며 국민의 신뢰는 지도자의 솔직한 현실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기부양책에 브레이크를 거는 의회에 대해 민심에 호소하는 겁주기 대응책의 기미도 없지 않았다. 도가 지나쳤을까. 공화당은 물론이고 클린턴 전 대통령까지 공개적으로 ‘너무 비관적’이라고 지적하며 지금 미국민에겐 리더가 심어주는 자신감이 더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충고를 받아들인 듯 오바마는 연설초반부터 “우리는 다시 세울 것이다, 우리는 회복할 것이다,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질 것이다”라고 외치며 희망심기를 강조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단기적 역경후의 장기적 희망을 약속하며 미국인의 정신은 경제위기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역설한 그의 연설은 그의 비관적 태도를 공격 주제로 삼은 공화당 바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의 반박연설 김빼기 효과까지 발휘했다.
이날 연설 중간쯤엔 ‘오바마 교수님’의 경제입문 강의가 포함되었다. 지난 주말 백악관 대변인과 한 기자 간의 설전이 그 배경으로 떠올랐다. 설전은 CNBC의 릭 샌텔리기자가 오바마 주택구제안의 형평성 문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시작되었다. 모기지 연체한 사람을 돕는다는데 결국은 근검절약한 사람의 세금으로 무책임한 연체자를 구제하는 꼴이라는 샌텔리의 지적을 로버트 깁스 대변인이 경제실정에 대해 뭘 모르는 무식의 소치라고 받아친 것. 그런데 여파가 만만치 않았다. 여론조사 결과 주택정책이 ‘부도덕에 대한 포상’이라는 불평이 55%에 달했는가 하면 공화당 의원들도 호기를 잡은 듯 정부에 해명을 요구했다.
주택정책에 대한 불만은 자동차회사 구제에 대한 반감이나 은행구제에 대한 분노와 맥을 같이하는 민감한 사안인 것을 오바마 팀이 간과했을 리 없다. 대통령 교수님 강의의 주제는 ‘왜 공적자금으로 은행을 살려야 하나’ - “신용경색을 풀지 못하면 진정한 경기회복은 없다. 은행이 다시 원활한 대출을 시작하지 않으면 경기회복은 시작도 되기 전에 질식하고 만다. 대출을 받아야 집도, 자동차도 사고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으며 상인이 물건을 받아올 수 있고 기업이 월급을 줄 수 있다. 주택 부실대출로 생존이 위태로워진 은행들은 지금 더 이상의 대출을 겁내고 있다…정부가 신속하게, 적극적으로 신용경색을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러분의 분노를 공감하지만 통치는 분노로 하는 게 아니라고 설득을 펼친 그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던 핫 이슈, 은행 국유화에 대한 언급은 비껴갔다. 대신 덧붙여 경고한 것이 추가 구제기금의 필요성이었다.
오바마는 경기부양을 강조한 이날 연설에서 적자해소 계획도 동시에 발표했다. 4년안에 적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야심찬 포부다. 이미 통과된 경기부양책과 구제금융안에 더해 장기 경제대책으로 헬스케어 개혁에서 교육개선, 재생 에너지 개발까지 제시하여 온통 돈, 돈, 돈을 쏟아 부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각종 개혁도, 적자해소도 다 가능하다고 자신있게 약속한 것이다.
연방정부의 적자규모는 엄청나다. 올 회계연도에 1조5천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전체 부채액은 11조에 달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은퇴가 시작되면 앞으로 10여년내 미국인 납세자는 연 56조달러의 세금을 내야한다. 한가구당 50만달러 꼴이다. 우리 세대를 넘어 다음세대로 그 막대한 빚더미가 넘겨진다는 의미다.
오늘 첫 예산안을 발표하는 오바마 경제팀은 이미 예산 남용부분을 발견, 2조달러 절약은 충분하다고 장담하지만 벌써부터 세금인상이 수면에 떠오르고 있다. 오바마 연설에 찬사를 보낸 진보언론 뉴욕타임스는 어젠다를 제대로 실행하려면 세금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고 ‘고삐 풀린 오바마’를 비판한 보수언론 월스트릿 저널은 이처럼 여러 개의 대형과제를 추진한다면 머지않아 중산층에게 세금인상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어조는 다르지만 양쪽 다 세금인상을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
여론은 여전히 오바마에게 관대하다. 그의 경제플랜을 지지한다가 80%, 그의 연설을 듣고 ‘희망을 갖게되었다’가 52%나 된다. 어쩌면 그 숫자는 비관과 낙관을 한꺼번에 수용하면서, 돈 쏟아붓기와 돈 절약하기를 동시에 시행해야하는 어려운 사명을 떠맡은 젊은 대통령에게 보내는 응원일 수도 있다. 그것은 “희망을 갖고 싶다”는 전 국민의 간절한 기대로 풀이해도 좋을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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