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은 세상에는 분명히 없으며 모든 것이 시간 앞에는 완전히 무기력하다. 인간은 시간이란 열차에 실려 각자 주어진 제한된 할당시간에 따라 하차를 해야 한다. 하차하는 시간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지난 2월 16일 오후 2시 한미라디오에서 한국 뉴스가 방송되는데 갑자기 김수환 추기경님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다. 뜻밖의 뉴스에 놀란 나는 즉시 매일 마다 미사를 봉헌하는 소 성당에 가서 김수환추기경님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바쳤다.
그 분은 사제로, 주교로, 추기경으로서 평생을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의 참 증인으로 인생을 마감하신 위대하신 분이시다. 나는 김수환 추기경님을 처음으로 뵙게 된 것은 신학대학교 학생 시절 때였다.
당시 김수환 신부님은 대구 대교구 사제로 카톨릭 신문사 사장 직을 맡고 계시다가 1966년 5월 31일 마산교구 제2대 주교님이 되신 후 처음으로 광주 카톨릭 신학 대학교를 방문하셨다. 주교님이 신학대학교를 방문하시면 관례상 전 학생들에게 교훈이 되는 말씀을 하신다. 주교님은 학생들에게 하루 또는 이틀씩 짤막한 휴일을 주는 권한이 있다. 교과과정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학장신부를 비롯해서 교수신부들은 학생들에게 베푸는 이같은 짤막한 휴일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주교님이 신학대학교를 방문하면 학생회장이 주교님을 환영하는 환영사를 낭독한다. 신학생들은 주교님이 오실 때 주교님으로부터 짤막한 휴일을 얻어 내려는 욕심으로 환영축사를 아주 잘 준비한다. 주교님이 듣고 기분이 아주 좋게 느끼면 주교 재량으로 휴일을 허락하는 예가 많다. 그리고 학생들을 향한 주교님의 훈화로 간단한 축하 행사는 끝난다. 주교님의 훈화는 좋은 신학생 장차 좋은 사제가 되어야 된다는 틀에 박힌 훈화로 일관된다.
그런데 김수환 주교님의 훈화내용은 그간에 찾아온 주교님의 훈화와는 너무나 차이가 나는 말씀이었다. 주교님은 다름과 같이 말씀을 하셨다. 1885년 2월 11일 성모님이 Berandette 소녀에게 처음 발현하신 이래 18번이나 발현하신 장소이며 매일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유명한 성지로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Lourdes에 주교님이 가셨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순례자들로 매일마다 장사진을 이루는 성지에 여러 수도 단체들이 있다. 그중 주교님이 몇 일간 머무셨던 수도원의 규정은 수도원에 머무는 사람은 누구든 성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 시간 이상 반드시 해야 한다.
주교님도 성체 앞에서 기도를 한다고 무릎을 꿇고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온갖 잡념 속에 헤매다가 정신을 차려 시간을 보니 벌써 50분 이상이 지났다. 그 때서야 자기가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음을 알았다. 실제 기도한 시간은 한시간이 아니고 단지 5분에 불과 했다고 말씀하셨다. 기도와 묵상이 이렇게 어렵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계속 올바른 기도와 묵상을 시도하라는 말씀으로 훈화가 끝났다.
정직하고 솔직하면서 겸손하시고 용기있는 주교님의 신앙고백을 들은 학생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김수환주교님은 멀지 않아 한국교회의 큰 그릇이 되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이 나의 머리에 떠올랐다. 그 예측이 빗나가지 않았다. 주교님이 되신지 2년 후 1968년 5월 29일 서울 대교구 대주교로 임명이 되셨고 서울 대교장이 되신지 거의 1년이 된 1969년 4월 30일 한국 최초로 47세의 젊은 연세에 한국 카톨릭교계 뿐만 아니고 대한미국을 대표하는 추기경으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서임 되셨다.
당시 세계 136명의 추기경단 중 최연소자로 추기경이 되셨다. 당시 추기경이 한국에 한 분 나셨다는 것만으로도 한국 카톨릭신자들만의 영광이 아니라 온 국민의 영광이며 세계 속에 한국의 위상을 더 높이는 자랑스러운 계기였다.
김 추기경님의 조부 김보현(요한)씨는 1868년 무진박해 때 충남 연산에서 체포되어 서울에서 순교하셨다. 유복자로 5남3여중 막내로 태어난 김 추기경님의 부친 김영석(요셉)씨는 옹기장수로 전전하면서 가난하게 살았다. 추기경님이 중학교 1학년 때 부친이 선종하자 모친이 옹기와 포목행상을 하면서 자녀들을 키웠다.
1933년 대구 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했고 1941년 서울 동성상업하교 졸업 후 당시 교장인 장면박사의 권유로 일본 상지대학에 유학했다. 학업도중 2차 대전 당시 1944년 학병으로 강제 입대가 되었고 1946년 12월 귀국해서 서울 카톨릭 신학부에 입학 1951년 9월 15일 대구 계산동 주교좌 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추기경께서 사제서품 50주년 축하행사가 있던 날이다. 정계 재계 학계 등 많은 고위 인사들이 김 추기경사제서품 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저를 축하하기 위해 오신 여러 분들이 매일마다 하루 24시간 저가 사는 삶을 낱낱이 살펴 보신다며 아마도 저를 축하하기 위해 오실 분들이 이 자리에 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너무나 겸손하시고 소박한 한 인간으로서 솔직하고 정직한 자기 고백을 하신 것에 틀림없다. 희랍의 철인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아는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한 것처럼 김 추기경님은 자신을 알았기에 인생을 성공한 위인이다.
추기경의 평생생활신조는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이었다. 더 가난해야하고 더 사랑해야한다고 주장하시면서 정의와 사랑에 한평생을 바친 삶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자주 말씀하시길 내 삶을 돌아볼 때 마다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더 가난하게 살지 못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부분이라고 말씀했다. 1970-180년대 민주주의와 인권이 억압받던 군사정권 때는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대변하기도 했다. 1970년대는 유신체제로 치닫는 박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였고 독재에 맞선 정의구현 사제단의 대부가 되기고 했다.
박정희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박 대통령이 ‘종교가 정치 경제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고유영역을 벗어나는 일이라’ 라고 말 했을 때 김 추기경께서는 ‘사회가 부정 부패로 썩어 가는데도 교회가 수수 방관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맞받았다. 대권을 거머쥔 전두환사령관이 신년 인사차 찾아 왔을 때는 면전에서 ‘서부 활극을 보는 것 같았다. 서부활극을 보면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지 않느냐’ 고 직언하고 군사정권에 대고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것이 있느냐. 총칼의 힘 밖에는 없다. 국권이 총칼 앞에 무너졌다고 하셨다. 1970년 10월 유신, 1980년 신군부의 12.12 쿠데타, 5월 18일 광주민주화 항쟁사건 등 격동기 마다 인권탄압에 맞섰다.
김 추기경께서는 소외된 이웃의 벗이었고 장애인과 사형수를 거리낌 없이 방문하며 강제철거로 거리에 나앉은 빈민들, 저소득 노동자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여생을 바쳤다.
추기경은 자신을 바보라고 불렀다. 바보같이 남을 도와야 세상을 구원 할 수있다는 것이 그분의 철학이었다. 추기경께서는 호를 ‘옹기’라고 지었는데, 부모가 옹기장사를 하며 당시 박해받던 천주교를 전파한데서 ‘옹기’ 란 호를 가졌다. 옹기는 좋은 것 더러운 것도 담는 그릇이다. 추기경께서는 본인의 안구를 기증하여 앞못보던 2사람에게 선사하였는데 이에 감동한 국민들이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나는 그 동안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사랑하면서 사세요! 라는 유언을 남기면서 2009년 2월 16일 강남성모병원에서 향년 87세로 선종하셨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평생토록 주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사셨고 주님의 말씀을 매일마다 실천하신 20세기가 낳은 그리스도의 진정한 사도였다.
빛보다는 어두움이, 정의보다는 불의가, 용서보다는 보복이, 사랑보다는 미움이 판을 치는 오늘의 현실사회에 온 국민적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김 추기경님 같은 위대한 스승은 오래오래 국민 속에 국민과 함께 국민과 더불어 생존하시면서 이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을 하셔야 되는데 안타깝게도 주님의 부르심에 순명 하시면서 선종하셨다. 그분이 외쳤든 사랑의 메시지로 우리들 가슴 속에 오래오래 살아 있는 메아리로 우리의 삶을 감동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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