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북한이 하는 전쟁위협 발언에 한국은 물론 미국 등 여러 나라가 신경을 곤두세우는 판국이다. 북한은 군지도자를 교체하며 원자탄과 미사일을 가지고 남한뿐만 아니고 일본과 미국을 계속 위협하고 있다. 새로 정권을 잡은 오바마 행정부가 힐러리 클린턴국무장관을 아시아에 보내는 등 사태가 여간 심각하지 않다.
이북은 자기네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지난 10여년간 햇볕정책에 따라 ‘조건없는 도움’을 제공해온 남한에 무시무시한 협박을 해대곤 한다. 오래전 버클리에서 개최한 평화통일 심포지엄에 북한 대표로 참석했던 박영수는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막말을 거침없이 해대며 우리가 50년대와 60년대에 들어왔던 ‘괴뢰’니 ‘역적 도당’이니 하는 단어들을 마구잡이로 뱉어내는 등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착각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투적인 위협을 미디아에서 접하며 1950년의 한국 전쟁을 생각하게 된다. 선견지명이 있는 지도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3년여간 혹독하게 치른 전쟁의 대가로 한반도에 영구 평화가 정착했을 것이고 그리되었으면 미국이나 일본도 위협같지도 아닌 위협속에서 전전긍긍 할 필요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지도자들 중에는 만주에 원자탄을 투척하여 북한을 돕고 있는 중공군을 원천 봉쇄할것을 주장하다가 퇴역 당하는 맥아더장군이 있다. 트루만대통령에게 불복종 하였다고 미국 “시저”는 50여년의 군생활을 마친다. 미8군과 유엔군 사령관 리지웨이장군이 맥아더의 후임으로 극동사령관이 되고 벤프리트장군이 1951년 부터 휴전이되는 때까지 한국전쟁을 지휘했다. 한국에 주둔하며 이승만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였던 그는 퇴역하는 1953년 의회에서 자신은 패전하는 중공군을 섬멸할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더구나 북쪽으로 더 진격할수 있었는데 탄약등 군수 물자가 수송되지 않았고 리지웨이장군으로 부터 견제를 받아 엄청난 사상자를 낸 다음 휴전을 맞았다고 한다. 그는 의회에서 엄청난 사상자를낸 휴전선일대를“meat grinder”라고 까지 표현 했다.
벤프리트장군이 한국전쟁을 지휘하던 1952년 4월에 그의 아들 벤프리트 공군대위는 B-26기로 북한 순천 근처에 주둔한 중공군을 폭격하다가 대공포에 맞아 산화했다고 공군사령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27살의 꽂다운 나이였다. 아들이 전사한 다음날 노장군은 한국군 2군단 창설식에 아무 일도 없었던것 처럼 참석 했다고 한다.
내가 근래에 친지에게서 받은 글에 의하면“그는 뛰여난 전략가였으며 이승만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공산군을 물리치고 한국군을 현대화 하는 일에 정력을 쏟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한국군의 아버지라고 까지 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사랑하는 자기아들을 후방에 편한 보직을 줄수 있었다.
이 이외에도 물밀듯 밀고내려오는 공산군을 막고 시간을 벌기 위해 낙동강 전투에 투입됐다가 사단병력을 모두 잃고 자신도 여러 날 산속을 헤메다 공산군의 포로가 된 윌리엄 딘 소장은 포로 교환때 석방됐다. 그는 버클리에 살다가 타계했다. 살아 생전 미디어에 나타나지도 않고 칩거생활을 했다.
그리고 역시 같은 시기에 지휘관이 된 워커장군은 낙동강 전투와 마산방어선을 지휘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순직했다. 그의 전투기록을 보면 초인간적인 힘으로 풍전등화같은 전선을 유지했다. 아마 그 전선이 무너젔더라면 일본으로 철수해야 되는 급박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를 기리어 서울에 새로지은 호텔을 워커힐이라고 명명했다. 한국이 그를 기리는 이름하나로 보답은 다 못할것이다.
1950년 한국전쟁을 종결을 위한 종결이 아니고 계속하여 북진하였더라면 50여년지난 지금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의 위협에 시달리지도 않을 것이다. 더구나 전쟁 수행에 자신의 혈육까지 바친 군 지도자들의 희생에 머리를 숙인다. 그들이 한국군 지도자가 아니었기에 더 숙연 해진다. 당시에 열악한 상태에서 나라를지킨 젊은 한국군지휘관들에게 끊임없는 찬사를 보낸다. 대부분의 그들은 일본군이나 만주군 초급 장교 출신이였으며 2차대전이 끝난 5,6년만에 나이 20대말 30대초에 연대장과 장군이 되어 사단을 지휘하기에 이르렀다.
전쟁 당시에 군입대 적령기였고 군복무를 피한 어떤 한국정치가들의 애국심에 회의를 가져 본 사람은 나혼자 뿐만은 아닐것이다. 미군이 한국을 방어하러 갈때 꺼꾸로 미국에 징집도 피할겸 하여 온 한국인도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엔 16개국이 군사들을 잘알지도 못했던 한국에 보낸 것 이외에도 재일 교포 700여명이 자원입대하여 한국 전선에 투입됐고 이중 약 200여명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역사는 한국을 방어하고 민주주의에 초석을 이루게 한 이들을 발굴하고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가르쳐 주는 일을 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과 같이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동족으로부터 핵협박을 당하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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