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삼(소유디자인그룹 대표)
고대 이집트 고왕국(BC 3000~BC 2000년경)의 가장 뛰어난 기념적 건축물이 피라미드라면, 신왕국(BC 1580~322 년경)의 것은 웅장한 신전이다. 셈누트에 의해 건설된 장례용 복합 건축물인 ‘핫셉수트 여왕의 분묘 신전’은 고왕국의 피라미드처럼 기능적으로는 신성시된 여왕을 위한 종교의식에 적합한 환경을 만드는것이나 형태적으로는 고왕국의 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이룬다.
건축물을 자연환경에 순응시킨 디자인은 매우 특기할 만한 사실이고, 통로에 있어 경사진 부분과 평탄한 부분이 교차함으로써 구조적인 단조로움을 덜어주며 오르막길을 인간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테라스 가장자리의 긴 수평선과 기둥의 짧은 수직선들, 건물의 배경을 이루는 암벽 등은 서로
가 조화를 이루면서 자리를 잡고 선으로 구성되어 있는 건축물은 기제의 피라미드와는 달리 암석 속 깊은 곳에 신성한 장소를 품고 있다.이집트 건축에서 뛰어난 점은 바로 건축과 조각을 종합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분명히 인간적인 척도로 만들어졌으며, 디자인 과정에서 세심하게 계획되어 가까이서 보았을 때나 멀리서 보았을 때 모두 만족스러운 모습을 갖게 하였다. 이는 그 자체로서 건축인 것이다.
이러한 건축은 건축가와 건축주 사이에 상호 이해를 토대로 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고대 이집트 건축은 독특한 사후 세계에 대한 그들만의 종교적 신념이 건축 예술에 옮겨져 웅장한 피라미드와 분묘 신전 등의 건축물을 남겼다.또 주목할 만한 고대 건축양식을 남긴 문명은 그리스가 아닐까? 그리스 문명은 Protagoras가 말했듯이 ‘만물의 척도’로서의 인간을 중심으로 한 최초의 문명으로 개방적인 민주주의 사회의 틀을 마련했다. 개인의 인간적 자유에 대한 이상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생겨나 유럽의 인간 존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자칭 헬레네인들로 불리우며, 자유와 질서의 균형을 중요시여기며 이성적 철학과 자연과학의 발전을 이루었는데, 철학 사상을 토론할 때는 스토아(Stoa)에 모였다. 이 스토아는 지붕이 있는 열주랑으로서 아고라(Agora) 라고 하는 도시의 중앙에 있는 시장을 에워싸고 있다.
인간 중심의 사회였던 그리스의 종교적 신념은 이집트의 그 것과는 차별화된다. 인간은 자연이 만든 가장 뛰어난 창조물이자 값진 것으로 여겨져 인간이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된다. 신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위엄있는 존재였지만 인간적 약점을 지니고 있는 존재였다. 완벽한 인간상을 만드는 것이 그리스의 이상이었다.
신들은 인간의 모습을 닮고 있고 그들은 산꼭대기나 작은 숲같은 자연 속에 산다고 믿었다.예술은 이성적 질서의 추구를 기본으로 미를 추구하고자 했다. 자연은 예술의 발판이며, 그 표현에서 자연을 능가하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형태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목표로 여겼다. 자연의 형태를 개선하고자 하는 것은 Idealism(이상주의)라 불리우며 그리스 고전 예술의 지속기간은 이집트의 수천년에 비해 수십년에 불과하지만 이 기간 가장 위대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고대 그리스의 주된 건물 형태는 신전이다. 그리스인들은 로마인들과는 대조적으로 내부 공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리스인들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외부공간 요소로서의 신전이었으며, 따라서 그리스의 신전은 이집트 신전의 산만한 배치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질서있고 짜임새있으며 대칭적인 면을 보여준다.
외부는 조각품으로 장식되었다. 신전 건축은 본질적으로 기둥과 보로 구성되는 가구식 구조이다. 여기서 특징적인 점은 착시현상을 교정하기위한 기둥에서 보여지는 양식이다. 그 중 하나는 ‘배흘림’양식으로 기둥을 옆에서 볼 때 중앙부가 약간 부풀어 오르도록 만드는 것이며, 기둥은 위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진다. 그 결과근육과도 같은 인간적 속성이 기둥에 부여되었으며, 이 기둥은 역동감 있는 수직 지지 부재가 되었다. 기둥이 위쪽으로 갈수록 약간 안쪽으로 기울어지는데 이것은 기둥이 밖으로 넘어지는
듯이 보이는 것을 시각적으로 교정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고전 시대의 절정기에 시도 되었던 이러한 시각적 교정 수법들은 그들이 형태에 대해 극도로 민감했던 것을 증명해 준다. 형태적 미학은 기둥들에 Doric, Ionic, Corinthian order 등의 독특한 양식을 남겼다.
그리스 초기와 고전기를 통해 가장 유명하며 우리에게 친숙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이야기 하며 이번 칼럼을 마칠까 한다.그리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데에는 아테네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이 도시는
마라톤 전쟁이후 그리스에서 지배적인 정치세력이 되었다.서양사회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일찍이 찾아 볼 수 없었던 희곡, 철학 및 예술의 발달을 이룩하였다. 이 때 아테네는 BC 480년에 페르시아에 의해 파괴된 아크로폴리스를 다시 복원시켰다. 이는 로마시대 이전에 있어 가장 큰 건축 공사 중의 하나로 접근하기 힘든 암벽위에 우뚝 솟아 그 아름다움이 건축 작품이자 조각 작품으로서 역사상 매우 탁월한 건물로 인정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