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경기부양법안의 통과가 확실해졌다. 밤늦게까지 마라톤협상을 거듭해 온 상원과 하원이 11일 오후 3시경 단일안 합의도달의 첫 낭보를 전했다. 오늘과 내일 중으로 실시될 양원 표결에도 큰 장애는 없어 보인다. 하원이야 민주당이 절대다수니 당연하고 상원의 공화당 ‘반란표’ 3명도 합의안에 만족을 표했으니 걸릴 것이 없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첫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경기부양안의 통과를 위해 오바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취임 전부터 공화당의원들을 달래고 어르며 ‘초당적 합의’를 호소했고 취임 후에는 주지사, 시장, CEO, 노조, 종교기관, 여성단체, 각 재단 대표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접촉하며 왜 경기부양안을 급하게 당장 통과시켜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그리고 이번 주 들어서는 급기야 자신이 발로 뛰는 홍보 ‘캠페인’에 돌입했다.
9일부터 시작된 오바마의 타운홀 미팅 순회는 워싱턴에서 부딪친 초당적 정치의 실패에서 나온 부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워싱턴의 장벽은 생각보다 완강했다. 인기 높은 대통령이 전화하고, 찾아가고, 파티에도 초대하며 경기부양법안의 초당적 통과를 간곡하게 설득했지만 공화당 의원들은 철벽이었다. 오히려 ‘나이스한’ 대통령이 쉬워 보였던지 당파 대결에서 유리한 입지 확보에 열중했다. 거기에 더해 ‘민주당의 선심성 지출’을 지적하는 공화당의 비판에 여론이 솔깃하면서 부양안 지지도가 약화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상하원 첫 투표 결과 연방의회 전체 219명의 공화당 의원 중 찬성표를 던진 것은 상원의 3명뿐이었다. 초당적 지지라고 우기기는 힘든 숫자다. 그동안 노력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백악관은 작전을 바꿨다. 의원들 너머로 눈길을 돌렸다. 지난 2년 미 전국을 발로 누비는 강행군 유세에서 해방된 것을 다행스러워했던 오바마가 다시 길로 나선 것이다. 타운홀 미팅은 주민들과의 공감대를 이루어가는 최선의 방법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오바마 팀이다.
“아직도 후보냐?”“정책결정을 감정에 호소하느냐”라는 부정적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차례의 타운홀 미팅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처음부터 그랬어야 한다. 의회와의 소득없는 협상에 진을 빼는 대신 직접 국민들에게 호소했어야 한다”라고 대통령 역사학자 더글러스 브링클리 교수는 말한다.
실직의 좌절과 불안을 호소하는 주민들에게 대책을 약속하며 “경기부양안은 그저 숫자가 아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희망이다”라고 강조하는 오바마 메시지의 효과는 강렬했다.
첫 타운홀 미팅이 열린 인디애나주 엘카트시는 RV의 수도로 불리던 곳이다. 미전체 RV의 75%를 생산하던 이곳에 지난해부터 대량감원의 바람이 몰아쳤다. 1년만에 실업률이 4.7%에서 15.3%로 치솟았다. 미전국 최고의 실업률이다. 몇 달전 보스가 눈물을 흘리며 전하는 공장폐쇄 통보에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은 1,400명 중 하나였던 7남매의 아버지 에드 누펠트는 지난 대선에서 공화당에 한 표를 던졌었다. 그러나 이번 타운홀 미팅에서 대통령 소개를 맡은 그는 오바마의 성공을 간곡히 기도한다고 말했다. 공화당 지역인 그곳의 신문 ‘엘카트 트루스’도 오바마에게 당부했다 - “제발 워싱턴에 전해주십시오 . 경기부양안은 정치가 아니라 우리에겐 ‘생존’ 지체라는 것을” 워싱턴에서 얻지 못한 초당적 지지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10일에 들른 플로리다 포트마이어스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미전국에서 주택차압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차기 공화당 대권주자로 꼽히는 찰리 크리스트 주지사와 나란히 서서 “마을에 불이 났을 때 우린 어느 당인가를 따지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호스를 들고 나서야 합니다”라고 다짐하는 오바마의 연설에 주민들은 열띤 기립박수를 보냈다. ‘경기회복까지는 몇 년이 걸릴 것’이라며 인내를 호소하는 대통령에게 주민들은 “당신에겐 8년이 있어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오늘은 최근 2만여 일자리 축소를 발표한 캐타필라 공장 근로자들의 호소를 듣기위해 일리노이주로 날아간다. 미디어들은 경기부양 법안 홍보를 위한 ‘대통령의 로드쇼’라고 부르지만 오바마팀의 시각은 다르다. 주민들에게 법안을 홍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워싱턴 정치인들과 전 국민들에게 경제위기에 무너지고 있는 사람들의 절박한 현실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생계가 막연해진 가장들, 보험이 없어지면서 아이들이 아프지 말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는 부모들, 감격했던 대학 합격통지를 서랍 깊숙이 집어넣고 좌절하는 젊은이들…
경기부양법안이 순조롭게 프레지던트 데이까지 오바마의 서명을 받아, 7,890억달러가 풀린다해도 장밋빛 경기를 장담하는 사람은 없다. 2조 달러를 쏟아 붓겠다는 금융안정대책이 성공하지 않으면 경제위기는 악화될 것이라든지, 머지않아 추가의 경기부양안이 더 필요할 것이라든지 계속 쏟아져 나오는 비관론은 불안을 더욱 부추긴다.
오바마와 타운홀 미팅에 동행했던 ABC 방송의 기자가 물었다. “대통령의 힘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워싱턴 안에? 아니면 이곳처럼 밖에?” 대통령이 대답했다. “항상 이곳, 밖에 있지요. 주민들의 삶에서 보고 느낀 엄청난 수요를 워싱턴에서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데, 어렵군요 . 적어도 1주일에 한번씩은 이렇게 나오려고 합니다. 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누구를 위해 일하는 것인지를 상기시켜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일단 오늘은 워싱턴의 당파적 권력이 아닌 국민들의 보이스를 ‘힘’으로 삼겠다는 젊은 대통령의 신념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한다.
박록. 주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