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 트레일의 초입은 영화에서 나오는 아프리카 정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축 늘어진 덩굴, 노인 수염 같은 이끼
산세베리아·고사리·난… 거대한 식물원
단장님의 메들리 송에 산행 피로 싹
우리의 가이드는 로만(Roman)이다. 키도 훤칠하고 상당한 미남이다. 영어도 잘 하며, 아주 친절하고, 가끔씩 짓는 미소는 그의 순박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들이 제일 많이 쓰는 말은 ‘헬로’란 뜻의 잠보(jambo)와 ‘천천히’라는 ‘pole pole’(뽈레 뽈레)다. 천천히 산행하는 것이 고산 등반 때 체력안배를 위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일 게다.
로만은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예정시간은 6시간, 내가 리더(leader)로 정해졌다. 나는 로만과 우리 대원간의 페이스(pace)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평상시 산행하듯 그렇게 편안하게 페이스를 잡았다. 가끔 뒤돌아보며 간격을 좁히고 일렬로 산을 올라갔다. 11월, 지금은 반 우기라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모양이다. 오르는 중 다른 일행은 만나지 못했다.
오늘은 완전한 우리의 산이었다.
트레일은 아주 깨끗이 정돈이 되어 있었다. 2~3사람이 같이 걸어도 될 정도의 넓이에 돌과 나무로 괴어 계단식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바닥은 단단하게 흙이 여며져 있었다.
킬리만자로는 참으로 신기한 곳이다. 출발할 당시에는 우리가 보통 볼 수 있는 그런 산 풍경이었다. 그러나 조금 지나니 난생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에서만 보았던 정글! 바로 그것이다.
울창한 나무들이 하늘을 메우고 새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어 부르는 합창 같았으며 나무마다 짙은 초록의 이끼가 끼어 마치 폭신한 이끼 옷을 입은 듯 각양각색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고, 아래까지 늘어진 덩굴들은 타잔이 어깨에 원숭이를 메고 제인을 찾아 매달리며 날아갈 것만 같았다. 또한 군데군데 노인의 수염 같은 허연 이끼가 운치 있게 드리워져 영화에서만 보았던 바로 그 정글! 그 모습이었다.
공기는 얼마나 싱그럽고 촉촉한지,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산소가 나의 세포 구석구석까지 채워지는 느낌이고, 빼곡히 들어차 있는 온갖 종류의 나무들을 보자니 거대한 식물원에 들어온 기분이다.
지나면서 식물들을 보니 우리가 집에서 키우는 하우스 플랜트(house plant)인 aspidistra, sansevieria, orchid, lily와 fern들이 보였고, 이런 것들이 정글에서 자생하는 식물인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가끔씩 보이는 짙은 주홍색 꽃은 난(orchid) 종류인 Passion of Kilimanjaro라는 꽃이고, 옅은 보라색의 Violet of Kilimanjaro라는 꽃도 있었는데 이곳에서만 자생하는 꽃이란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오늘은 고도 게인(elevation gain)이 많은 산행이었기 때문에 계속되는 오르막으로 인해 대원들이 조금 지쳐하자 조상하 단장님이 동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 산악회의 아이디어 뱅크이신 조 단장님! 그의 무궁무진한 에너지에 모두 놀라고 말았다. 쉬지 않은 단장님의 노래는 동요, 가요, 가곡 등을 모두 섭렵하고 두어 시간이 지난 후에야 끝이 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대원들은 피곤한 줄 모르고 즐거운 웃음으로 산행할 수가 있었다.
6시가 다 되어갈 무렵 아슬아슬하게 헤드 랜턴(head lantern) 없이 Machame Hut에 도착한 우리는 포터들이 미리 와서 셋업(set-up)해 놓은 텐트에 들어가 짐을 풀고 그들이 준비해 놓은 따뜻한 물로 세수를 한 후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누군가에게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여러 사람들이 우리의 저녁식사를 위해 시중을 들어주었다. 오늘의 메뉴는 카레가 섞인 야채수프, 찐 감자, 튀긴 피시스틱(Fish stick)이다.
차는 커피, 핫초코, 분유와 티가 준비되어 있어 각자 취향껏 마실 수가 있었다. 식사하고 나니 밖은 칠흑 같은 어두움으로 한치 앞도 분간키 어려웠다. 이곳의 화장실은 나무로 만들어 구멍을 뚫어놓은 예전의 한국 시골의 재래식 화장실과 같은 모양새다.
화장실은 깨끗하게 잘 관리가 되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작년 페루 여행 때 관리가 잘 안되어 있던 수세식 화장실의 더러움을 기억하고 있었던 나는 훨씬 편한 마음으로 화장실을 갈 수 있었다.
텐트로 돌아온 후 산행의 피로감으로 인해 정신없이 곯아떨어져 잠에 빠져 들었다.
베이스캠프에 포터들이 미리 세워 놓은 텐트들.
난 등 온갖 종류의 식물들을 보자니 거대한 식물원에 들어온 기분이다.
■문의: 재미한인산악회
www.kaacla.com
양은형 총무
<재미한인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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