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국정치 관여에 대한 관심도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모르나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 ‘분’들이 본국정치 관여를 운운하는지, 또 그를 위해 교포 다수의 목소리인양 조성을 하는 건지 누가 한번 여론조사 같은 것을 해보았음 싶다.
3년 전쯤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밀어붙이던 한미자유무역 협상에 대한 반대시위가 워싱턴, 로스앤젤리스, 뉴욕, 시애틀에서 연이어 있었다. 한번은 워싱턴에서 한국 측 협상단과 2차 협상이 있을 때 한국에서 100여 명의 원정 시위단이 함께 입국해온 적이 있다. 그들은 몇몇 시, 국회의원 외에 대부분이 한국 내 대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자유무역 협의안이 통과될 경우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한국 내 농민들과 각층의 수많은 저소득민들을 대변하려함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나는 그때 이제나 저제나 한인 신문지상을 통해 시위대의 정황과 일정 등이 공지되길 기다리고 있었으나 곧 그런 내 모습이 어리석음을 깨달았던 기억이 있다. 협상과 시위가 동시에 진행된지 6일째가 되어서야 신문 한구석에 마지막 7일째 일정이 게재되었었으니… 그리고 그 신문은 7일째 되던 당일 날 아침에서야 내 집으로 배달이 되었다.
그래도 부랴부랴 시위단의 숙소 등을 살피며 함께 참여하시던 교포 한분의 연락처를 얻어낸 나는 그분과의 통화 끝에 많은 비가 예상되던 시위장소로 달려가 짧은 한나절을 시위에 참여할 순 있었다. 하지만 그날 빗속에서 착잡하게 구호를 외치며 느낀 씁쓸함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찬바람을 일으키기만 한다. 그 일주일 내내 원정 시위단을 도와 숙식 등을 관장하셨던 단 서너 교포분들과 그외 몇몇 유학생 외엔 도저히 워싱턴 지역 10만 이상 한인교포의 관심을 느낄 수 있기는커녕 먼 곳까지 마다않고 날아온 시위단 앞에, 그리고 함께 참석한 이 곧 미국시민 수십여 명 앞에서 참으로 낯 뜨겁고 너무도 심기 불편했던 날로서만 기억에 남아버렸기 때문이다.
미국에 사는 영주권자로서, 아니면 미국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미국시민으로서 미국경제에 이득이 될 수 있는 정책에 반대하기가 불편했던 순진함이었나. 아님 본국 동포 서민들이 겪게 될 어려움에 대한 단순 무관심인가. 지금 참정권을 외치고 요구하는 모습과는 맞물리지 않는 껄끄러움이 왠지 무겁게만 느껴진다.
현재 이곳에 영주하며 특히 2세 자녀들을 가진 한인 부모들이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는 말로만 미국시민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건 상관없이 남이 갈아놓은 논밭에 빌붙어 살고자 이 먼 곳까지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거 때만 되면 후보가 대체 누군지도 모르면서 미국인들이 보고 물을 때만 ‘우리도 관심있네’ 하며 포스터 손에 들고 웃어주는 식의 것도 아니다. 그래도 굳이 교포사회 내에 안주하고 싶다면 최소한 우리 교포신문에 전면 성명서를 남발하며 신문지면을 돈 내고 ‘낭비’ 또는 ‘피해’를 입히는 몇몇 소위 교포 단체장 ‘분’들이 도대체 어떤 경로로 저들 자리에 올라앉게 되었는지 만이라도 관심을 갖고 관여했으면 좋지 않을까. 우리가 틈만 나면 빗대어 비교하기 좋아하는 유대인 사회를 보자면, 그들은 이스라엘을 향해 ‘참정권’이나 그를 이용한 감투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미 그들 없인 존재 가능성조차 희박한 바로 그 이스라엘이 그들을, 바로 미국 내 유대인 사회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으니까.
남이 관심을 표명하기 전에 먼저 관심을 보이고 참여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린 떠나온 본국 정치에 관여하느니 마느니 운운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아니 지금의 모습으론 그럴 자격조차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게다. 교포사회의 발전은 한국 내 ‘참여’정부 이전에 바로 이곳 미국의 ‘참여’정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쳐다볼 곳을 먼저 보고 경청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코앞에서 무엇이 어떻게 돼 가는지를 알려는 자세가 우선이 아닐까. 곧 그것이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미국사회에 대한 자세며, 더 나아가 그러한 모습으로 다져진 교포사회의 도움을 나중에라도 오히려 절실히 느끼게 될 수도 있는 한국정부에 대한 바른 순서가 아닐까.
미국이 오랜 동안 많은 지역과 국가들을 상대로 강압적으로 체결해온 모든 자유무역협정들에 대해 강력히 비판해왔던 노암 촘스키 박사(유태인 2세 출신. 현 MIT 교수)는 한 시민으로부터의 ‘당신은 한 사람의 미국 시민으로서 왜 그렇게 미국을 비판하는데 앞장서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이곳에 이주 ‘미국민’으로 정착해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나는 한사람의 미국시민으로서 미국정부가 시행하는 모든 정책들에 대한 책임의식을 느끼며, 잘못 되었다고 생각되는 정책들에 비판해야 하는 한 미국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을 뿐입니다. 상대에게 피해를 일으키는 정책이라면 그것은 우리에게도 나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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