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들면서 읽혀지는 북한의 심사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 1년 동안 금강산에서, 개성공단에서 고개를 곧추 세우던 군부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린다. ‘전면 대결태세 돌입’을 경고하며 내뿜는 기세도 사납기만 하다. 북한 당국은 지난 1월 30일, “남북사이의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관련한 모든 합의를 무효화한다”고 선언한다. 1991년 12월 13일 체결된 ‘화해와 불가침 및 협력 교류에 대한 합의서(남북 기본합의서)’를 폐기하고, 더 이상 서해 해상 군사경계선 즉,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1999년 6월과 2002년 6월 두 차례 치뤘던 끔찍한 ‘연평해전’의 악몽을 되살린다. 발길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대포동 2호 발사 움직임까지 보인다. 한미 정보당국이 KH -12 첩보위성 등을 통해 포착한 정보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월말 대포동 2호로 추정되는 ‘원통형 물체’를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기지로 옮긴다는 보도다. 시위가 분명하다. 3, 4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냐, 또 다른 핵실험이냐. 아니면6월 꽃게철 분탕질이냐.
어느 것이라 해도 예삿 일이 아니다. 한반도에서 위기를 조성하고, 긴장을 끌어 올려 한 몫 잡겠다는 북한 특유의 ‘벼랑끝 전술’이라 해도 안 보고, 못 들은척 할 수는 없다.
옛 말에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 했다. 이쯤해서 남북관계 지난 1년을 되돌아 보며 꼭 챙겨야 할 사안들에 대하여 한번 더 묻고, 북한의 속마음도 가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의 선군정치와 핵미사일 외교를 주관하는 정권실세들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인가? 답답하겠지만 대답은 “아니다” 그것도 ‘절대 아니다’라고 대답할 뿐이 없음이 냉엄한 현실이다. 1994년 제1차 핵위기와 ‘제네바 합의’ 뒤끝이나, 2002년 제2차 핵위기와 6자회담이 처한 오늘의 처지, 그리고 지금 당장 북한 군부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대답은 쉽게 가려진다. 북한 군부는 지난 2일, “미국 핵위협을 청산하기 위한 남핵 폐기가 없는 한 북핵 폐기는 영원히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 대못을 치고 나온다. 그것도 성이 차지 않는 듯 “전쟁도 평화도 아닌 현 정전상태의 종식을 외면하면서 집요하게 추진하는 반공화국 적대시 정책이 언제 핵전쟁으로 이어질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오늘, 교전 상대방(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려는 것이야말로 파렴치의 극치”라, 목소리를 높이는 북한 군부다. 사실, 북한의 입장에서 살핀다면 백번 옳은 말이다. 만약 북한의 핵무기가 완전 제거되었다 하자. 한국을 비롯한 자유진영이 밀어 붙이 는 ‘민주화와 시장경제체제’로의 개방, 개혁 압력을 북한 당국이 어떻게 견디어 낼 것인가. 끝내는 정권의 종말 뿐일 것이다.
둘째로,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미국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언제, 어떻게 매듭지을 것인지, 핵무기를 완전 제거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있는가도 엿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어느 것도 확실한 대답을 얻을 수 없고, 얻었다 해도 믿을 수 없다는 데 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손뗄 수 없는 미국이다. 국가 이익이라면 누구와도 만나고, 손잡겠다는 미국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였듯이 ‘북핵 제거’에서 ‘북핵 확산방지’로 물꼬를 틀고, 북미관계를 새롭게 다질 수 있는 미국이기에 더욱 그렇다.
셋째, 북핵 문제를 두고, 중국, 러시아 정부가 노리는 대목이 뭣인지도 물어야 한다. 북한과의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굳건히 하는 중국이고 러시아다. 비록 FTA체결 등 교역관계로 얼마쯤의 틈새야 있겠지만, 그 이상 북한과의 틈새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끝으로 ‘시간은 북한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타타담담(打打談談). 무력도발과 대화. 타협과 개방. 교류 후 대화 파기. 다시 무력 도발후 대화. 핵문제를 두고 우리가 보아 온 북한의 모습이다. 그 사이 사이에 핵과 미사일 개발능력을 다그쳐 온 북한이다.
“기다림”은 훌륭한 전술, 전략이다. 동장군(冬將軍), 장마를 기다리는 솜씨. 제갈 공명(孔明)의 천수(天壽)를 점치는 ‘사마중달’의 기다림. 이길 수 있다. 그러나 핵무기가 핵보유국에게는 아무 힘도 쓸 수 없음을 알고 준비하는 ‘기다림’이라면 판짜기는 훨씬 쉬울 것이다. “핵은 핵으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필승지책(必勝之策)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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