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조지 부시 대통령의 퇴임을 가장 아쉬워했던(?) 그룹 중 하나는 시사만평가들이었다. 만인의 혐오를 한몸에 받는데다 무능해 보이는 부시만큼 좋은 풍자대상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명석하고 진지하며 높은 지지율에 풍자소재로는 민감한 흑인이기까지 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찌르기가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 요즘 워싱턴에서 아연 정치조크가 활기를 띄고 있다.
“워싱턴 정치인이 되면 반드시 지켜야할 의무가 있어요. 레드스킨스 응원입니다. 대신 세금은 내든 말든, 옵션이지요” “경기부양예산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대요. 연방의원들과 장관들에게서 밀린 세금을 다 거두어들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답니다” “민주당의원들이 세금인상에 목매는 이유가 따로 있던데요. ‘너희가 더 내라, 그래야 우리는 안내도 되지’라는 전략이라나요”
‘깨끗한 정부’ 오바마의 내각 지명자들이 줄줄이 탈세스캔들에 연루되면서 남긴 부산물이다.
지난주부터 연방의회 주변에선 두 개의 정치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경제회복의 관건을 쥐고 있는 경기부양법안 통과를 위한 백악관과 의회의 힘겨루기였다. 그러나 보다 흥미진진했던 것은 톰 대슐 보건장관 지명자의 낙마로 마무리 된 오바마 내각인선을 둘러싼 빠른 상황전개였다.
대슐의 탈세혐의가 불거진 것은 지난 금요일이었다. 하필이면 오바마 대통령이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에 200억달러 보너스를 챙긴 월스트릿의 몰염치를 준엄하게 질책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한 때 ‘BMW와 리무진이 가득 찬’ 워싱턴에서 ‘낡은 폰티액으로 출퇴근하는 청렴한 보통사람’ 이미지를 홍보주제로 삼았던 대슐이 후원자가 제공한 운전사 딸린 리무진을 무료로 타고 다니면서 그에 대한 세금을 안내다가 인준청문회 6일전에 부랴부랴 납부했다는 것이 루머가 아닌 의회보고서에서 드러난 것이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역임한 대슐의 인준을 낙관했던 백악관과 민주당지도부에선 비상이 걸렸다. 탈세에 더해 로펌의 ‘정책자문’, 업계의 스피치 등으로 2년동안 500여만달러를 벌어들인 전적도 구설수에 올랐다. 등록만 안했지 로비스트와 무엇이 다르냐는 지적에 답변이 궁색했다. 인준 반대자를 달래는 분주한 물밑작업으로 숨 가쁜 주말을 보낸 후 월요일 오후 상원재무위는 일단 인준 쪽으로 합의를 보았다. 오바마는 변함없는 신임을 단호하게 공언했고 한 숨 돌린 대슐은 그날 저녁 재무위 소속 의원들에게 감사 전화까지 걸었다. 그러나 화요일 아침 상황은 돌변했다. 잠시 지나갈 바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폭풍의 전조였다.
30년 정치 베테랑 대슐 자신이 누구보다 먼저 감지하고 결단을 내렸다. 백악관도 반대하지 않았다. 버티기를 계속하다간 경기부양안 통과에 차질이 생길 것을 무엇보다 우려했다. “진보언론의 대표 뉴욕타임스와 보수언론의 대표 월스트릿 저널이 동시에 사퇴를 촉구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한 소식통은 전한다.
전국의 여론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인 그의 사퇴결정에 오히려 놀란 것은 워싱턴 정가였다. 의원들은 물론 미디어들도 예상치 못했던 빠른 결정이었다. 난관은 있었겠지만 표를 계산하면 인준은 거의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건 어떻게 보면 ‘정직한 실수’ 혹은 ‘관행’으로 서로 덮어주는 고위층의 위법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분노에 워싱턴 인사이더들이 무감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슐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사퇴를 결정한데 이어 화요일 오후 오바마 대통령이 5대 TV앵커들과의 연속인터뷰를 통해 ‘내 탓’이라고 사과를 거듭하면서 사태는 ‘택스게이트’로 비화되지 않고 일단 진정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후유증은 남았다.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가장 아파야 할 것은 이미지의 상처다. 오바마가 지난 2년간 강조해 온 투명한 ‘윤리정치’에 대한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측근과 나머지 사람들을 향한 이중의 잣대를 의심받은 것은 개운치 못하다. 대통령 자신이 이중의 잣대는 없다고 5번의 인터뷰 마다 거듭 강조했지만 그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해야 할 사안이다. 인준은 받았지만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의 탈세혐의는 그대로 살아있고 취임직후 서명한 로비스트관련 윤리규정에 예외를 적용, 10여명의 로비스트들을 고위직에 등용했다.
손실도 크다. 오바마는 가장 신뢰하는 측근중 하나를 잃었다. 존경받는 중진이었던 대슐은 각양각색의 수재들을 모아놓은 오바마 내각에서 무게있는 구심점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되어 왔었다.
더 큰 우려는 헬스개혁에 미칠 영향이다. 대슐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것은 공화당에서도 인정한 평가다. 헬스케어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추었고 개혁법안 통과를 손에 쥔 의회의 생리에 훤하며 대통령의 측근 실세여서 우선과제로 강력 추진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오바마와 여론의 허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출범 2주만에 직면한 이번 사태는 업무수행 지지율 63%, 개인호감도 83%라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에 당장 변화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캠페인과 현실은 다르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고 대다수는 관대하게 넘기고 싶어 한다.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신선하게 다가오는 대통령의 ‘내탓이오’도 두번 세번 거듭되면 그 진정성이 의심되면서 약효가 사라지기 마련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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