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2주동안 미국뉴스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될 용어는 단연 Stimulus Bill, 경기부양법안이다.
나빠지는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정부는 기본적으로 두가지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 하나는 금리조정 등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과세 및 예산지출을 결정하는 연방의회의 재정정책이다. 경제가 나빠지면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는 금리를 내리고 의회는 소비 진작을 위해 세금환불 등 돈을 푸는 경기부양법안을 마련한다.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에 처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제로금리시대엔 이미 지난해부터 들어섰고 요즘 의회는 미역사상 최대규모의 경기부양법안 통과를 위해 막바지 피치를 올리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전부터 경기회복을 위한 최우선 어젠다로 선언하며 공을 들여온 경기부양책의 하원법안은 8,190억달러 규모다. 미국의 남녀노소 전 인구에게 골고루 나눠준다면 1인당 약 2,700달러씩 돌아간다. 4인가족이라면 1만달러 넘게 받을 수 있다. 실직당했다고 동반자살로 치닫는 대신 재기를 시도할 만큼 가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액수다. 이 돈을 받은 모든 사람이 의무적으로 소비한다면 경기활성화에도 즉각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행 불가능한 이야기다. 설사 시행돼도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 전례를 통해 드러났다. 지난해 부부당 1,500달러를 지급한 세금환불 부양책도 반짝하다 말았고 지난해 말 구제금융법안을 통해 지급한 3,500억달러도 시중으로 풀리는 대신 아직 각 은행들의 금고 속에서 잠자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엔 보다 확실한 효과를 기대하며 오바마와 민주당 지도부가 고심 끝에 647페이지에 달하는 포괄적 부양안을 선보였다. ‘미국의 회복과 재투자 플랜’이라는 정식명칭도 붙였다.
지금은, 보다 강력한 보다 더 큰 규모의 경기부양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쉽게 말하면 비즈니스가 잘되어 실직자가 줄어들 수 있도록 8천여억달러를 가장 빠르게, 가장 효과적으로 쓸 쇼핑리스트를 만드는 것인데 전혀 신나지도 , 쉽지도 않은 작업이다.
민주당의 쇼핑리스트는 크게 3분야로 나눌 수 있다. 개인에게 직접 돈을 주는 세금감면용이 2,750억달러, 주와 지역정부 보조기금이 2,000억달러 그리고 나머지 약 3,440억달러가 정부의 각종 프로그램을 위한 지출이다. 감세보다는 지출에 무게를 둔 민주당 법안에 대해 감세를 지상과제로 삼아온 공화당은 당연히 거센 비판을 제기했다.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감세 몫은 부족한 반면 선심성 예산낭비 항목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공화당의 지적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보수신문 월스트릿저널이 민주당의 ‘40년 별러온 소원’이라고 꼬집었듯이 부양안의 지출항목에는 당장의 일자리 창출이나 경기활성화와는 별 관계없는 선심성 예산배정이 상당수 끼워 넣어진 것이 사실이다. 교육지원이나 대체에너지 개발은 장기적 투자로 인정한다 해도 정부의 새 차량 구입이나 워싱턴 내셔널몰 재단장 공사등은 위기해소용 긴급처리 법안에 포함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꼭 필요한 예산이라면 정상 절차를 거쳐 충분한 토의를 한 후 배정받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에게 기대와 희망을 걸고 있는 여론은 일단 부양안에 절대적 지지를 보이고 있고 지난 8년 실정을 책임져야 할 야당의 보이스는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예상대로 하원의 경기부양안은 어제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상원안이 다음 주 의결되면 상하원 관계자들의 협의를 통해 양원절충안이 마련되어 다시 한번 각 본회의 표결을 거친 후 대통령에게 보내진다. 민주당지도부가 정한 법안 백악관행 데드라인 2월16일 프레지던트 데이는 무난히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부양안이 부결될까 걱정은 대통령이나 민주당, 아무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오바마가 원한 것은 이런 통과가 아니었다. 28일 하원의 투표결과는 찬성 244 대 반대 188, 단 한명의 공화당 의원도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 지난 주 관련위원회 투표에서도 투표성향은 당론에 따라 확연히 갈렸었다. 오바마가 캠페인 내내, 그리고 취임사를 통해 또 표결 하루전인 27일 이례적으로 의사당을 방문하면서까지 호소해온 ‘초당적 지지’가 무색해졌다.
막대한 자금은 빠르게 소진되는 반면 성과는 상당기간이 지나야 나타날 이번 경기부양책의 효과를 회의하는 비판 보이스가 차츰 높아지고 있다. 선거 참패에 숨죽이던 공화당의 고개도 점차 빳빳해지고 있다. 절대명제인 경제 살리기에도 양당은 서로의 속셈은 털어놓지 않은채 당파적 대립은 여전히 계속될 것 같다는 뜻이다.
성공여부를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 이 ‘담대한 투자’의 자본은 사실 ‘우리의 돈’이다. 게다가 몽땅 빚을 얻어야 하는데 원금은 8,190억달러이지만 향후 10년간의 이자가 3,400억달러나 되니 결국 총 비용은 1조달러가 넘게 된다. 이 엄청난 빚을 갚아야할 책임은 우리 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까지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 40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재정난에도 숨통을 트여 줄 경기부양책의 실현이 눈앞으로 다가왔는데 기쁨 보다 불안이 앞서는 것은 공화당만이 아닌 듯하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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