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 /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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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you lose touch with inner stillness,
you lose touch with yourself.
When you lose touch with yourself,
you lose yourself in the world.
당신 내면의 고요함과 소식이 끊기면
당신 자신과의 연락이 두절됩니다.
당신 자신과의 연락이 두절되면
이 세상 속에 당신 스스로를 잃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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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밤에 이런 저런 꿈을 꾸다 아직 피로가 덜 가신 상태로 눈을 뜹니다. 뭔가 석연찮은 미완의 스토리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과 뒤섞여 희미한 몽환 속에 잔재로 남아 있습니다. 매일 밤 꾸는 꿈들이 하나같이 다른 게 신기합니다. 새롭게 아이를 받으며 꾸는 어미의 태몽은 더더욱 신비롭지요. 하긴, 꿈이란 게 온통 불가사의한 세계의 반영일터이니, 부질없이 이런 저런 토를 달 일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매일 밤 너 댓 차례 꿈을 꾼답니다. 그리고, 기억 여부에 관계없이 꿈의 세계는 잠재의식과 초월의식이 늘 필요로 하는 자양분의 원천이기도 하답니다. 잠이 부족하면 몸도 피곤하지만 사실 더욱 피곤한 건 덜 충전된 영혼이라던가요?
뿌연 새벽안개 속을 걸으며 실마리가 궁금한 간 밤의 꿈결을 더듬어봅니다. 기억이란 묘한 존재라, 굳이 힘들여 기억할라치면 긴 그림자처럼 더 멀어져만 갑니다. 그러다, 힘 빼고 잠시 다른 일에 정신을 팔다 보면 ‘나 여기 있잖아’ 하며 금세 나타나는 게 또 기억의 숨바꼭질입니다. 중천에 뜬 정오의 태양 아래 내 그림자처럼 그렇게 손쉽게 잡히는 기억이 아까는 왜 그리도 멀리 있었던지. 그렇게 한 동안 새벽안개 속을 꿈처럼 걷다 보니 홀연 몇 가닥 꿈의 실마리가 풀리는 듯도 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향기 그윽한 녹차 한 잔에 속을 데우며 어제 밤 자기 전 읽던 “Stillness Speaks” 맨 앞 쪽을 다시 들여다 봅니다.
“진정한 스승은 흔히 말하는 식으로 가르칠 그 무엇도 따로 갖고 있지 않다. 새로운 정보, 신념 또는 행동양식 등 당신에게 따로 줄 것도 더할 것도 없다. 참 스승의 유일한 기능이란 단순히 장애를 제거하는 일이다. 그 장애 때문에 당신은 당신의 참된 자아로부터 분리되어 있고 또 당신 내면 깊숙이 이미 알고 있는 진리에서 떨어져 있다.” 그렇게 시작되는 이 손바닥만한 책의 서문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걸 다시 알게끔 하는 게 유일한 목적이라 천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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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you lose touch with inner stillness,
you lose touch with yourself.
When you lose touch with yourself,
you lose yourself in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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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ner’는 ‘outer’의 상대어로 밖이 아닌 안의 뭔가를 집어내는 말입니다. 밖의 고요함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심산유곡의 암자에서 올려다 보는 밤하늘 속의 고요함. 텅 빈 성당에 홀로 앉아 가만히 느끼는 사위의 고요. 그런 게 밖의 고요함이라면, 안의 고요함이란 밖의 소음에 관계없이 그저 가만히 있는 내면의 평정심을 말합니다. 아무리 고요한 절간에 앉아있다 해도 내면의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다면 이미 고요함이 아닙니다. 아무리 시끄러운 장터에서라도 내면의 고요가 늘 함께하고 있다면 ‘Inner Stillness’가 견고하다 할 수 있겠죠.
참 스승은 내면의 고요를 견지하도록 이끄는 분입니다. 그렇게 안의 고요함을 견지하다 보면 그 고요를 지켜보는 맑은 존재가 점점 더 맑아집니다. 내면의 고요를 느끼고 알고 그리고 늘 지키는 걸 따로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칠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따로 정해놓고 수행으로 하지 말고, 지금 당장 바로 이 자리에서 고요함으로 이끄는 게 진정한 스승의 가르침입니다.
자상한 스승 에크하르트 톨레 [Eckhart Tolle]는 ‘lose touch with’라는 아주 평범한 일상적 표현으로 정곡을 찌르고 있습니다. 과녁의 바로 한 복판을 멋지게 관통하고 있습니다. 중언부언 사족을 달지 않고 쉽게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저 ‘lose’가 아닙니다. ‘lose touch with’입니다. ‘잃다’가 아니라 ‘연락이 끊기다’입니다. 소식이 끊겼다는 건, 이미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연락이 두절될 수는 없습니다. 알고 있던 사람이기에 소식이 끊겼다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Inner Stillness’ [내면의 고요함]도 이미 잘 알고 있던 상태임을 전제로 하고 있음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만큼 참 스승의 메시지는 한 마디 한 마디 깊은 뜻이 배어있어 오직 준비된 제자만이 행간을 읽어 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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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you lose touch with inner stillness,
you lose touch with yourself.
When you lose touch with yourself,
you lose yourself in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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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 태어나기 전, 그리고 그 이전 이후 내내 알고 있었던 내 안의 고요. 그 고요함은 우리 모두의 본질이라 합니다. “Stillness is your essential nature!”
지금 이 글을 읽고 그 내용이 생각으로 접수되는 그 내면의 공간과 인식, 그게 바로 고요함의 본체라 합니다. 그 고요한 ‘알고 있음’이 없다면 인식도 생각도 또 이 세상 모든 게 존재하지 못합니다. 내가 바로 사람의 모습을 한 그 ‘알고 있음’에 다름 아닙니다. “You are that awareness, disguised as a person.”
내 본성인 내면의 고요함과 자주 연락을 취해야 합니다. ‘Inner Stillness’와의 연락이 뜸해지면 결국 세상 속에 나를 잃게 됩니다. 간밤에 꿈을 꾸고 나서, 꿈을 꾼 사실도 꿈 내용도 모르고 사는 게 바로 세상 속에서 나를 잃고 사는 모습입니다. 투명한데 불투명하니 허망한 모습입니다.
내 안의 고요함과 열심히 연락을 주고 받다 보면, 세상을 살되 세상 속에 빠지지 않게 된다는 참 스승의 말씀을 새기며 밝은 하루를 엽니다.
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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