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의 뒤를 따라다닌지도 어언 35년. 부시의 참모중에서도 끝까지 그의 몸종(?)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칼 로브. 그는 자신이 정기적으로 쓰고있는 월스트릿 저널 칼럼(12월 26일)에서 ‘부시는 책벌레’였다고 밝혔다.
로브의 글에 의하면 둘은 2006년부터 책읽기 내기를 시작, 지금까지 해오고 있으며 2006년 한해동안 부시는 95권, 로브는 11권을 읽었다고 한다. 그가 읽은 책들은 대통령 전기작가 도리스 커언스 굿윈의 ‘Teams of Rival’, 퓰리처 수상작가 데이비드 할빌스탐의 ‘The Coldest Winter’ 등 다수의 서적들이 정독을 해야하는 높은 수준의 책들이다.
2007년 부시는 51권, 로브는 76권을, 2008년에는 부시 약 40권, 로브는 64권을 읽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 역사, 시사, 문학, 전기 등 각 분야의 우수작품을 읽었다는 그가 지난 8년 동안 펼쳐온 정책을 보면 그가 책벌레였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스테판 해들리 안보담당 보좌관이 말한 대로 부시는 길게 읽는 것을 싫어하니까 대통령 브리핑 자료로 축약해 읽은 것은 아닌가 싶은 의심도 든다.
예일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하버드에서 MBA를 이수한 조지 부시 대통령은 매주 평균 한두권의 책, 그것도 각 분야의 전문 서적을 읽었다고 하니 대체 그 책들의 가르침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좋은 대학과 유수한 대학원을 나왔고 또 좋은 책을 읽었다고 하나 그의 행동을 보면 마치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의 종말은 안타깝다. 이제 백악관을 떠나면 그를 좋게 기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심중에 한(?)을 품고 있는 사람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을 것이다.
만약 그가 대권에 올라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래 전 그가 심복 칼 로브를 만났을 때부터 이미 그의 정치 운명은 180도 방향으로 급회전 하고 있었다.
유타주 대학시절부터 공화당 선거판에 뛰어든 선거꾼 로브는 당시 그 누구도 도전할 수 없다던 떠오르는 해, 텍사스 주지사 앤 리차드슨을 상대로 그녀를 이길 수 있는 대책을 부시에게 전수하고 있었다.
텍사스주 미 연방 하원선거에서도 쉽게 고배를 마셨던 부시가 난공불락의 아성이라 불리던 리차드슨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그의 아버지도 예상조차 하지 못한 이변이었다.
리차드슨을 꺾기 위해 로브가 내민 정치술수는 ‘51%의 솔루션’이다. 51%만 이기면 그것으로 승부는 끝. 나머지는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선거 전략을 이용해서 선거의 쟁점 정치 공약보다는 상대방의 가장 약한 곳을 공격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2004년 대선전 당시 월남전 참전용사였던 존 캐리 상원의원을 적군의 포화속에 부하들을 버려둔 비겁한 사나이라고 허위 공격해 그의 진영을 무너뜨린 것이 좋은 본보기이다. 부시 자신은 월남전을 피해 텍사스 ‘방위’로 빠져나가고, 게다가 수개월간 종적을 감추지 않았던가.
이처럼 떳떳하지 못한 그의 대권승리에는 바로 그의 심복 칼 로브가 도사리고 있다.
칼 로브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부시는 국민의 ‘선한 종’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오랫동안 조용한 가운데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칼로브가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부시가 책을 즐겨 읽는다’고 주장할 수록 그 둘에 대한 신뢰는 점점 더 줄어들게 된다. 무대는 이미 막을 내렸는데 청중이 남아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주인공이 아직 죽지 않았다’고 계속 떠벌리고 있는 것이다. 청중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인가?
막이 내리고 불이 켜지면 겸손한 자세로 끝까지 지켜봐 주어 고맙다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내려가야 할 것이다. 칼로브와 만난 부시의 운명, 그의 종말은 참으로 안타깝다.
아마 모르긴 해도 가장 가슴이 아플 사람은 그의 아버지 조지 허버트 부시 전직 대통령일 것이다. 아들은 그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이제까지 쌓아온 가문 대대의 공든 탑이 소리없이 무너지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확실하게 보고 있을 것이다. 부시의 종말은 그 만의 소유물은 아니었다. 우리도 원치 않는 종말의 동반자(?)였었다.
(wonyi5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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