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한 공화당 연방상원의원 자택의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전 버락 오바마입니다” 누가 장난질이야, 그 의원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전화벨이 다시 울리고 전화선 저쪽에서 같은 음성이 들려오자 수화기는 다시 꽝! 상대가 진짜 오바마인 것을 확인하고 미안해 쩔쩔맨 것은 세 번째 통화에서였다. 그런데 “민주당 대통령 당선자가 내게 개인적으로 전화를 하다니요, 전혀 예상 못한 뜻밖의 일이었거든요”라며 기분 좋게 놀랐던 경험담을 털어놓은 공화당 의원은 그 혼자가 아니었다.
부시-체니 공화당 백악관이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은 과제중 하나는 대통령 권한 확대였다. 1970년대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계기로 전쟁권한법, 예산개혁법, 해외정보감시법등이 줄줄이 입법화되며 대폭 축소되어온 대통령 권한을 회복시키기 위해 부시는 행정명령과 수정법안 등을 통해 의회 권한 축소를 끊임없이 시도했고 또 상당부분 실현시켰다. 비효율적 기관인 의회에 많은 권한을 주는 것은 위험하다고 믿었던 부시 백악관은 자연히 의회를 도외시했다. 민주당 의원들만 무시한 게 아니었다. 백악관의 부속기관처럼 충성했던 공화당주도 의회까지 우습게보고 소홀히 대했다. 이같은 부시의 8년을 지내온 공화당 의원들에게 오바마의 정성어린(?) 대우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지난 주말 워싱턴에 입성한 오바마가 가장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의회와의 밀월이다. 그는 일찍부터 상원 중진 조 바이든을 러닝메이트로 택했고 백악관 스탭과 내각의 상당부분을 연방의원출신으로 채웠으며 당선 후에도 의회지도부와 정기 회동을 가지며 친의회 의지를 과시했다. 자신의 한마디를 지상명령으로 생각한 대통령이 적지 않았지만 ‘워싱턴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으며 의회는 엄청난 장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상원에서 백악관으로 직행하는 오바마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프랭클린 루즈벨트이후 오바마만큼 의회의 절대적 협조가 시급한 위기 속에 취임하는 대통령도 없었기 때문이다.
6일 개원한 제111회 연방의회의 첫날 분위기는 대체로 화창했다. 상하원 양당대표들이 한목소리로 ‘초당적 협력’을 다짐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오바마가 간절히 원하는 경기부양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강조했고 공화당 상하원 원내대표들도 오바마의 진지한 노력에 신뢰를 표하며 “새 대통령과 함께 일할 것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민주당 다수 의회와 출범한다고, 민주당 대통령의 순항을 자신하기는 아직 이르다. “난 오바마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이라면서 “민주당은 오바마의 고무도장이 아니다”라고 못박은 해리 리드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경고가 녹록치 않은 앞날을 예보한다.
개원 하루가 지나기 전에 삐걱대는 소리도 흘러나왔다. 오바마팀이 리언 파네타 CIA국장 지명을 상원정보위와 미리 상의하지 않았다고 민주당 지도부가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표시한 것. 보좌관들의 백배사죄에 이어 오바마까지 다이앤 파인스타인 정보위원장과 접촉, 파네타 지명의 배경을 설명하는 것으로 사태는 진정되었다. 그러나 대통령과 의회는 정책에 대한 이견 뿐 아니라 사소한 매너에 의해서도 냉각될 수 있는 아슬아슬한 관계임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다. 카터의 보좌관이 당시 팁 오닐 하원의장의 취임축제 티켓 요청을 무시했고 클린턴의 헬스케어개혁팀이 민주당 지도부의 사전자문을 구하지 않는 등 의회에 대한 에티켓에 소홀한 탓으로 두 대통령의 초기 행정이 얼마나 고달팠는가는 유명한 얘기다.
물론 근본적인 것은 대통령과 의회의 세상을 보는 시각의 차이다. 대통령의 시각은 전 국민, 전 세계를 포괄하지만 의원들은 다음 선거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선거구 우선으로 지엽적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시각 차이를 좁히며 상호 협력을 촉구하는 것이 아이러니칼하게도 현재 미국민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는 경제위기다. 의원들의 2010년 선거의 당락결과도, 오바마 행정부의 중간성적표도 단 하나의 절대적 이슈인 경제회생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젠 탓할 부시도 사라질 테니 모든 책임을 져야할 민주당 지도부는 오바마의 인기에 편승해 ‘생산적 의회’를 정착시켜야 할 부담이 커졌고 공화당 역시 이 위기의 시대에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보다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책임있는 정당의 자세를 보여야 하는 입장이다. 의회의 고질적 생리인 지역이기주의와 양극적 당파성이 언제부터 오바마의 발목을 잡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경제위기가 그의 어젠다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정치자산이 바닥나기 전에 대의회 관계를 정립해야 할 오바마의 과제는 산 넘어 산이다. 초당적 협력을 약속해온 그의 진의를 계속 확인하려는 공화당 의원들도 돌보아야 하고 50명에 달하는 민주당내 보수파 ‘블루 독’ 의원들에게 ‘왜 1조달러 적자를 감수하며 사상최대의 정부지출을 해야만 하는가’, 경기부양책의 당위성도 설득해야 한다.
의회와의 밀월을 유지하려면 수위조절도 쉽지 않을 것이다. 독선적인 힘겨루기는 판 자체를 깰 수 있고, 무조건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다간 당장 약한 대통령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그의 균형잡힌 포용정치 능력을 시험할 첫 테스트의 결과가 5주 남짓이면 나오게 된다. 오바마 내각의 인사청문회는 오늘부터 시작되지만 경기부양법안의 마지막 표결은 2월 중순으로 잡혀있다.
민주당 의회가 지난 10여년 고된 야당생활을 겪으며 겸손하고 성숙해졌다면, 오바마가 카터-클린턴-부시의 실패에서 진정한 교훈을 얻었다면, 2009년 백악관과 의회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며 잃어버렸던 미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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