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eternal! / 삶은 영원하여라.
Death is NOT the opposite of life.
Life has no opposite.
The opposite of death is birth.
Life IS eternal.
죽음은 삶의 반대말이 아니다.
삶은 반대말이 없다.
죽음의 반대말은 태어남이다.
삶은 영원하다.
언어구사능력의 중추는 어휘력입니다.
모국어든 외국어든 ‘제대로’ 말하고 쓸 수 있으려면 기초단어에서
고급단어, 세련된 담화 그리고 전문적 토론에 이르기까지 여러 모습을 한
커뮤니케이션의 단단한 뿌리인 어휘력을 꾸준히 배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탄탄한 어휘력을 배양하는 오래된 학습방법 중 하나가 바로 비슷한 말
반대말 외우기입니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힌 우리말,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부단한
동의어/반대어 가르침 덕이기도 합니다. 하늘의 반대는? 땅이요. 여자의 반대는?
남자요. 어둠의 반대는? 빛이요. 동쪽의 반대는? 서쪽이요. 죽음의 반대는?
삶이요. 그렇게 별 생각 없이 ‘이분법’에 근거한 반대말들을 외우며 점점 모국어에 익숙해져 갑니다.
그런데, 삶의 지혜가 쌓여가며 그 반대말들이 ‘진짜’ 꼭 맞는 반대말들인지를 궁구하는 때가 자주 생깁니다. 끝도 없이 무한대로 펼쳐진 우주의 한 모습인 하늘이 어찌 이 지구라는 작은 별, 그것도 바다를 제외한 ‘땅’의 반대말이 될 수있단 말인가? 여자가 진짜 남자의 반대인가? 어둠은 그저 빛의 부재를 가리키는 말인데, 잠시 빛이 사라진 비 실존의 어둠이 과연 빛이란 실존의 반대가 될 수 있겠는가? 유럽 사람들이 동쪽이라 했던 아시아지역은 미국에서 보면 서쪽인데 과연 누가 동쪽 서쪽을 정할 수 있단 말인가?
알고 보니, 언어를 익히는 방편으로서의 반대말 공부가 자칫 그릇된 세계관을 심어 주는 데 크게 이바지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모든 고통은 바로 그릇된 ‘이분법[二分法]’때문이라 갈파해온 성인들의 가르침. ‘그 둘’을 지금 당장 모두 넘어서라는 ‘Nonduality’ [넌 듀얼~리티]의 지혜. 그렇게 둘 다 넘고 보면 결국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경계가 더욱 현묘해짐을 일깨워온 수 많은 선지식들. 진리의 요체는 선악과를 따 먹고 알게 된 분별심 이전의 순심[純心]으로 귀환하라는 메시지일 뿐입니다.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shall See God.”
Death is NOT the opposite of life.
Life has no opposite.
The opposite of death is birth.
Life IS eternal.
죽음은 삶의 반대말이 아니다.
삶은 반대말이 없다.
죽음의 반대말은 태어남이다.
삶은 영원하다.
모든 두려움의 뿌리는 죽음이라 합니다.
죽음 이전과 죽음 이후, 그리고 그 사이에 벌어지는 삶.
죽음이라는 양변 사이에 잠시 일렁이는 그림자 같은 신기루.
보일 듯 말 듯, 들릴 듯 말 듯, 눈가에 귓가에 스치듯 지나치는 그 아스라한 기억 속의 실존. 바로 그 실존의 기억이, ‘태어남’이란 거룩한 사건 속에 모조리 묻혀 버린다는 건 참으로 성스러운 코미디가 아니고 뭘까요?
음양, 천지, 남녀, 상하, 승속[僧俗]을 논하다 보면 결국 자기 꾀 속에 스스로 가라앉게 됩니다. 마음이 부리는 농간에 스스로 깊게 빠져 있으면서도 스스로 마음을 보고 있다는 착각에 마음을 놓고 삽니다. 마음은 늘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둡니다. 그리고, 의식은 마음이 쓰는 마음을 지켜 봅니다. 아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놉니다. 하지만, 아이를 보는 어머니는 장난감 대신 아이를 보고 있습니다.
장난감에 갚게 빠져 있는 아이를 보는 그 의식은 죽음을 모릅니다. 아니,
죽음의 반대입니다. 반대말 무리의 이분법을 떠난 바로 그 진정한 반대,
초월적 긍정을 위한 ‘죽음의 반대말’은 ‘삶’이 아니라 ‘태어남’이란 것을 그 의식은 철저한 영감으로 알고 있습니다. 방금 태어났을 때의 그 몸/마음은 이미 죽은 지 오래입니다. 어머니 자궁 밖으로 나오던 기억도 거의 기억상실증 환자 수준의 망각 속에 있을 뿐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기억들, 중고등학생 시절 느낌들, 대학시절 내 몸/마음,
삼십 대 겁 없던 야망의 시절, 그리고 이제 인생의 가을을 지나는 오십
지천명의 나, 이 모든 영겁의 변화무쌍함은 결국 나라는 한 개성의
부침[浮沈]을 나타낼 뿐. 그 어느 구석에서도, ‘나타나기 전’ 나의 본래 모습을 조금도 징표 하지 않음입니다.
Death is NOT the opposite of life.
Life has no opposite.
The opposite of death is birth.
Life IS eternal.
죽음은 삶의 반대말이 아니다.
삶은 반대말이 없다.
죽음의 반대말은 태어남이다.
삶은 영원하다.
오기 전 그리고 가고 난 후의 ‘그 나’는 과연 같은가 다른가?
아무리 참구해도 결코 다르지 않음이 확연해 보이는 나. 열 다섯
푸른 청년의 나와 삶의 가을을 지나는 단풍 속의 나가 결코 다르지 않은
나라면, ‘그 나’를 관통하는 실존의 정체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축복받은 이의 노래를 전하는 인도의 정신 바가바드 기타는 시간과
공간을 멋지게 관통하는 ‘참 나’의 실존을 신의 모습을 빌어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는 물 속에 들어있는 맛이요, 해와 달 속에 들어있는 빛이며, 거룩한 음절‘옴 [OM]’이요, 모든 소리 안의 진동이라.” 무소부재하며 전지전능하신 신두[神頭]의 속성이 모두 고스란히 참 나의 속성임을 반복 운율로 우리 모두에게 끈질기게 각인시키는 성전[聖典] 바가바드 기타. 신의 노래를 사람의 귀로 듣는 희열이 거의 터질 듯 감미롭기만 합니다.
반대말이 결코 없는 삶. 결코 죽음의 반대말이 아닌 거룩한 단어 삶!
결코 그침이 없는 영속과 영원의 지극한 실존, 삶! 굳이 ‘영생’이란
유치한 단어를 들먹이기도 미안한 그토록 잔잔히 흐르는 영원의 강, 삶!
바로 그 ‘삶’의 주인공인 우리 모두 하나하나의 흐름 - 그게 바로
참 나임을 늘 잊지 않는 ‘일일시호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OM~
English for the Soul 지난 글들은 우리말 야후 블로그
http://kr.blog.yahoo.com/jh3choi [영어서원 백운재],
EFTS 폴더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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