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교육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특히 도심지 공립교육의 붕괴는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국내문제로 꼽힌다. 40년 전 미 고교생의 실력은 세계 최고였다. 지금은 24개 선진국 중 19위로 뒤처졌다. 수학은 선진 30개국 중 25위다. 아마 농구실력이 25위였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한 교육관계자는 개탄한다. 1995년만 해도 세계 1위였던 대학 진학률 역시 지금은 14위로 밀려나 있다.
각국의 교육은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적 경쟁에 대비,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미국의 공립교육은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이다.
온 국민이 희망을 걸고 있는 버락 오바마 새 대통령은 교육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기대에 차서 대답한다 : “Yes, he can!(예, 그는 할 수 있습니다)”
오바마 자신도 교육을 경제대책의 일환으로 지적하며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천명했다. “장기적으로 일자리 창출과 성장으로 가는 길은 우리 아이들의 교실에서 시작됩니다” 2주전 안 던컨 시카고 교육감을 새 행정부의 교육장관으로 지명하는 자리에서였다.
그런데 오바마가 개혁을 정말 실천할까? 이번엔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낙후된 도심지 학교에 우수교사를 대거 채용하고, 차터스쿨을 곳곳에 오픈하고, 저소득층 부모에게도 학교선택권이 가능한 바우처 시스템(주정부의 공립학교 학생 1인당 보조금을 각 학부모에게 증서(voucher)로 지급하여 사립학교 학비로도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까지 도입하면 아이들의 성적은 분명히 올라간다.
공화당과 달리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공립교육을 열렬히 지지해왔다. 가난한 아이들의 미래를 열어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은 언제나 당 정강의 중심에 있었지만 이를 정책으로 수립하는 과감한 개혁은 거의 실현되지 못했다.
문제는 교육계, 민주당내 교육계의 내분에 있다. 현재 교육계엔 개혁파와 기성파, 두 개의 진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교육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다. 양쪽의 주장엔 다 일리가 있다.
빈민층 소수계 아이들도 헌신적인 우수한 교사에게 제대로 교육을 받으면 부유층 백인 아이들 못지않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개혁파들의 소신이다. 교육을 하는 어른들이 아닌 교육을 받는 아이들을 우선으로 하도록 교육시스템의 체질을 바꿔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선 성적 향상에 따라 교사의 임금을 정하는 성과급 시행과 무능교사 해고, 정년제 포기는 필수라야 한다. 점수가 올라간 학생들에게 돈을 주는 포상제까지 동원하며 성적향상을 실현중인 한인2세 미셸 리 워싱턴DC 교육감과 조엘 클라인 뉴욕 교육감등이 개혁파의 선두에 서 있다.
기성그룹의 중심은 노조다. 공립교육 살리기엔 학교만이 아니라 전반적 사회경제 정책이 병행되어야한다는 이들은 조기교육, 방과후 프로, 서머 프로, 부모교육 프로 등을 위해 더 많은 예산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교사의 성과급과 무능교사 처벌, 정년제 포기 등 노조원 이익에 위배되는 정책엔 결사반대다.
오바마는 개혁성향이 강하다.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담대한 희망’ 등 그의 두 저서에도 낙후된 공립교육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과감한 개혁실천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어느 민주당 정치인이 300만명 회원, 막대한 자금력, 적극적 운동가등 막강 파워를 과시하며 민주당의 지지기반을 이루고 있는 교사노조와 정면으로 맞서려 할 것인가. 당선 다음날부터 재선 캠페인을 시작했을 오바마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선거 중엔 교육을 포함한 모든 이슈가 경제위기에 밀려나면서 오바마는 ‘교육전쟁’에 말려들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입장을 표명해야 할 때가 왔고 그래서 교육장관 지명은 재무나 국무 못지않게 관심을 끌었다.
던컨 지명은 일단 A+로 평가받았다. 반대의견을 경청할 줄 아는 그는 양측에서 존경받는 개혁가다. 7년간 시카고 교육감 재임 중 노조와의 큰 갈등 없이 필요한 개혁을 실천하며 학생들의 평균성적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오는 13일 연방상원 인준청문회가 예정되어있는 던컨의 앞길은 그리 순탄치만은 못할 전망이다. 이념을 넘어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오바마의 통치철학과 코드도 맞고 오바마와의 개인적 친분이 교육이슈 선결처리에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교육전쟁도 중동전쟁 못지않게 양측의 이견을 좁히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 개혁은 지금이 적기다. 개혁을 선호하는 민주당 대통령 하에서 연방의회도 주정부도 민주당이 다수인 이번 기회를 놓치면 수십년을 다시 기다려야 할 지 모른다.
가난한 소수계 아이의 일생에서 교육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오바마 만큼 절실하게 체험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나와 같은 교육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그가 평소 강조해온 신념이다.
그가 이 신념을 실천에 옮긴다면 오바마의 대통령 임기는, 미국이 거듭 태어난 진정한 변화의 시대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또 미국의 내일을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가 될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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