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만나는 분들마다 너무 어렵다고 한다. 하기는 대공황 이래 가장 심한 경제 난국이라고 하니 모두 다 힘들 때이다. 이미 자포자기 해버린 사람들마저 보여서 분위기는 더욱 싸늘하다. 엊그제 지인과 통화를 하면서 서로의 힘든 상황을 넋두리 삼아 한참 동안 얘기했다. 그 친구가 끝나는 말에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지금 쓰러지면 안 돼, 버텨야 해. 끝까지 버티면 살 수 있어.”라고 자신에게 또 나에게도 격려를 주었다.
포기한다는 것은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버틸 여력이 없다는 것은 어찌 보면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눈앞의 세상이 절망으로 도배되어서 힘이 나지도 힘을 내고 싶지도 않다는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한에서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구나. 그러니까 나는 여기서 끝이다.” 이렇듯 영혼이 통째로 울리는 절망인 것이다.
하지만 성공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는 그들은 한결같이, 절망의 끝에서 희망의 싹이 트는 것을 경험했다고들 말한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가능할까. 삭막한 폐허 속에서 무엇을 건져 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는 논리적이면서 심리학적으로도 타당한 이야기이다. 내가 절망을 한다는 것은 현실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내 마음 속에서 추구하고 있었던 이상적인 상황에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반에 반만이라도 비슷하면 그런대로 봐 줄 텐데 하나도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되지 않으니 이토록 괴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았다는 사람들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원망만 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잘못된 그림을 그리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달은 사람들이다. 내가 지금까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일들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변하고, 반드시 쟁취해야 할 것에 대한 욕심을 놓아 버릴 때가 소위 희망의 싹이 튼다는 때이다.
사실 말로는 쉬운 얘기이지만 충격을 견디는 내성이 충분하지 않은 보통사람들이 자포자기의 순간에서 마음을 바꿔 먹는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아니 희망이 절멸한 그 상황으로 내동댕이쳐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래서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목표한 바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관리해가는 것이 우선이다. 너무 들뜨지도 그렇다고 낙담하지도 않는 희망과 절망의 중간 지점에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 또한 상당한 인내심과 꾸준함이 필요하니 결코 쉽지가 않은 일이다.
흔히들 인생을 등산에 비유한다. 누군가 인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는 것과 같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유명한 산악인 엄홍길씨는 “등반은 인내의 예술”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결국 인생 또한 인내의 예술인 셈이다. 나이가 들면서 (어르신들께는 실례가 되지만) 인생에서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인내가 무조건 참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하얗게 비워야 설산(히말라야)을 오를 수 있고, 또 설산을 오르다 보면 하얗게 됩니다. 오로지 정상이란 목표를 향한 일념 뿐 추호의 잡생각이나 욕심 같은 게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박에 사고로 이어지거든요.”라는 엄홍길씨의 산 증언에서 인내란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오직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렇다. 이렇게 힘이 드는 시기에 남들의 평가나 내가 이전에 가졌던 것들에 대한 미련, 과거에 행한 착오와 실수들에 대한 회한, 그리고 내일에 대한 걱정은 역경이라는 인생의 설산을 정복하는 데 있어서 분명 또 다른 사고를 부를지 모르는 잡념들이다. 과거로부터 배우되 후회는 하지 말라하지 않았던가.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버티자”라고 친구가 나에게 주는 격려 속에는 어마어마한 뜻이 담겨 있다는 걸 이제는 깨닫는다. 욕심과 잡념을 비운 채 마음먹은 바를 향해 하루하루 앞으로 나아가자는 말이다. “포기하지 말자. 비록 상황이 내 바라는 대로 되지 않더라도 화내지 말고, 낙담하지 말고, 계속 해보자.” 힘든 상황마다 이렇게 스스로를 격려한다면 어딘가에 매어 경직된 마음이 점점 더 부드러워지고, 매 상황에 한결 순응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매일 매일 신선한 자경구가 될 수 있도록 마음의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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