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신통치 않다. 쓸모가 없다. 거기다 볼 품이 없다. 스스로 덤을 줘 보고 싶어 이리 저리 굴려봐도 어느 한 구석도 취할 것이 없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짓느니 한 숨이다.
위령성월(천주교 가족들이 먼저 떠난 영혼, 연옥 영혼을 기억하는 한 달), 11월을 보내면서 ‘자식된 도리’를 생각해 본다. 효(孝)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걸음 걸음, 발자욱마다 불효다.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인공호홉기를 뽑는 일에 동의했어요.
병에 걸린 오골계의 맥풀린 똥구녕 같은/보름달이 떴어요.
회백색 분비물이 제 얼굴로 쏟아지고 있어요.
아버지 그거 아세요. 오늘이 성탄 전야라는 거/탄일종이 울리고 있어요.
끝으로, 제 남은 생의 모든 성탄절을 동봉하네요.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친전’- 박성우)
12월, 마무리하며 헤어져야 할 오늘 여기에 서서 ‘남편된 도리’를 되짚어 본다.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선도 안 보고 데려온다는 딸 부자집 셋째 딸. 호강은 고사하고, 이날 이때까지 편한 날이 없다. 내 나라에서 못 살고 떠나 온 ‘떠돌이 삶’이라 헛소리할 것인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누구는 말한다. 너만 잘났으면 어디에서도 잘 산다. 돈도 벌고 출세도 한다는 말이다. 하기야 미국땅은 이민자의 나라다. 모두가 같은 처지다.
성취의 차이는 자신의 능력일 뿐이다. 노예의 후손이 First Lady가 되고, 흑인 2세가 그것도 젊은 신참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미국땅이다. 참으로 기회의 나라다.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모두가 자기 탓이다. 참으로 내 탓이다. 지금 아내가 힘들다면 그것은 모두 내가 못난 탓이고, 내가 복없는 탓이다. 오직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이다.
‘아비된 도리’를 살펴 보면 더더욱 얼굴을 들 수 없다. 공부를 돌봐 주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한번 놀아주지도 못했다. 먹고 살기 바쁘단 핑계로 그냥 그렇게 못 본 척 했다고 하겠지만, 실은 ‘영어를 몰라’ 한마디 말도 일르고 깨우쳐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아쉽다. 자식에게 퍼붓는 시간과 정성과 열정과 돈이 바로 가장 값진 투자이고, 가장 확실한 농사인 걸 왜 그토록 몰랐을까. 내가 먼저 배워서라도 했어야 할 일인걸…
이것보다 더 가슴을 치고 발등을 찍을 노릇은 무능한 DNA를 물려 준 것이다. 자식들이 무슨 죄인가. 아비의 몹쓸 것만 물려 받는다면, 이 노릇을 어이할 것인가. 우둔한 두뇌다.
엇그제까지만 해도 내 머리(명석함)가 B+는 된다고 믿고 살었다. 초, 중,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했으니 그 쯤은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어쩌면 D와F 사이 어디쯤일 것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그냥 “낙제를 면하는 정도” 이거나 “턱걸이” 수준일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접고 나니, 마음은 온통 미안함 뿐이다. 거기에다 “게으름”이다. 타고난 나의 병이다. 움직이는 것보다 앉기를 좋아하고, 앉으면 졸린다. 시도 때도 없다. 단 1분이라도 좋다. 변명은 그럴 듯하다. 전쟁통에 못 먹고 자란 어린 시절 탓이라 중얼거린다. 그냥 봐달라는 투로 뒤척거린다. 책임져야 할 남편이고 아비인 “가장”이기를 잊은 듯 말이다. 참으로 가소로운 모습이고 안타까운 발자취다. 만약, 이 못된 것들을 보고 듣고 온 몸으로 배운 자식이라면 저를 어찌 탓하며 큰소리칠 것인가. 또 있다. 변할 줄을 모른다. 새 것을 싫어할 정도다. 새 것, 더 좋은 것을 찾어 나서는 ‘호기심이나 뚝심’은 어디에도 없다.
신부님 강론 테입 하나를 10여년, 성가는 테입은 20년 넘게, 지금도 한가지만 계속 듣고 다닌다. 책 종류는 말할 것도 없다. 읽고 또 읽고, 계속 읽는다. 그렇게 곰같이 “있는 그것만을” 밝힌다. 내 성정에 맞고, 내 입맛에 ‘딱’인 것만을 찾는 ‘멍청곰’이다.
그러나 그래도 한가지만은 고개를 들고, 말할 수 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하는 물음 속에서 큰 위로를 나누고 싶다. 이 ‘대물림’만은 꼭 지켜주기를 바란다. 결코 버릴 수 없는 소망이다. 비록 내 모습이 저토록 상처투성이 일지라도…
12/4/08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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