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짓는 미소가 매력적이네요. 일단 사장님 계서 보신 후 연락하겠습니다.”
3일 후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소식이 없다. 미소는 어릴 때 이민 와 이곳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살짝 미소를 지으면 왼쪽 뺨에 볼우물이 생겨 귀엽고 매력적이란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공부도 상위권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 미국 큰 보험회사에서 8년을 근무했다. 내년에 매니저가 될 것인데 직장을 그만 두고 나왔다. 그런데 뭐가 문제일까. 이혼한 것이 걸림돌이 될까?
“당신 오늘이 처음 아니지?”
“뭐가?”
“이런 것 말이야.”
“뭐?”
미소는 이불을 걷어내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 달콤한 초콜릿도 한번 맛보지 못하고 오늘까지 왔다. 그런데 뭐 먹어 봤다고. 미소는 주먹을 불끈 쥐면서 남편의 따귀를 때릴 것 같이 하다 그만 침대에서 내려왔다. 첫날밤 남편한데서 그런 말을 듣고 난 후 미소는 별을 볼 마음이 없었다. 일년간 사귈 때는 그런 낌새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미소의 남편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한 말을 했다. 좋은 말도 자꾸 들으면 싫증이 나는 법이다. 그런데 허구한 날 그런 말을 듣다보니 자신이 미쳐 버릴 것아 집을 나왔다. 미소의 남편은 수술을 받을 수도 없고, 약도 없는 불치의 병인 의처증이었다.
미소는 어떻게 남편을 치료하면서 살아 볼까하는 마음도 없잖아 있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집을 나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 생활하였다. 친정 집에서 집을 나온 것을 알고 다시 들어가라고 하였다. 한번 시집을 갔으면 그 집안의 귀신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미소는 같은 말을 매일 듣고 또 들었다. 사회 생활하면서 불신임을 받아도 힘드는 일인데 하물며 남편한테서 이런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은 고역 중 고역이었다. 미소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간단한 짐을 챙겨 뷰익 자동차에 싣고 제 이의 고향인 시애틀을 떠나 이곳으로 왔다. 불경기라 그런지 몇 군데 이력서를 넣었는데 연락이 없다. 만약 이번에도 연락이 안 오면 어디 가서 무엇이든 해야 할 형편이다. 미소는 회사로 확인해 보려고 전화기 쪽으로 가는데 벨이 울렸다.
“조미소씨? 무역회사 강상철입니다. 일단 월요일 출근 해보세요.”
기다리던 연락이 와 반가웠다. 그런데 말이 쉽게 이해가 안되었다.
“출근이면 출근이지 해보라니 말이 좀 이상하네요.”
“사장님은 서류를 봤지만 만나지는 않았잖습니까.”
“그러니까 면접을 본다는 말이군요?”
“사장님 까다로운 분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미소씨. 그 아름다운 미소微笑가 있지 않습니까.”
1.
미소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방긋이 웃음을 지어본다. 이 웃음이 효과를 볼 수 있을까. 미소는 사장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였다. 나이는 얼마나 되었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을까. 이런 회사를 운영하려고 하면 경제력과 그만한 인격에 맞는 생활을 하고 있겠지.
미소는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화장을 진하게 할까하다 그냥 간단히 하고 집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은 집에서 반 블록 거리에 있었다. 버스는 즉시 왔다. 몇 사람이 오르고 나중에 미소는 올랐다. 중간 창문가 자리엔 삼십대 후반쯤 된 동양 남자가 책을 펼쳐들고 있었다. 책에 눈길을 주고 있는 남자의 윤기 나는 머리는 짧게 잘라져 있다. 읽고 있는 책이 어떤 것일까 하고 앉으면서 봤을 때 그 남자와 눈길이 교환되었다. 미소는 무안해 남자에게 고개를 약간 숙여 보이고 바로 앉아 앞을 바라봤다. 미소는 전번 왔을 때 내리면서 봐둔 간판에 신경을 쓰고 있다.
미소가 결혼생활 할 때 친구들 말을 들어보니 다 행복하다고 했다. 그래서 미소는 자기만이 참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집을 나온 후 친구들을 만나 그들의 생활을 들어봤다. ‘야아, 숨이라도 크게 쉬면 폭발할까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산다.’ ‘내가 어쩌다 그런 인간하고 결혼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재혼이란 새로운 울타리를 만들어 살고 있는 가정이 의외로 많다는 것도 알았다. 미소는 이곳으로 오면서 한가지 마음에 새겨온 것이 있다. 앞으로 그 누구의 사랑도 받지 않고 주지도 않을 것을 다짐했다.
미소는 이제 직장만 되면 사춘기 때의 꿈인 시인의 길을 걷고 싶었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책을 벗삼아 자연 속을 거닐면서 시상을 떠올린 것을 활자로 만들고, 시냇물 흘러가듯이 살아가고 싶었다. 미소가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몸을 움직여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순간 미소의 눈길이 책으로 갔다. ‘아메리칸 버티고’란 활자가 찍혀 있었다. 남자는 책을 가방에 넣고 내릴 준비를 하였다. 버스가 정지하자 미소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차에서 내렸다. 시계를 보면서 사무실 있는 빌딩 쪽으로 발걸음을 빨리 하였다.
미소는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면서 이 건물 안에 어떤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나하는 호기심에서 고개를 옆으로 돌려다. 백인들과 금발의 미인들 속에 버스 안에서 본 그 남자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미소는 급히 안으로 들어가 입구 쪽에 섰다. 5 숫자를 눌렀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 자기들이 내릴 곳의 숫자를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올라가다 3층에서 멈추었다. 다시 올라갔다. 5층에서 멈추어 섰다. 미소는 다른 사람보다 먼저 내려 517호 문 앞에 섰다. 미소는 문을 열기 전 숨을 길게 내쉬었다. ‘사장 눈에 잘 보여야 할 텐데.’하고 눈을 뜨고 문고리를 잡으려고 할 때 누가 먼저 문을 열었다.
“들어가세요.”
미소가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그 남자였다.
“사장님! 어떻게 두 분이 같이 출근하십니까? 아주 보기 좋습니다.”
“뭐, 사장님?”
미소는 휘둥그래진 눈으로 두 남자를 번갈아 바라본다.
“서 있지 말고 일해요. 면접은 벌써 버스 안에서 끝냈습니다.”
사장은 싱긋 웃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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