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횡단철도 합작시공
’유니온 퍼시픽’ 오마하에서 서쪽으로
’센트럴 퍼시픽’ 새크라멘토서 동쪽으로
시대적 요청이자 ‘4대 철도왕’의 일생 일대의 소원이었던 대륙횡단 철도(transcontinental railroad)의 꿈은 1869년 5월10일 센트럴퍼시픽 레일로드(Central Pacific Railroad)가 새크라멘토로부터 동쪽을 향해서 부설(敷設) 한 노선과, 유니언 퍼시픽 레일로드Union Pacific Railroad)가 네브라스카의 오마하로부터 서향(西向)으로 시작한 노선이 유타주의 프로몬토리(Promontory) 산중에서 연결이 되면서 현실화 되었다. 횡단철도 완공 후 20세기 초까지 많은 지선이 부설되었는데, 당시 전 미국의 여객 운송의 90%가 기차에 의한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철도사업체를 철도국이라고 한다. 방송사도 방송국이고, 우편취급부서도 우편국이라고 한다. “국”으로 끝나는 업체가 모두 국영업체라는 사실도 누구나가 다 잘 알고 있는 대로이다. 제정 때 일본 사람들이 쓰던 말을 그대로 직역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철도 사업체는“국”으로 끝나는 국영기업체가 아니다. 우리는 철도라면 어김없이 국영이라는 연상을 하기 때문에, 미국 횡단 철도를 동쪽에서는 유니언이, 서쪽에서는 센트럴이 부설을 하였다던가, ‘4대 철도왕’이 주동이 되었다던가 하면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철도 사업은 많은 나라에서 국영기업으로 운영을 하지만 미국에서는 민간기업이 노선과 차량을 소유하며 운영을 한다. 운임도 한국과 같이 공공요금이 아니기 때문에 일률적이 아니다. 경쟁이 심한 구간의 요금은 경쟁 요금이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경우가 많고, 반대로 독점구간인 경우는 부당한 고가운임이 책정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증기기관차로 견인하는 객차가 처음 철도 위를 달린 해는 1827년이다. 1860년 초까지 여러 지방 철도회사들이 부설한 철로로 동해안부터 중부에 위치한 네브라스카주 오마하(Omaha)까지는 노선이 연결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함으로 당시 대륙횡단 철도는 오마하에서 시작되어 동향으로 부설이 되어야 했었다.
연방정부에서는 우편물송달, 군 병력수송 및 기타용도를 염두에 두고 1862년에“퍼시픽 철도법(Pacific Railway Act)”을 제정하였다. 미시시피강 서편으로부터 서쪽으로 태평양 연안까지를 연결하는 철로를 부설하는 회사에게는 필요한 용지를 무상으로 여유 있게 제공, 일부는 매각하여 자금으로 쓰도록 하고, 겸하여 현금 보조를 해주는데, 평지인 경우는 1마일당 16,000달러, 언덕인 노선은 마일당 32,000달러, 산지(山地)의 노선은 1마일당 48,000달러를 지급하도록 결정을 하였다.
이에 따라 오마하에서 기공(起工)을 할 회사로는 토마스 클락 두란트 박사(Dr. Thomas Clark Durant)라는 투자가가 주도하는 유니언 퍼시픽이 오마하에서 1862년 7월1일에 발족을 하였는데, 이 회사는 현재까지도 본사를 오마하에 두고 있으며 1급 철도회사로써 미국 중부와, 서부에 수없이 많은 노선을 갖고 있다.
새크라멘토를 부설의 기점으로 할 센트럴 퍼시픽은 ‘4대 철도왕’이 주동이 되어“퍼시픽 철도법(또는 태평양 철도법)”이 발표되기 이전인1861년 6월 28일에 새크라멘토에서 발족했다.
이 회사는 회사 설립과 동시에“퍼시픽 철도법”의 입법을 위한 로비스트를 워싱턴에 상주시키고, 행정부 요인과 관계국회의원들에게 당시까지 입법의 장해가 된 럭키 산맥(Rocky Mountain Range)과 시에라 산맥(Sierra Nevada Mountain Range) 통과 문제를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관철 시켰다. 이 문제는 당시까지 두 산맥이 하도 험하기 때문에 철도 부설은 불가능하다고 단정을 하고 입법을 더 이상 추진하지 못하게 한 장해요소였는데, 센트럴 퍼시픽에서 현지의 기술답사를 통해 가능성을 입증을 하였다는 것이다. 애당초 “태평양 철도법”은 양사가 이니시어티브를 쥐고 추진하던 법안인데, 회사 설립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현실화 했다.
결과적으로 이 법안은 5월 6일(1862)에 하원을, 6월 20일 상원을 통과해서 7월1일에 링컨 대통이 서명을 하게 되었다. 이 법이 발효되면서 양사에서는 정부에서 무상 제공한 용지와, 보조금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충분한 자금을 대여 받아 공사착공이 가능하게 되었다. 서쪽에서는 1863년 1월 8일에, 당시 주지사였던 리랜드 스탠포드(Leland Stanford)출석 하에 착공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이 시점을 기해 양사(兩社)는 지정된 거리를 누가 더 빨리 마치느냐는 시공기간을 놓고 맹렬한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유니온 퍼시픽철도의 길이는 1,087마일이며 오마하를 떠나 콜로라도주, 와이오밍주, 유타의 오그댄을 거쳐서 접선 목적지인 프로몬토리에 들어서게 되어 있었고, 센트럴의 철도 길이는 690마일로써,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시작하여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관통하여 네바다주에 들어서서 동주 프로몬토리에서 유니온을 만나게 되어 있었다. 접선 이전에 센트럴에서는 새크라멘토에서 동주 오크랜드까지 연장선을 부설하여 태평양 연안에서 종점의 스파이크(철도 침목에 박는 대못)를 박게 하였다.
유니온 퍼시픽의 경로는 대초원(the Great Plains)의 평지였기 때문에 시공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지만, 미국 원주민(아메리칸 인디안)의 거주지역에 다다르면 큰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미국 원주민들은 철도 건설은 백인에 의한 또 하나의 공격행위로 보고 시공을 방해했다. 그리고 특히 원주민의 중요한 식량인 “아메리칸 바이손(American Bison - 야생 소의 일종)이 시공 설비를 파괴하기 때문에 많이 사살을 하였는데, 원주민들은 이것도 원주민을 압박하는 행위로 보고 반발했다. 불시에 건설 노무자들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고 해서 철도 회사에서는 치안유지를 위해서 시공 현장에 저격수를 배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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