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매일 속에 다시 추수감사절을 맞으며 380여년전 미국을 개척한 청교도들을 생각한다. 1621년 그들에게도 감사는 쉽지 않았다. 미 대륙 북동쪽 끝 플리머스의 늦가을…지난겨울의 혹한 속에서 인구의 절반은 죽어갔으며 들판은 황폐하고 식량은 부족했다. 낯선 땅 원주민의 눈초리는 의심에 차 사나웠고 내일은 극히 불안해만 보였다. 그런데도 개척민들은 감사의 식탁을 마련했다. 아직 인구의 절반이 살아남았다는 것을, 황폐한 들에서 적게라도 추수할 수 있었다는 것을, 생존의 지혜를 나눠준 친절한 원주민도 곁에 있다는 것을 그들은 기억한 것이다.
미국의 첫 추수감사절은 이렇게 어두운 시절 끝에 얻은 적은 것에 대한 큰 감사로 시작되었고 ‘감사할 것이 없어 보이는 때의 감사’라는 이 날의 진정한 의미는 그 후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대공황과 세계대전 등 위기를 지날 때마다 어둠 속의 등불처럼 빛을 발하며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용기와 선의를 일깨워 왔다.
2008년 미 대륙 서남쪽 끝 남가주의 늦가을…낯선 땅에 적응하려는 우리의 오늘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실직과 차압과 주식폭락을 휘몰고 온 경제 폭풍에 수십년 땀 흘려 닦아 온 기반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속수무책 바라보고 있다.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다가올 내일이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 대부분의 우리다.
아직 ‘새로운 이민’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한인들의 가정에도 추수감사절의 전통은 제법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터키와 스터핑, 얌과 콘, 크랜베리 소스로 차려진 저녁식탁도 이젠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크리스, 로런스, 제이미슨…해마다 돌아가며 자기 이름이 붙여졌던 커다란 터키가 오븐 속에서 갈색으로 구워지는 동안 부산하게 집 안팎을 들락거리던 어린 소년들이 이제는 모두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났다. 언제나 식탁의 중앙에 계셨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지만 여린 새싹 같은 당신의 증손자들이 그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한국에선 추석이 며느리들의 공공의 적이라고 불린다지만 이곳의 추수감사절 준비도 결코 만만치는 않다. 이날에 맞추느라 모두가 급하게 움직인다. 급하게 장을 보고 급하게 음식을 준비하며, 급하게 비행기를 타고, 급하게 운전해 달려온다. 그러나 이 모든 부산스러움, 이 모든 수고를 감수하는 동안 우리는 모두를 이곳에 모여들게 한 힘을 이해하게 된다. 서로를 바라보며 아주 단단하게 신뢰와 사랑으로 묶여진 가족의 힘이다. ‘어려울 땐 아메바도 가족을 찾는다’고 한다. 얼마전 과학 학술지에 발표된 미국 베일러 의대의 연구 결과다. 단세포 생물인 아메바도 먹이가 모자랄 땐 혈연을 찾아 뭉쳐 협력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찬바람이 쌀쌀한 11월의 저녁 땅거미가 지고, 집집마다 창가에 노란 불빛이 따뜻하게 밝혀질 무렵, 식탁에 둘러앉으면 우리는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제각기 서로 다른 형편으로 살아온 지난 한해의 눈물과 웃음을 주고받으며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기대고 의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미국의 추수감사절 전통은 이렇게 가족에서 시작되지만 가족에서 끝나지는 않는다. 금년처럼 사방이 얼어붙은 어려운 시기엔 더욱 그렇다. 신문마다 내일의 빅 쇼핑을 알리느라 부산하고 11월의 네 번째 목요일을 ‘블랙 프라이데이 이브’로 부르자는 조크까지 나왔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미 전국의 푸드뱅크에 비상이 걸렸다. 곳곳이 똑같은 풍경이다. 식품저장소의 비어진 선반은 채워지지 못한채 무료배급을 받으려는 행렬은 날마다 길어지고 있다. 지난 주말 남가주 몬테벨로에 마련된 무료 식료품배급행사에도 5,000명이 몰렸다. 주최측 예상의 두배가 넘는 인파 중 상당수는 예년처럼 저소득층과 노인이 아니었다. 당황하고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생전 처음 무료배급에 손을 내민 ‘새로운 손님들’이었다. 경제위기 속에서 양산된 이른바 ‘중산층 빈민’들이다. 불과 몇 달전 배급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배급 줄에서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각급정부가 재정적자에 시달리면서 자선기관에 정부기금은 벌써 몇 년째 삭감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개인과 기업의 기부가 그 부족분을 채울 수 있었다. 금년엔 사정이 좀 다르다. 월스트릿이 거의 주저앉았으니, 대기업의 기부가 줄어들 것은 확실하다. 반대로 각 지역 배급소의 수요는 지난 6개월 사이 20~100%나 증가했다.
그러나 자선기관들은 절망하지는 않는다. 과부와 고아를 위해 돈을 모았던 식민지시대 개척민들에서 수백억달러 거의 전 재산을 내놓은 워렌 버핏에 이르기까지 미국인들이 수백년 지켜온 자선의 정신을 믿기 때문이다. 국민의 70% 가까이가 평소 기부를 하고 산다. 기부율이 투표율보다 높은 곳이 미국이다.
100마리의 터키를 트럭 한 가득 싣고 한 급식소를 찾아온 한 50대 부부는 기자의 인터뷰를 사양하면서 ‘재난과 역경이 엄습했을 땐 한마디만 기억하면 된다’고 말했다 :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이 한마디가 우리의 기억 속에도 새겨진다면 우리의 추수감사절 전통도 한결 든든하게 이어질 것이다. 해피 땡스기빙!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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