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욕 타임즈에서 뉴욕주 어느 아시안 밀집 지역을 예로 들며 아시안 학부모의 학교 활동 참여가 저조하여 학교 당국이 애를 태우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 기사를 읽으며 그 내용에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부모의 고충에 대한 배려없이 그저 “시험성적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이라는 표현으로 매도하는 듯해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나 또한 그 기사에서 지적하는 아시안 학부모로서 지난 이십년 가까운 세월을 이땅에서 ‘어떻게 학부모 노릇 제대로 해볼까’ 전전긍긍하며 지내왔기 때문일 것이다.
학부모로서의 대외적인 참여는 아이가 프리스쿨에 다니면서부터 시작된다. 프리스쿨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현장학습, 그리고 부모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중 행사들이 첫 경험이 된다. 내 경우에는 큰 아이가 세 살적 다닌 프리스쿨의 가족 모임이 기억난다. 각 가정마다 음식 한 가지씩을 준비해 모이는 저녁 모임이었는데, 무엇을 해갈까 고심하다 당시 한국에서 인기있다는 양념닭을 내 나름대로 조리해 한국에서 가져온 목기에 담아 정성껏 준비해갔었다. 그후에도 늘 느꼈던 것이지만, 대부분의 백인 부모들은 그런 모임에 간단히 사올 수 있는 음식들을 가져와 하루 종일 신경쓴 내 자신이 무색해지곤 했었다. 그러나 그 수고가 헛되지 않은 것이, 당연히 눈에 띄는 그 음식에 관심을 보이는 부모들이 있어 음식에 대한 평과 조리법을 묻는 질문으로 다른 부모들과 대화가 시작된다. 그 당시에는 그런 질문조차 부담스러웠는데, 그렇게 해서 알게 된 부모가 후일 아이를 집에 초대하고 그후로도 모임마다 아는 사이로 든든했던 경험이 있다.
아이가 다섯살이 되며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학부모로서의 역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먼저 새 학년초에 있는 ‘Back to School Night’에서 담임 교사와 다른 학부모들을 만나게 되고 일년간 여러 면으로 학급을 도울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 년에 몇 차례 있는 현장학습마다 학생수에 비례해 몇 명의 부모가 동행해야 하는 것을 비롯해서 교사의 보조역할, 교실 꾸미기, 등하교시에 건널목 지킴이, 그리고 사무실에서 복사하는 일 등의 잡무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본 몇몇 백인 부모들은 학교에서 거의 매일 보이다시피 하여 교사인 줄 알았던 경우도 있었다. 나도 해마다 여러 모양으로 참여하려고 애를 썼지만 사실 마음에 부담 백배요, 가능한 한 말이 필요없는 일거리를 찾느라 더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맡아 하며 후회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자기 학교에 와서 돕는 것을 소리없이 반겼고 그 어깨에 힘이 들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시안이 거의 없는 곳에서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캘리포니아로 오니 사실 누가 소수계인지 뒤바뀐 형국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의 행사나 PTA는 백인 부모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쿠퍼티노의 Monta Vista High School에는 한국어머니회가 십여년전에 결성되어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에서 나서 자란 아이들과 한국에서 온 지 몇 년 안된 아이들로 그 필요는 다양하지만 매달 한번씩의 모임을 통해 여러 면의 정보를 나누고 학교와의 관계를 돈독히 해가고 있다. 매년 교장, 교감 선생님들을 모임에 초대해 학교 소식을 가까이서 듣고 건의사항을 전하며 학교를 도울 방법을 찾아간다. 요근래 몇년간은 학교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를 가정에 발송하는 일을 한국어머니회에서 맡아 해오고 있는데, 학교측에서 무척 고마워할 뿐만 아니라 어머니들에게도 함께 학교일에 참여하는 기회가 되어 활력이 되고 있다. 또한 봄학기에 한 차례 전 교직원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함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는데 한국음식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한국 학부모라는 단체의 입지를 세우는 기회로 이어져가고 있다. 이처럼 한국어머니회가 엄마들끼리의 모임에서 학교와의 유기적인 관계로 그 역할을 넓혀갈 수 있었던 것은 이민1.5세인 어머니의 역할이 큰 몫을 하였고 또 각자가 당장의 필요만을 채우려 하지 않고 앞으로를 위해 함께 수고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모여져서 가능한 일이었다. 몇 년간 그 모임을 통해 경험한 바로는 그런 모든 수고가 모두에게 나름대로 도움이 됨을 보아 왔다. 그래서 현재 학부모인 분들과 예비 학부모들께 감히 제안해본다. 혼자로도 좋으나 함께여서 더 좋음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