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동생 내외가 나의 생일을 축하 한다고 하와이 단체 관광을 보내줬다. 같은 투어를 하는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도 좋은 경험이 되었다. 개별로 가는 여행과는 달라 자칫 일행을 잘못 만나 여행을 망치는 수도 있다. 하지만 성격이 좋고 재미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관광은 좋은 친구도 얻게 돼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되곤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과 여행을 하게 될까 좀 궁금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공항으로 나가니 만나기로 한 장소에 신혼부부 한 쌍이 먼저 와 있었다.
신랑이 나이가 많아 보이고 좀 마른 편이었다. 신부는 다소곳이 말없이 앉아 있는 것이 외모도 별로 탓할 곳이 없는 여인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수심이 있어 보이며 가련해 보였다. 신혼여행 같은데 별로 기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공항에 도착해서 본 그곳에 풀로 붙여놓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신랑은 열심히 신부를 들여다보고 뭔가 설득시키는 듯한 모습으로 진지하게 얘기를 했다. 신부는 간혹 고개만 아래위로 힘없이 흔들어 보일 뿐 웃음도 볼 수 없었고 말도 들리지 않았다.
후에 도착한 B 신혼부부는 활기가 넘쳤다. 신혼 냄새가 향긋하다 못해 불긋불긋 피어올랐다. 그들은 노상 머리를 맞대고 엉덩이를 어디다 붙이지 못한다. 입속에선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오물오물 씹으며 어린아이들 같이 장난을 치면서 마냥 즐거워했다. 신랑은 키가 크고 외모가 훤칠한데다 성격도 좋아 보였다. 신부도 그에 어울리게 귀엽고, 새아기 냄새가 풋풋하게 풍겼다. 앞서 온 A 쌍보다 나이도 어려 보이고 외모도 세련된 한 쌍이었다. 화기애애한 혼인잔치를 치렀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두 쌍의 신혼부부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저편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한 가족이 유쾌한 잡담을 나누며 아들 둘이 서로 치고 밀고 아빠와 장난을 치며 걸어오고 있었다. 뒤에서 흐뭇한 미소로 따라오는 엄마는 보통 키에 튼튼한 남편의 울타리 안에서 가정을 행복하게 이끌 것 같은 현모양처 형의 고운 여인이었다. 성큼 우리 앞으로 다가온 애들 아버지는 “일행이시죠? 잘 부탁드립니다.”하고 꾸벅 절을 했다. 아주 마음에 드는 호남이었다. 큰아들은 중학생 정도, 작은 아들은 두서너 살 아래로 보였다. 부모의 따뜻한 보호를 받고 성장한 아이들의 냄새가 풍겨 왔다. 그들 아버지는 또 다른 동행인 듯한 사람들을 잘도 알아보고 찾아다니며 악수를 청하고 난 후 돌아와서 아들의 머리를 툭 치고 장난을 쳤다. 키는 보통이었으나 믿음직한 가장으로 성품이 털털하게 보여 나는 점수를 아주 후하게 주었다.
이렇게 만남을 시작한 일행들은 하와이 여행이 끝나가도록 그들이 내게 준 첫인상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다행히 모두 점잖고 남에게 폐를 끼치기 않는 예의 바른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우리 부부는 여행을 편안하고 즐겁게 할 수 있었다.
B부부는 하와이 시내관광을 다니면서도 들리는 곳마다 티셔츠 색을 바꿨다. 귀가 길에 하와이 공항으로 나가는 셔틀 버스 안에도 B 부부의 서핑보드가 꿀 같던 허니문을 대변하듯 귀엽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A부부는 돌아오는 하와이 공항에서도 조용히 한구석에 앉아 있었다. 대화에 소질이 없는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어 무심히 “선택 관광은 어디로 갔었어요?”하고 물었더니 “호텔 풀 가에 앉아 있다 그 주변만 걸어 다녔어요”한다. 나는 무척 후회했다.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었나 싶어 당황했었다.
유쾌한 호남아 가족은 이동할 때 우리의 짐도 들어주고 선상의 디너쇼도 함께 하며 폴리네시안-쇼를 배경으로 한 사진도 함께 찍었다. 공항에서 우리 일행은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나중에 연락하자고 주소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함께 여행지에서 동고동락하며 보낸 그 사람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딘지 모르게 그늘이 있어 보이던 A 부부가 내가 한 군걱정과 달리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B 부부와 호남아 가족도 세파 속에서도 그 유쾌함을 잃지 않기 바란다. 하나우마 배이의 투명한 물처럼 맑은 마음을 가지고, 거기 헤엄을 치던 물고기들처럼 늘 여유롭고 싱싱하기를 기원한다.
내가 그 젊은 부부들을 특별히 못 잊어하는 까닭이 있다. 나도 신혼여행을 둘째 딸이 네 살이 되었을 때 딸 둘을 데리고 하와이로 갔었다. 우리 부부는 둘이 다 재학 중에 결혼을 해, 식을 올리던 날도 수업을 마치고 식장으로 달려갔고 다음날도 수업을 받으러 가야할 정도로 바쁜 생활을 했었기 때문이다. 함께 여행한 사람들 속에서, 나 역시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간 내 젊은 날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내 두 딸들 또래의 젊은 부부를 보면서 내 딸들의 꿈과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하와이 여행을 함께 한 그들의 미래가 남이 아닌 내 자신과 딸들의 삶처럼 가깝게 여겨졌다.
인생의 긴 여행에는 늘 바람이 불고 비가 오기 마련이다. 바다에는 바람이 불 것이고 파도가 칠 것이다. 그러나 순탄하기만 한 여행보다는 그것을 극복한 후의 희열은 그들 내외의 사이를 좁혀 주고 그들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긴 인생의 여정을 앞둔 그들 부부들의 여행이 내 살붙이의 일처럼 걱정이 된다. 그들처럼 시작한 내 여행도 어떠했는지, 과연 내 생각처럼 잘 엮어졌는지 생각을 더듬어본다.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남편의 콧노래는 이태리 민요로부터 일본노래, 하와이안 웨딩 송까지 세계 일주를 하고 있다. 책상 위에 얹힌 유리에 비친 내 입가의 주름이 눈에 들어온다. 딸에게 아빠 쪽을 향해 윙크를 하며 “My beau is singing again!” 하니 딸은 엄지를 세우며 조용히 엄마의 뺨에 입 맞춰 준다. 백발이 된 잠든 남편 얼굴을 보며 ”더 잘 해줘야지!”가슴속으로 또 다짐한다. 나는 세상을 떠날 때“내 결혼은 행복했으며 인내와 긍지로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내 날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 “너희 어머니와 결혼해서 행복했다”고 딸들에게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박복수
미주한국기독교문인협회 이사장, 재미방송인협회 회장 역임. 청암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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