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당선이 미국을 변화시켰다기보다는 미국이 변했기 때문에 오바마가 당선된 것이다” - 전 세계가 동감하는 금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의 이 같은 지적에 아직도 고개를 돌리는 집단이 있다. 공화당내 극우 보수그룹이다.
백악관과 연방 상하양원을 모두 차지한 민주당의 압승이 휩쓸고 지나간 요즘 공화당은 뼈아픈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다. 선거 직후부터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규모로 잇달아 열리는 모임은 자성의 대책회의로 시작되었다가 패자들의 책임전가 공방전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참패의 원인을 분석하여 책임소재를 짚어보고 재기를 위한 진로를 결정하자니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치열한 논쟁이 당 내부의 극단적 분열을 초래하면서 다투는 소리가 담장너머까지 소란스럽다.
2주전 버지니아에서 열린 극우보수파들의 전략회의에서도, 지난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공화당 주지사협의회에서도 공화당 리더들이 전원 동의하는 것은 한가지다 : 위기에 빠졌다, 재기를 위한 로드맵이 시급하다. 그러나 동의하는 것은 거기까지다.
원인과 대책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크게 두 갈래로 맞서고 있다. 보수파와 중도파의 대립이고 전통파와 개혁파의 반목이다.
극우보수파는 금년 참패의 원인은 인기 없는 부시, 김 빠진 매케인, 경제위기 등 ‘특수한 상황’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공화당은 더 힘든 위기도 견디어 냈다, 워터게이트 직후엔 공화당이 문닫을 것이라는 루머 속에 당명개정을 위한 태스크포스까지 구성했었다, 지금은 최악도 아니다”라고 이들은 지적한다.
‘차라리 잘 됐다, 이 기회에 얼치기 중도파를 정리하고 강력한 보수이슈를 적극 추진하며 전통적인 확실한 보수정당으로 재정비하자. 민주당이 이겼다 해서 유권자가 좌로 기울거나 공화당의 보수철학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라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젊은 공화당 개혁파들의 시각은 다르다. ‘패인은 부시-매케인-경제위기만이 아니다, 보다 본질적으로 당 자체에 문제가 있다.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미 국민들의 생활이슈를 파악하지 못했다, 낙태나 동성애가 아닌 일자리와 헬스케어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옛날로 돌아가자’는 전통파들의 생각은 바뀌어야 한다. 미국은 변하고 있다, 이 변화에 동참하지 않으면 공화당은 영원히 소수당으로 전락할 것이다’라고 이들은 경고한다.
미네소타의 팀 폴렌티, 유타주의 존 헌츠먼 등 40대 주지사들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들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미국의 인구변화다. 소수계 유권자의 급증 추세다. 1980년 전체유권자의 89%였던 백인의 비율은 금년엔 74%로 줄어들었다. 그동안 히스패닉과 아시안 유권자는 배 이상의 증가를 보이며 금년엔 흑인과 합해 전체의 23%를 차지했다. 백인 유권자 중 43%만이 오바마를 찍은 이번 대선에서 흑인의 95%, 히스패닉의 66%, 아시안의 61%가 오바마를 지지했다. 백인표밭에선 과반수를 못 얻었지만 다양한 무지개연합의 절대지지가 오바마를 백악관으로 보낸 것이다.
이 경향은 가속화될 것이다. 현재 미국인구의 66%인 백인의 비율은 2042년이면 46%로 줄어들고 흑인은 15%로 변함이 없겠지만 히스패닉은 현 15%에서 30%로, 아시안은 5%에서 9%로 각각 두배의 증가가 예상된다. 불법이건 합법이건, 이민이 늘어서만이 아니다. 특히 히스패닉의 경우 출산율 증가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증가라는 뜻이다. 금년 대선 네바다와 콜로라도, 뉴멕시코, 플로리다 등 접전지역에서 승패를 판가름한 요인의 하나도 히스패닉 표였다.
공화당내 논쟁은 이제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극우보수와 중도개혁 중 어느 쪽이 승기를 잡을지, 어떤 결론을 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소수계, 특히 히스패닉을 외면하고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 정당은 매우 오랫동안 소수정당으로 밀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리고 그 정당이 편협한 전통에 집착하는 한 소수계 끌어안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소수계에 대한 정당의 인식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의 하나는 이민법이다. 금년 대선에선 후반 들어 경제위기가 모든 이슈를 압도했지만 초반, 특히 공화당 경선에서의 핫 이슈는 ‘이민’이었고 당시 10명의 ‘백인 중년남성’ 공화후보들이 앞 다투어 과시한 반이민 언행은 이민계 모두를 공화당에서 등 돌리도록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또 2년전 어린이까지를 포함한 불체자 전원을 중범 형사 처벌하자는 반인도적 이민악법을 통과시켰던 공화당 다수 하원에 느꼈던 분노도 여전히 생생하다.
이런 기억들이 살아있는 소수계에게 아직 공화당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정당이다. 전통적 가족관을 중시하는 히스패닉, 개인의 책임과 근면이 몸에 밴 동양계들에게 사실 더 공감이 가는 것은 민주당 보다 공화당의 가치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수계를 자신들의 확실한 표밭으로 일구기 위해선 먼저 나쁜 기억을 지워주기 위한 공화당의 보다 큰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박 록 주 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