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오후에는 캘리포니아 유스 심포니의 올 시즌 첫 공연을 보러 갔다. 캘리포니아 유스 심포니는 올해 대학생이 된 딸이 8학년때부터 12학년때까지 5년간 시니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했던 곳인데, 특히 이번 공연에는 한국 남학생이 솔리스트로 피아노를 연주하게 되어있어 꼭 보고 싶었다. 먼저 콘서트 드레스를 차려입은 백여명의 단원들이 악기를 든 채 도열해 앉아 있고 악기든 손 대신 발을 굴러 박수를 대신하자 지휘자가 입장한다. 이어 연주되는 곡들과 더불어 서서히 음악 속에 빠져들며 지난 십여년간 아이들을 통해 음악과 맺어온 세월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큰 아이인 아들이 네 살때 킨더뮤직이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일주일에 한 번씩 데리고 다닌 것이 나의 음악 교육의 시작이었다. 독일에서 개발된 이 프로그램은 취학전 만 4, 5세 아동을 위한 음악 입문 교육으로, 음악과 놀이를 접목시켜 아이들에게 익숙한 노래와 놀이기구를 통해 음악의 기본을 터득해가게 한다. 이 프로그램의 2년 과정이 끝날 무렵에는 음계를 그릴 수 있는 정도까지 되어 그후 악기를 배우며 악보를 보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었다. 큰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게 되자 당장 연습할 피아노가 필요했다.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레슨이 일주일에 한 번이기 때문에 집에서 연습하지 않으면 배우는 의미가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유학생 살림에 무리해서 할부로 피아노를 장만하게 되었고 그후 이사다닐 때마다 우리 집 가보 1호로 귀하게 다루며 지금껏 우리 가족과 함께 하고 있다.
다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한 아들과 오빠 영향으로 더 일찍 시작한 딸, 둘이 피아노를 배울 때는 집에서 연습시키다 보면 엄마인 내가 거의 선생님이 되어가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유행하던 스즈끼 방식의 교육법은 엄마가 매번 레슨에 함께 하여 선생님의 지도법을 보고 배워 집에서 그대로 연습시키도록 한다. 그리고 일 년이 끝나는 학년말이 되면 학생들이 그간 배운 곡 중 한 곡씩을 연주하는 연주회가 열린다. 정식으로 공연장에서 깔끔하게 차려입은 학생들이 준비된 순서대로 한 명씩 무대에 올라 박수갈채 속에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한 학생이 무대에 오르면 그 부모가 누구인지 자연히 알게 된다. 자기 아이가 연주할 때면 부모는 어김없이 비디오 카메라로 연주 장면을 녹화하고 연주가 끝나면 가장 힘차게 박수를 보낸다. 또한 스즈끼 방식의 교육법에서는 연습곡집 첫 책 한 권을 다 배우면 개인 연주회를 하도록 권한다. 물론 거창한 연주회는 아니지만 그 한 권에서 배운 20여곡을 외워서 연주해야 하니 어린 초보자에게는 큰 도전이 된다. 연주 장소를 마련하고 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 이웃들을 초대해 30여분 동안 연주하는 솔로 리사이틀을 통해 자신이 음악에 입문했으며 앞으로 성실히 임할 것을 청중들 앞에서 서약하는 의미라고나 할까…
처음에는 ‘전공할 건 아니지만 악기도 좀 다룰 줄 알아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음악교육이었다. 그런데 일단 시작했으면 진지하고 성실해야 함을 곧 깨닫게 되었다. 매일 매일의 바른 연습이 없이는 아무런 발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성실하게 연습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다른 것에도 그런 태도로 임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쁜 고등학교때에도 악기를 계속해가는 학생들을 보면 음악에 쏟는 시간 때문에 다른 것을 못하는 경우보다는 열심히 하는 학생이 다른 것도 열심히 잘 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동안 연습을 게을리 할 때 선생님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신 말이 있다. “ 악기교육은 학생과 선생, 부모, 이 세 사람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재능이 있는 아이라도 처음 몇 년간은 부모님이 연습하는 습관을 잡아주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그 말씀에 아이에게 연습 안한다고 잔소리만 한 나의 나태한 모습을 들킨 듯 부끄럽기도 했고 그렇게 수년간 성실히 임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절감했다. 그래서 지금도 훌륭한 연주자들을 보면 그 뒤에 뿌려진 부모의 인내와 헌신이 얼마였을지 짐작이 되며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어찌 어찌 세월은 흘러 아들은 다섯살에 시작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피아노를 계속하였고 딸은 5학년때 바이올린으로 바꿔 12학년까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바이올린 연주를 계속하였다. 나 또한 클래식 음악에 무관심하고 무지했던 십여년 전의 모습에서 서서히 귀가 열리고 가슴으로 느끼는 수준으로 발전해갔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아쉬움도 남고 자책되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아이들이 악기를 배우고 연주하며 누린 기쁨과 음악을 통해 세상을 느낄 수 있게 됨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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