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를 보면 동양과 서양에서 동시에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B C 3세기 무렵의 대대적인 인프라 공사가 그렇다. 지구의 동쪽과 서쪽에서 우연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안보와 관련해 거대한 토목공사가 펼쳐진 것이다.
동쪽에서는 거대한 장벽이 세워진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만리장성 축조가 시작된 것이다. 이 작업은 천년이 훨씬 넘도록 이어져 장성의 총 길이는 5,000km에 이른다.
서쪽에서는 길이 닦여졌다. 로마 가도다. 이 유명한 로마 가도는 이후 500년 동안 계속 건설돼 간선도로만 8만km에 이르게 된다. 이 로마 가도를 따라 들어선 게 오늘 날의 유럽의 주요 도시들이다.
왜 한쪽에서는 장벽을 쌓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가도를 건설했을까. 고대 중국의 한(漢)족과 로마인의 이같은 사고방식 차이는 이 두 문명의 방향성을 결정한 것이 아니었을까.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던진 화두다.
오늘날에도 거대한 장벽은 세계 곳곳에 놓여 있다. 이스라엘의 웨스트뱅크 지역에 있는 장벽이 그 하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의 거주 지역을 분리해 놓은 것이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도 거대한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왜 장벽을 설치하는가. 주된 이유는 통제 불능의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불법입국 사태가 그렇다. 자살 공격을 감행하는 테러리스트 공격도 막을 수가 없다. 말하자면 통제 불능의 사태에 대처한 최후의 물리적 수단 같은 것이 장벽 설치다.
그 장벽이란 게 그렇다. 결국은 무너지게 돼 있다. 만리장성은 북방 유목민 침입을 막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동서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도 이제는 역사의 유물일 뿐이다.
쌀값도 비밀이다. 그러니 그 나라의 최고 통치자가 병에 걸려는지, 반신불수가 됐는지, 이미 사망했는지 그것은 당연히 비밀 중의 비밀이다. 온통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세계에서 가장 고립돼 있는 나라, 그 나라에 또 다시 2중3중의 장벽이 설치됐다.
“군사분계선을 통한 모든 육로 통행을 제한·차단하는 중대 조치가 12월1일 1차적으로 단행된다.” 북한군의 발표다. 그리고 반나절도 안 돼 북한 외무성은 “(북핵)검증방법은 현장 방문, 문건 확인, 기술자들과의 인터뷰로 한정되며 이외의 것을 요구하면 전쟁을 불러오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 불과 두 시간 후 북한 적십자사는 판문점 연락대표부를 폐쇄하고 지난 37년간 개통됐던 남북 직통전화를 끊었다.
북한 권력집단이 하루 사이에 내린 조치다. 거기다가 개성공단 폐쇄의 소리도 들린다. 중국과의 국경도 닫혔다는 보도와 함께. 이 잇단 조치를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백해무익한 벼랑 끝 전술이다. 미국의 정권 교체기를 맞아 이명박 정부와 부시 미 행정부를 동시에 압박함으로써 남북관계와 핵문제에 있어 당장의 실익을 챙기겠다는 의도다. 거기다가 오바마 행정부 출범과 관련해 통미봉남(通美封南)을 본격화 하려는 것이다.”
대체로 이런 방향으로 해석의 가닥이 잡히고 있다. 동시에 나오고 있는 또 다른 관측은 김정일이 중병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군부의 입김이 강해진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동안 중대결단 엄포를 해온 주체 세력은 북한 군부다. 또 개성공단 폐쇄설도 북한 장성들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다. 미국을 방문해 차기 오바마 행정부의 의중을 타진해 온 리근 북한 외무성 미국 국장이 귀국도 하기 전에 핵 관련 강성 발언이 터져 나왔다.
이런 여러 정황과 관련해 대두되는 게 ‘군부 전면부상설’이다. 아마 틀리지 않는 해석에 관측일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첨부한다면 이런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수령절대주의 김정일 체제가 시간에 황급히 쫓기고 있다는 진단 말이다.
수령절대주의 체제에서 수령이 사라지면 그 체제는 증발될 수밖에 없다.
진상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김정일의 신상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데 그 후계구도가 불분명하다. 시간은 촉박한데.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상당히 급해진 것이다. 내부를 단속할 필요가 있다. 바깥바람을 차단해야 한다. 그 방법은 방벽을 이중삼중으로 쌓아올리는 것이다. 동시다발적인 극단조치의 배경은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북한 체제가 현 상태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관련국들은 북한의 연착륙을 유도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두 달 전 이코노미스트지가 김정일 유고설과 관련, 한반도 특집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김정일 체제의 끝이 멀지 않았다는 경고다.
베를린 장벽은 28년 2개월 26일 만에 붕괴됐다. 북한 주민을 꽁꽁 가둔 게 수령절대주의 체제다. 그 장벽은 언제 무너질까. 올해가 2008년이니까 그게 60년 하고….
옥 세 철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