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LA의 한 관광회사의 투어로 지난 10월20일 10박11일 일정의 포르투칼, 모로코, 스페인 관광을 떠났다. 이 관광단은 모두 33명이었다.
잘 짜여진 일정과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가이드 가운데 가장 훌륭한 가이드의 안내로 곳곳의 명승고적과 위대한 인류의 유산을 세세히 돌아 볼 수 있었다. 여행에 매료되고 심취해 가고 있던 중 예기치 못한 일을 당했다.
일정의 80%를 소화한 늦은 밤에 내가 큰 소동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다름 아니라 밤 11시께 심장마비를 당한 것이다. 문자 그대로 심장에 급작스럽고도 심각한 공격(attack)을 받고 쓰러졌다.
두 안내원과 일행 중 유일한 의사선생(디트로이트에서 닥터 설)을 깨우고 응급 처치를 받은 후 낯선 이국땅인 마드리드 인근 톨레도의 시립병원에 긴급 입원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 속에서 적절한 응급치료와 나머지 32인의 기도의 힘으로 소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병원에 남아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였다. 모두가 아쉬워했지만 두개의 빈자리를 남기고 관광버스는 계속 달려야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연이어 일어났다. 많은 이들이 희생을 자처하며 도움의 손길을 보내준 것이다. 나는 이들을 ‘스페인의 사마리아인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첫 번째는 일행 중 여성 두 명이 우리 내외만을 남겨 두고 계속 여행을 할 수 없다며 우리부부 곁을 지켜준 것이었다. 환자는 그렇다 치고, 환자를 위하여 머물러야 하는 부인만 남기고 어떻게 남은 여행길에 오를 수 있느냐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면서 이들은 남은 여행을 포기했다. 이것은 이번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수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 박물관, 그리고 시대의 최고의 건축가 가우디의 건축물 관광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결코 쉬운 결정이아니었을 것이다.
두 여성은 시립병원 근처 3류 모텔에 아내와 함께 방을 정하고, 시간마다 찾아주어 나를 위하여 간절한 기도를 해 주었다. 다른 일정 때문에 더 이상의 지체가 어려워 얼마 후 떠나기는 했지만, 젖먹이 아기를 남긴 듯 밤마다 전화로 안부를 물어 오셨다.
두 번째 사마리아인은 현지 가이드 클라라씨였다. 그 다음날 마드리드까지로 그녀의 모든 안내임무가 마감되는 시점에도, 남은 네 사람의 귀와 입이 되어 팔방으로 뛰며 병원에서의 모든 수속절차와 모텔 안내 등 우리를 낭패에서 구해 주었다. 계속되는 마지막 일정 중에도 병원을 방문하고 위로 전화를 해 준 것은 물론, 남은 세 여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세 번째는 스페인의 시립병원이다.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는 이 불쌍한 환자를 위해 다소 소통이 가능한 의사와 간호사를 총동원(?) 시켰고, 보험도 없는 이 여행자에게 차등 없이 최선의 치료를 제공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심장병 환자의 9일간의 입원과 치료의 엄청난 비용이 전부 무료라는 것이다. 유럽에서 중하위권 경제국 임에도 스페인은 사회복지 제도가 너무나 잘 돼 있는 나라였다.
3~4일 후 여행을 할 만한 기력을 회복한 것 같기에 퇴원의사를 밝혔더니, 2-3주 더 머물며 심장수술을 해 완전한 몸으로 떠나야 한다고 통보를 하는 것이었다. 감격스럽고 고마운 일이지만 간곡히 애원을 해 결국은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의사가 나에게 했던 “You must stay here longer for your safer journey” 라는 말이 큰 감동을 안겨 주었다.
이런 사마리아인들이 지금도 이 각박한 지구상 구석구석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한 것은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감동은 나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으며, 지금까지 나 자신은 진짜 사마리아인으로 살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가슴이 아팠다.
오랫동안 염원하며 계획했던 이번 스페인 여행이 아쉬운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스페인에서 만났던 ‘선한 사마리아인들’과의 인연만으로도 나와 아내는 ‘2008년 최고의 관광 상품’ 수혜자가 된 기분이다. 그동안 코트와 필드에서 보면서도 다소 덜 호감을 가졌던 스페인 출신 라파엘 나달과 세이지오 가르시아에게도 더 큰 박수와 응원을 보내야 될 것 같다.
김광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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